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 자매의 생일을 축하하며 - 연극 '마음의 범죄'

연극 '마음의 범죄' 리뷰
글 입력 2019.07.0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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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벗어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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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라는 키워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어떤 프레임에 갇힌 인물들을 상상했다고 부정 못 하겠다. 가부장제의 부조리 속에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매들, 총을 쏘는 등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그 틀을 깨부수는 모습 등. 시놉시스 상에 자기 남편에게 총을 쏜 막내 아진의 이야기가 주로 나와 있었기에 머릿속에 자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막상 연극에 나오는 세 자매는 내 프레임을 비껴가는 입체적인 인물들이었다.

할아버지를 모시는 집안의 장녀 순진과 문란하다는 소문을 남기고 집을 떠나 멋대로 살아온 둘째 가진, 그리고 시의원인 남편을 총으로 쏜 막내 아 진. 그러나 순진에게는 남모를 콤플렉스가 있고 가진은 옛사랑에 대한 추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아진은 순진해 보이지만 자신보다 13살 어린 남자와 불륜을 저지를 만큼 파격적이기도 하다. 물론 개선되어야 할 인식이지만, 우리가 '피해자'라는 단어를 볼 때 흔히 연상하는 모습과 이들은 거리가 있다.

특히 가장 전형적인 피해자로 비칠 수 있는 가진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을 파격적인 서사를 주어 진부한 느낌을 피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이들은 혈연으로 봐도 서로 닮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가 아니다. 인물들을 둘러싼 무대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듯, 세 자매는 자신을 향하는 단일한 프레임을 거부하고 있었다.



'미쳤다'는 말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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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미쳤다'는 말이다. 아진의 남편은 아진이 미쳤고, 그래서 정신병원에 보낼 거라고 말한다. 남편을 총으로 쏜 직후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고, 재판을 앞두고도 설탕을 잔뜩 사 와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아진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할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말을 전하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는 가진과 순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말 미친 걸까?

'미쳤다'와 같은 극단적인 평가는 사회적 약자를 향할 때가 많다.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 사회를 바꾸는 것보다 그저 미쳤다고 하는 편이 더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여서 겪어야 했던 많은 것들이 중첩되어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때, 그리고 그 행동이 조금이라도 감정적일 때, 사람들은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을 비난한다. 미쳤다고. 하지만 그들을 미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과를 말하기에 앞서 그러한 결과가 나온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세 자매가 늘어놓는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보면 이들이 살아온 날들이 조금이나마 짐작된다. 아진의 경우 직접적으로 남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다는 설정이다. 가진은 할아버지에게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라 결혼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계속 들어온 결과, 자신이 원하는 관계에서도 소극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가진은 오랜 시간 방황한다. 이들이 늘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오며 드리워진 그림자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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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사회는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흔히 아진이 당한 것처럼 물리적인 폭력만 피해 사례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폭력은, 어떤 억압은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날에 울지 말라고 하며 처음으로 팥빙수를 마음껏 먹게 해줬다는 할아버지, 순진이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가지고 있으니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끊임없이 말해온 할아버지는 자매들을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그들을 억압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자살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세 자매가 툭툭 던지는 대사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어떤 유년을 보냈을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믿으며 혼자 집에 남아 할아버지를 모시는 삶은 어떠했을까. 할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는 순진의 모습이 순간 기괴해 보일지라도, 순진이 살아온 삶을, 말하지 않는 그 빈틈을 상상하다 보면 그를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미치게' 하는 다양한 것들은 사실 크게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남편에게 총을 쏘는 마음과 다낭성 난소증후군 때문에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마음의 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사람이기 이전에 남성을 보조할 '여자'로 취급하는 사회다. 남성의 소유물, 남성의 아이를 낳아줄 존재로 말이다. 아진은 남편을 왜 찔렀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에게 총을 쏘았어."



아진을 비롯한 자매들의 이상한 행동은 이들이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자 격렬한 자기 표현이 아닐까. 떠난 아버지는 지워지고 고양이와 함께 목을 맨 자매들의 엄마만 '미친년'으로 남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아진 역시 언제든 13살 연하와 바람이 나 자기 남편을 총으로 쏜 '미친년'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부엌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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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이자 무대 배경은 부엌이 절반을 차지하는 순진의 집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비롯한 다양한 가사노동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부엌은 오래전부터 '정숙한 여성의 자리'이자 '여성의 본분'을 상징하는 장소였다.여성을 비하할 때 단골로 사용되는 말과도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밥이나 해' 라고 하고, 외국에는 '샌드위치나 만들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범죄>에서 부엌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자매들은 서로에게 먹을 걸 건넨다.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자신들의 기억과 상처,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부엌은 그동안 서로 떨어져 지낸 자매들이 오랜만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장소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장소로, 계속 전화벨을 울리게 하는 바깥과 대비되는 곳이다.

부엌은 또한 억압에서 벗어나고 금기를 깨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진은 그동안 마시지 못했던 설탕을 잔뜩 넣은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언니들과 나눈다. 세 자매가 감추던 비밀이 부엌에서는 속속들이 드러난다. 아진의 자살시도가 부엌에서 이루어진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자살 시도를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는 남편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거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여성이 마땅히 머물며 가족 전체를 위한 희생을 요구받는 장소는 연극 속에서 가부장제에 저항하고 여성들이 연대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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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시간을 구별하고 한 해가 지나면 생일을 기념하는 걸까. 새롭게 시작할 계기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낡고 버리고 싶은 자신을 청산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은 죽음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반복할 수 없기에 생일을 맞는 건 아닐까.

막내 아진은 다른 인물들에게 '유아'라고 불린다. 성과 이름의 첫 글자를 붙여 애칭처럼 부르는 건데, 그게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유아(幼兒)와 발음이 같은 것, 그리고 아진이 극 내내 자매 중 가장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끝내 자살시도까지 한다는 점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범죄>는 순진이 홀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시작해 모두의 생일 축하를 받으며 끝난다. 하지만 생일이 단순히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작점을 의미한다면, 생일을 맞는 게 순진만은 아닐 것이다. 자살시도에 실패한 아진도, 다시 목소리를 찾은 가진도 새로운 나날들 앞에 섰다. 아진이 약하디 약한 유아(幼兒)에서 조금 성장해 더 단단해졌으리라 믿는다.

초 앞에서 순진은 소원으로 지금처럼 셋이 즐거울 수 있기를 빈다. 그들의 상황이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자살 시도를 한 직후의 아진에게 가진은 힘든 날들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말이 아니라 더 힘든 일들이 계속될 테니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은 현실적이어서 슬프지만 묘하게 힘이 된다. 나는 아진이 뻔뻔하게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미치게 하는 세상에서 죽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단단해지는 여성들이 우리는 필요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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