[Review] 살인사건을 놀이처럼 풀면 - 그때, 변홍례

글 입력 2019.07.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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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2.JPG
 

아르코를 상징하는 빨간 벽돌을 지나, 로비에 들어섰다. 광대 분장을 한 남성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악기였다. 연극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하던 찰나, 오른쪽을 보니 옛날 연극실 분장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한 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배우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분칠을 하고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배우와 관객 사이가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무성영화 답게, 그 시작은 사회자 역할로 추정되는 인물이 열었다. 옛날 무성영화 시대에 나올법한 성우 목소리로 등장인물과 간단한 배경을 소개했다. 1931년, 조선인 하녀 변홍례가 본인이 일하던 철도국 관사에서 살인을 당했다. 이 연극은 신문기사에도 실렸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신문에는 스토리텔링이 없다. 즉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연극은 해야 할 일은, 그 시절 홍례의 말에 숨을 불어넣는 것일 테다.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형식미다. 무성영화 기법을 연극 무대에 재현하여 관객들이 옛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극의 전개는 하얀 스크린 안에서 이루어진다. 극 중 인물을 대신하여 사이드에 있는 배우들이, 성우처럼 대사를 말하고 각종 효과음을 재현한다. 스크린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은 과장되거나 일상의 호흡과 맞지 않는다. 코믹한 제스쳐, 쇼에 가까운 움직임, 옛 스러운 음악이 극의 흐름을 이끈다.


하얀 스크린에 비춰진 인물과 그 그림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사건을 은유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극 중 인물들을 둘러싼 다양산 감정들이 크기와 빛으로 표현된다. 관객은 굴욕감, 수치심, 긴장, 협박, 불안정한 애정사를 흰 색과 검은 색 속에서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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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이 많은 무성영화의 특성 상, 비극은 더욱 슬프게 희극은 더욱 기쁘게 나타난다. 살인사건을 소재로한 특성상, 변홍례가 위기에 빠질 때는 인물의 비명 소리와 조명이 더욱 극적이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점은, 희극적인 순간이다. 연극은 식민지 시대의 권력자 일본인과 그 밑에서 부역하는 친일 조선인을 풍자하며 희극적으로 만든다. 이 과장된 희극 덕에  '힘'에 대한 욕망과 교양의 과시는 한낱 허세와 교만으로 드러나고, 타인에 대한 로맨스적 폭력은 끔찍함과 기괴한 웃음 사이를 오간다.


이에 식민지 시대, 일본인 부부와 조선인 하녀, 친일과 그 밑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조선인이라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볼 수 있었다. 스크린 앞에서 스탠드 조명을 움직이며 애정씬을 대신 표현하고, 인물들의 욕망을 그의 컴플렉스를 까발림으로써 드러낸다. 발걸음, 제스처, 말투, 소품, 공간 등 덕에 연극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있는 놀이극처럼 보인다. 살인 사건을 마치 놀이처럼 풀어내는 장면들은 사실적인 사건과 무관하게 연극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되었다.


변홍례는 그가 모시던 일본인 부인에게 살해를 당했을 것이다. 형식미에 집중해서 바라보았더니, 그래서 홍례가 원했던 욕망이 뭐였는지 떠올리기 힘들었다. 물론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게 대사에서 드러났지만, 역시나 인물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니 전개의 설득력이 조금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 곧대로 전달할 필요도 없다. 감정적인 선을 강조하기 보단, 형식의 새로움이 상상력을 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땅세의 다음 연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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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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