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연극, "그 때, 변홍례"

욕망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자들의 수직낙하쇼!!
글 입력 2019.07.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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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엄마와 나는 평소보다 일찍 대학로에 도착했다. 항상 대학로는 허겁지겁 도착해서 들어갔던 적이 많아서, 이 날 만큼은 작정하고 집에서 일찍 출발했다.


초대권을 받고, 2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홍보 무대나 아르코 예술극장 전경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구슬픈 아코디언의 소리가 울러펴졌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따라가보니, 슬픈 듯, 무서운듯한 분장을 하고, 무표정으로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나는 이분이 그냥 연극 홍보 차원에서 즐겁게 연주해주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 연극 중간중간에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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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까이 찍으면 부담스러우실까 봐 멀리서 찍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아코디언 연주자.


아코디언의 연주를 넋 놓고 감상하다 보니 한구석에서 합창하는 듯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황급하게 분장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의 규모라면, 번듯한 분장실이 분명 있을 텐데, 굳이 밖에 나와서 청중들이 대기하는 공간에서 분장을 한다는 것은, 뭔가 연극과 관련해서 뜻하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대기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해주려는 일회성 이벤트였던 것 같다. 하여튼 이렇게 연극을 보기 전에 눈과 귀가 즐거운 상태로 입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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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있다.



02.



이 연극의 구성 방식은 정말 특이하다. 우선 무대 하나가 크게 왼쪽, 가운데, 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있고, 배우들은 가운데에서 소리 없는 연극을 펼친다. 발자국 소리부터, 목소리까지 모두 외부의 힘을 빌린다. 사람을 때리는 장면에서는 왼쪽 무대에서 실제로 배우의 뱃살을 때려서 효과음을 내고, 빨래를 발로 밟는 소리도 옆 무대에서 실제로 물이 담긴 대야를 준비해 효과음을 낸다.


어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물건은 물건대로 준비하고, 배우의 동작에 맞춰 효과음을 정확하게 내야 하니 연습의 횟수 또한 셀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배우는 그 상황에 더욱 몰입할 수 있고, 관객 또한 효과음이 나기 전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잠시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관객 입장에서는 보는 재미와 더불어 듣는 재미도 함께 느껴볼 수 있다.

게다가 극의 진행 방식 또한 신선하다. 우선 유쾌한 사회자가 있고, 사회자가 연극을 진행하며, 중간중간 장면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연극 중간에 철도회사를 홍보하는 광고 시간도 있다. (정말이지 이런 연극 진행은 처음이었다.) 이 목소리가 특이한 사회자는 철도회사 사장의 목소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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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받는 가운데 무대를 끼고,
양쪽에서는 분주하게 효과음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03.



이 연극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우선 전통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옛날 영화를 보면, 먼저 배우들의 연기를 무성으로 찍어놓고 그 위에 목소리를 더빙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연극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대의 대중문화인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적극적으로 공연에 접목시킨 것이다.


반면에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인간의 성욕이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 질투하는 모습이 일제강점기 시대와 비교하여 현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비록 일제시대였으나,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권력 다툼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아마 극단 하땅세가 전하고자 하는 바도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일제시대의 우리는 변홍례를 어떻게 해석했고, 지금은 그때와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연극을 보는 내내 눈여겨보았던 점은 마리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마리아를 제외한 주변 인물들은 발자국 소리부터 목소리까지 모두 외부의 힘을 빌리는데, 마리아만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비록 일본인이 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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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연극은 정말 재밌었다. 프리뷰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일제시대', '살인사건' 등의 단어를 보면서 정말 어렵고 무서운 연극이지 않을까 하면서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고, 약간의 해학적인 모습도 보여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마리아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에서, 엄청나게 크게 비명을 지르는데, 거의 괴성에 가까운 데다가, 3초 정도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귀가 정말 아팠다. 마리아의 공포를 드러내려고 한 것은 이해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불쾌할 정도로 무서운 비명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소리를 질러서 그때마다 극장을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제외하고는 정말 스토리도 탄탄하고, 시각적, 청각적 요소도 풍부한 연극이었다. 수많은 연극을 보아왔지만, 극단이 지나온 행보,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연극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무성영화 기법을 연극에 접목시킨 것은 극단 '하땅세'만의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극단의 향후 활동이 정말 기대되는 연극이었다.


그때,변홍례포스터(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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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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