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1. 회전문을 아십니까? -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2015년 그 여름을 회고하며
글 입력 2019.07.14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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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전문’을 아십니까?


무언가에 사랑을 쏟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고, 행복한 일도 없다. 짝사랑이 그다지도 애달프게 기억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시간에 희석되기엔 너무 짙은 농도의 애정이었기 때문이고 깎이기엔 너무 단단하게 순간순간을 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이런 거대한 사랑의 시작은 참으로 우연적이어서 막상 사랑이 시작될 때는 이게 단순한 애정인지 사랑인지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바람에 실려 온 작은 꽃가루 하나가 결국 몇 번의 재채기를 발생시키는 것처럼, 아주 작은 계기 하나가 몇 달, 몇 년, 길게는 평생 동안 한 사람의 기억을 쥐고 흔들기도 하는 법이다.

그때도 그랬다. 2015년 어느 여름, 그러니까 나는 수중에 돈이 그다지 많지 않던 일개 학생이었고 뮤지컬을 향한 나의 애정은 돈과 시간의 장벽에 막혀 쉽게 분출되지 못했다. 10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티켓은 학생에게 참으로 먼 보물과도 같았고, 알바든 과외든 해서 꼭 돈을 모아야지, 부자가 돼서 꼭 인터파크 다이아몬드 회원이 되어야지, 와 같은 꿈만 마음에 품었다.

그러던 그 어느 초여름, 나뭇잎이 푸르게 자라나던 그 7월에 나는 기말고사를 끝낸 기념으로 뮤지컬을 보러 갔다. 사실 그날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의 시작은 그 사랑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좋았다’와 같은 모호한 감정만 흔적처럼 남기 마련이기에. 그래서 나는 그 7월의 어느 날이 정확히 며칠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중순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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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다. 아무튼 그 문제의 뮤지컬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이하 ‘JCS’)’였다. 샤롯데 씨어터 2층 중앙에서 처음 그 거대한 오버츄어의 무게를 맞이했을 때의 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강한 일렉 음향에 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웅장한 십자가가 무대에 서서히 내려왔을 때, 그때 직감했던 것 같다.

아, 나는 이 뮤지컬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예수가 슈퍼스타라니


뮤지컬 ‘JCS’는 꽤 역사가 깊은 작품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번안을 맡기도 했던 팀 라이스가 작사를 맡아 1970년에 컨셉 앨범을 발매하고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개막했다.

당시 그들은 모두 20대 신생 작곡가와 작사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히 신성모독적이라 할 수 있을 만한 플롯과 음악을 창조해낸 탓에 공연을 중단하라는 시위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현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락 뮤지컬의 정수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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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발매 앨범


1960년대와 70년대, 하면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가 쏘아 올린 로큰롤과 록밴드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다.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귀를 막던 기성세대에 맞서 히피 문화와 저항 정신이 극에 달했던 시기기도 하다.

이런 저항적 시류가 뮤지컬에 드러난 게 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다. 신성한 예수 그리스도를 슈퍼스타에 비유하다니, 당장 2~3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소리를 입에 내뱉었다가는 당장 화형장으로 끌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 웨버와 라이스는 화형장에 끌려가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뚜렷한 저항정신이 불길과 같은 인기를 끌고 왔다. 내가 이 뮤지컬에 사로잡힌 이유도 그 신성모독적인 냉소에 있다. 귀를 찢는 듯한 록 음악도 한 몫을 했고.





왜 당신은, 뭘 위해?


이제 그 냉소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사실 ‘JCS’가 아니더라도 성경을 비틀고 예수에게 냉랭한 시선을 보내던 작품은 참 많았다. 지금도 차고 넘친다. 수백 년 동안 금단의 구역이었던 성경에 손을 뻗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성스러운 무언가를 비틀어버리고 싶다는 욕망도 함께 자라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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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S’의 가장 큰 줄기는 ‘왜?’라는 물음이다. 예수의 희생이 결과적으로 어떤 구원을 이끌어내었는가, 여전히 인간들은 싸우고 물어뜯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예수 당신은 이런 인간 세계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가, 이런 본질적 물음이 극을 관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의 발화자가 이스카리옷 유다라는 점이다. 인류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향해 묻는다.

죽어서 만족하나요? 그 희생으로 지금 뭐가 달라졌나요? 라고.

이렇듯 이 극에서 유다는 배신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철저한 킹메이커, 혹은 예수를 인간적으로 너무나 사랑했던 수제자, 예수의 희생을 마뜩찮게 바라보던 그의 왼팔. 마리아 막달레나가 향유를 뿌리는 것을 바라보며 저 돈으로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답답해하는 모습에서는 개혁가의 모습도 엿보이고, 희생의 길을 선택한 예수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는 모습에서는 불같은 성격도 알 수 있다. ‘JCS’에서 유다는 배신자라고하기에는 너무 사랑이 넘친다.

성경을 토대로 재구성하는 뮤지컬의 묘미가 바로 이런 지점이 아닐까 싶다. 감히 생각해볼 마음도 먹지 못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것. 2012년 영국에서 JCS 웨스트엔드 초연 40주년을 기념하며 진행한 아레나 투어에서는 아예 극의 배경을 현대로 잡고 연출을 확 바꾸었다.

제사장들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 인사들로 그려졌고, 예수의 추종자들은 더 이상 예수의 언어를 귀 담아 듣지 않은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대중으로 묘사되었다. 정말이지 짜릿하지 않을 수 없는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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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그리움 남기고 가셨나


다시 그 2015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그 여름은 ‘JCS’로 시작해서 ‘JCS’로 끝났다. 회전문 안에서 빙글빙글 제자리를 맴돌 듯 나는 샤롯데 씨어터 안에서 여름을 지냈다. 그 당시에 성당 주보를 들고 가면 2층 S석을 50% 할인해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덕에 나는 3~4만원에 그 좋은 2층 중앙 자리에서 쾌적하게 관극을 할 수 있었다(샤롯데 씨어터는 2층 4, 5, 6열이 정말 쾌적하고 시야가 좋다).

청량하게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와 눈이 부실 정도로 온통 청록색이었던 나무들, 때때로 장마 탓에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잠실역에 도착함과 동시에 찝찝함보다 설렘이 더 커졌던 그 7월, 장마가 끝나고 새파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던 햇살과 열기로 가득 찬 8월. 2015년의 여름은 그렇게 기억되었다.

9월 13일은 정말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남들은 연애 기념일을 세기 위해 디데이 어플을 사용한다는데 나는 9월 13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 어플을 사용한다. 어제(2019년 7월 13일)는 딱 1400일이 되던 날이었고 오늘은 1401일째 되는 날이다. 그 말인즉, 샤롯데 씨어터에서 ‘JCS’가 사라진지 1400일이 넘었다는 뜻이다.

아주 맑고 예뻤던 날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질 것만 같은 새하얗고 몽실몽실한 뭉게구름이 파란색 하늘에 떠다니고 있었고, 9월이지만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 습기와 열기가 그대로 땅에서 올라오던 여름날이었다. 친구와 함께 극장으로 가는 그 길이 그날만큼 슬펐던 적이 없었다.

무대가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할 때 한 배우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정말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추종자 하나가 여기 있습니다.


다시 시작해요
나를 살게한 그대 죽도록 그리움 남기고 가셨나
남겨진 우리는 어떡하나요
다시 시작해요
- Could We Start Again


오늘따라 이 넘버가 많이 생각난다. 영상으로 남지 못해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언젠가 추억으로 남겨질 날을 생각하지 못하고 순간을 즐기다가 어느 날 그 순간들이 모조리 과거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게 될 때, 그 허무함을 또 추억으로 묻어두는, 그런 게 사랑이 아닌가.

오늘의 인터미션 넘버는 겟세마네입니다. 계속 듣다보면 언젠가 재연 소식도 들리겠지요.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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