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스프레소, 그녀의 웨딩 [사람]

옅어지다, 에스프레소
글 입력 2019.07.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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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부신 5월의 신부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달, 5월에 내 피붙이만큼 사랑하는 ‘수영’ 언니가 결혼했다. 오늘은 결혼식이 있었던 후 거진 1년하고도 두 달 만에 처음 그녀를 만난 날이다. 이제는 아가씨가 아닌 새색시가 되어버린 언니이기에 그녀를 만나면 예전의 언니와 무언가 조금은 달라진 모습일 거로 생각했었는데 그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얼굴색이 조금 지쳐 보이는 듯해 물어보았더니, 다행히 조금 무리한 여행의 후유증일 뿐. 오히려 더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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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만나지 못한 탓에 나는 그녀 앞에서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댄다. 언니를 만나지 못하고 지내는 동안, 난 수영을 다시 시작했고, 좋아하는 글을 쓰게 되었으며, 수영복을 만들기 시작했고 누군가와의 짧은 만남도 가졌다는 얘기들. 무기력해지기 싫어, 발전 없는 일상이 지겨워서 나 자신을 위해 조금 더 활기를 불어넣는 중이라고 특별할 것 없는 내 일상들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특유의 시원하고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나처럼 나를 응원한다.

 

참 좋아 보인다. 결혼하기 전엔 나를 사이에 두고도 형부와 세상 끝날 것처럼 많이 싸워서 언니의 친정엄마보다도 걱정을 더 많이 했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언제 그랬냐 싶게 요리실력이 늘었다고 자랑을 한다. 요즘 요리를 말도 안 되게 잘한다는 언니의 말이 진심으로 행복한 신혼의 그녀 인듯해서 흐뭇하기도 하고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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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 에스프레소



새초롬하게 예쁜 언니는 커피도 항상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그 커피와 언니가 꽤 잘 어울렸다. 문제는 에스프레소를 무척 좋아해서 도가 지나친 경우가 가끔 생길 때였는데, 더운 한여름에도 그 독한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면 축축 쳐진 온몸에 생기가 돈다나 뭐라나.


세부에 갔을 때도 스노쿨링을 실컷 하고 나와 갈증이 나서 죽겠는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내 옆에서 언니는 대체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에스프레소를 곁들이고 있었다. 못 말린다 이 언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세계를 돌아다닐 땐, 그 나라의 에스프레소로 마무리해야 진정한 여행의 일정이 끝나는 거라며 주변인들에게도 본인의 에스프레소를 건넨다. 특히 라오스를 여행하고 난 뒤, 내게 건넨 커피 선물은 딱 한 봉지 뜯어 마신 뒤, 재포장과 함께 작은 편지를 적어 다시 언니에게 선물로 돌려줬다.

 

어쩐지 똑 부러지는 언니의 성향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닮은 것도 같아 내 휴대전화의 저장이름도 에스프레소 박. 그랬던 에스프레소 박, 그녀가 이제는 부드러운 카페라테까지 커피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형부와 전화통화를 하며 “우리 서방” 이라고 부르는 예쁜 새색시가 얘기한다. 형부 덕분에 에스프레소가 아닌 다른 커피의 매력도 찬찬히 알아가는 중이라며 깔깔거린다.


그동안 커피에 대한 만행으로 나에게 미안했다며. 내가 아무리 다른 음료를 권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그녀가 순한 커피를 찾는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 비법을 물었다.

 

그런데 글쎄, 우문현답. “그때는 내가 많이 힘들었나 봐~”


시원한 성격에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녀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맡은 바에 책임을 다하고, 여러 상황의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우를 갖췄음에도 받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휴가로 떠난 짧은 유럽 여행에서 우연히 에스프레소를 접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진한 풍미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며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경험을 한 뒤, 줄곧 에스프레소만 찾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다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사랑해주고 폭넓은 이해력으로 다양한 삶의 해법을 함께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형부를 만나 점차 심신이 안정되는 법을 배워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나는 물었다.


"그런 형부랑 결혼 전에 왜 그리도 싸웠어?"

"나는 아직도 언니랑 형부 결혼을 믿을 수 없는데?"

피식

 

언니는 그저 민망함에 억지로 아까보다 더 많이 깔깔거린다. 더는 함께 만날 때 에스프레소 공포증을 겪지 않아도 되게끔 언니를 변화시켜준 형부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내게는 마냥 어른이었던 언니의 그 힘듦이 형부 덕분에 더는 극복해야 할 상처가 아니게 된 것에 정말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시댁어른을 이야기할 때도 꼬박꼬박 존칭을 써가며 이야기하는 언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나는 시댁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낯선 데 언니는 이제 제법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볼수록 믿기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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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人


내게는 싱글이었을 적 예쁜 언니의 모습이 더 익숙하다. 그렇지만 곧 새색시의 예쁜 그녀도 익숙해지겠지. 금요일만 되면 아직도 건대에서 형부 빼고 우리 둘이서 심야영화를 함께 볼 것 같고, 초보운전딱지를 떼지 않은 탓에 덜덜거리며 내 차를 몰고 새벽 드라이브를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면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불러내어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언니와의 수많은 추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얼마 되지 않은 듯 생생하다.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녀가 내게 참 소중한 지인임을 깨닫게 해준다.

 

지금은 너무 멀리 있어 이제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볼 수 있는 그녀이지만. 내가 그녀에게 말하고 언니가 내게 말했듯. 늘 어디에서든지 힘이 되어주겠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언니와 형부의 처음 시작이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행복한 시작종을 울리며 멋지게 출발했듯이 앞으로 소중한 나의 그녀와 형부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제 그 둘을 쏙 빼닮은 예쁜 복덩이가 쌍둥이로 얼른 태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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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빙수가 부담 없구나. 아하하



오늘 점심으로 함께 먹은 언니가 무척 좋아하는 시원한 밀면과 커피 빙수를 생각하며 한동안 못 볼 그녀를 떠올려야겠다. 한잔해야 친해지는 형부와도 이제는 술 없이도 친해지는 그날이 얼른 다가오길 바라며. 곧 수원으로 수박 한 통 사 들고 양손 무겁게, 아직도 초보딱지 붙어있는 내 애마를 몰고 예전보단 나아진 운전실력을 뽐내러 가야겠다. 언니와 형부의 알콩달콩 신혼기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정말로 안 싸우고 평화로운 신혼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확인하러 갈게. '수영'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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