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슨 영화를 볼까? 영화 잡지 필로 FILO no.8 [도서]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영화 바라보기
글 입력 2019.07.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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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작품을 접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봐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분석보다는 감상의 태도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활자 중심의 책과는 친숙했지만, 음악, 연극, 영화와 같은 시각, 청각적 감각이 더 우세한 작품은 무척 낯설었다.


초반에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을 할 때, 연극 작품을 보면서 줄거리나 배우의 연기 정도만을 볼 수 있어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에디터 활동을 제외하고서도 영화를 볼 때, 전혀 전공 지식이 없고 자주 영화를 접하지 않는 사람도 알아채는 복선이나 화면 기법이 달라지는 시점 등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넘어갈 때마다 따로 공부하고 싶다고 느꼈었다.


사실 글을 쓰는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치열한 삶을 이유로 나의 무지를 타협해서 안전하게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영역 이외에도 나에게는 잘 아는 영역이 아주 많이 있었다. 하루가 끝날 때쯤 쓰는 일기장 한 편에서도 나는 충분히 스스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나의 하루를 부담 없이 정리할 수 있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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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공연의 preview를 작성해야 했을 때, 그리고 연극을 보고 나서 review를 작성해야 했을 때의 기분을 에디터 활동 1년이 지나서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1년이 짧은 시간이 아니며, 나는 꽤 많은 문화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책을 펼쳤을 때 내가 아는 영화가 한 편이 없는 것을 보고, 대체 이것에 대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막막해서 글쓰기를 계속해서 미뤘다.


잘하고 싶다거나, 전문적이고 능숙하게 글을 쓰고 싶다고 소망하던 초기 에디터 시절에서 벗어나,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를 글로 녹여내자고 생각해왔지만, 150페이지 가까이 되는 문화예술에 관한 책 한 권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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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O 영화 잡지는 film, 영화와 philo, 좋아하다 라는 두 가지 뜻이 결합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 글이다. 5명의 영화평론가 남다은, 이후경, 정성일, 정한석, 허문영 씨가 국내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고, 매호 다양한 해외, 초대 필진이 함께 최근까지 상영되었거나, 앞으로 상영될 가능성이 있는 동시대 영화를 다룬다. 직관적이고 다소 전달력이 빠른 이미지와 시선을 끄는 미디어, 동영상 등으로 문학에 대한 감상과 홍보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영화 잡지 FILO는 느리고 깊은 통찰을 이어나간다.


정말 영화에 전문적으로 관심이 있고, 꽤 깊이 있게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만한 해석이 있었다. 이번 NO·8에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남다은 씨의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에 대한 해석과 감상, 이후경 씨의 <왕좌의 게임>, 허문영 씨의 <퍼스트 리폼드>, 정한석 씨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아사코>, 정성일 씨의 <마지막 미션>, 장미셸 프로동의 아녜스 바르다, 정홍수 씨의 <유레카> 등을 다룬다.


만약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이 평론에 대한 감상이 달랐을 거로 생각하니 아쉬워서, 여러 영화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했지만 보지는 못했다. 왕좌의 게임 시즌 8까지를 정주 행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고,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는 평소에 영화에 얼마나 깊은 관심이 있었느냐에 대한 스스로 던지는 검열이 될 것이다. 인기 있는 영화, 상업성 넘치는 영화에만 집중하려 한 영화에 대한 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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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 잡지에서 비평을 읽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다. 특히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쓴 남다은 씨의 글과 <왕좌의 게임> 비평을 쓴 이후경 씨의 글을 재밌게 읽었다. 이 글들을 접하기 전까지는 비평이라고 하면, 주된 것은 비평하는 대상이며,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글쓴이의 글솜씨 정도라고 여겼는데 비평을 넘어선 훌륭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글쓴이의 깊은 생각과 글 쓰는 실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내에서 또 다른 상영 기회가 있을 법한 기성 감독들의 신작을 굳이 영화제에서 보느라 다른 데서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영화를 놓치는 건 아닐까, 영화제에서 관람할 작품들의 목록을 작성할 때마다 그런 조바심을 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 FILO, 불운과 행운, 남다은



남다은 씨는 "불운과 행운"이라는 글에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룬 여러 편의 영화에 대한 감상과 해석을 한다. "은밀한 비밀이나 해결해야 할 불균형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를 지탱하는 세계의 구조로 감각"되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둘의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워진 그 순간은 그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들 중에서도 가장 인위적으로 보이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줘>, "마을 축제의 장터에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문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있는 모습에 배인 지극히 일상적이고 고요함과 평온함"을 다룬 <인디애나 몬로비아> 등, 작품들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동시에 의아한 물음도 던진다. 그리고 실제 사건이 터진 동시대에 영화로 문제의식을 다룬 <신의 은총>에서는 영화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거침없는 비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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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상깊게 본 것은 <프레젠트. 퍼펙트>라는 영화에 대한 평론이다. 중국 개인 방송 진행자들의 라이브쇼를 자막이나 시청자들의 반응을 전부 제거하고, 혼자 쇼를 하는 모습만을 엮어서 보여주는 영화인데, 남다은 씨는 이 영화에 대해서 "진행자와 구독자들 사이의 즉각적인 응답과 현재적인 반응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단편적이고 수동적인 관음의 대상으로 기능"한다고 평가한다.


흔히 유튜브에서도 시청자와 소통을 하면서 먹방을 하는 유튜버가 있고, 음식을 그저 많이 먹기만 하는 유튜버가 있다. 한때 음식에 굉장한 집착을 하던 시절에 나는 전자보다 후자의 방송을 더 많이 찾아봤다. 소통보다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더욱 중요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대리만족의 개념이었고, 마치 짐승처럼 음식을 먹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들었던 경멸감을 사실 나 자신에게 느꼈던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프레젠트. 퍼펙트>도 그런 개념으로 만들어진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의 소통이 모두 제거되고, 혼자가 된 BJ는 외로운 존재로서 누군가 지켜볼 자신만의 활동을 한다.


남다은 씨는 글에서 "이들은 개인방송 세계에서도 잘나가는 축에 속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류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마지막 도피처 혹은 희망의 장소로 이곳을 택한 사람들로 보인다. 우회하지 않고 말하려고 한다. 이 영화는 불편하다. 익명의 존재들에게 자신을 전시하려는 데서 쾌감과 만족을 느끼는 이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가 그것은 아니라며 조심스러워한다. 내가 온라인상에 글을 써서 제3자들에게 무언가 감정을 전달하려고 하거나, 약간의 정치성이 들어간 글을 쓴다는 것도 어쩌면 그들과 같은 마음에서 나타난 다른 행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프레젠트. 퍼펙트>를 한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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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비평을 읽고서는 이 작품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인물들에게 공포의 시간인 ‘겨울’과, 같은 의미의 공간인 ‘북부’라는 의미 역시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고, 오직 아이들에게 허락된 게임의 의미를 가진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왕좌의 게임에서 게임의 반의어는 집이다. 집이 있는 이상 아이들의 놀이는 언젠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게임은 아이들이 돌아갈 집 자체를 파괴하거나 집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 FILO, 귀가의 계절, 이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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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아사코>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두 가지 영화를 비교하는 글에서는 두 영화의 실제 개봉 시점은 일 년 가까이 차이나지만, 한국에서는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다며 유사한 장면을 비교한다. 흔히 쓰이는 말인 '시선'에서 벗어나 두 명의 주인공이 '함께 바라봄'을 하는 것에 대한 글도 아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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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평들을 읽다 보면 내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에 조금은 감사하게 된다. 스포일러를 보면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가장 좋아하던 책을 친구에게 추천해주고, 중간쯤 읽어가는 친구에게 스포를 해버렸을 때 친구가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은 영화 작품들을 관람하고 비평을 읽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FILO 영화잡지는 영화에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나,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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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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