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넌 감동이었어, '토이스토리4' [영화]

글 입력 2019.07.05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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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을 보고 우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애니메이션은 재밌지만 예상하지 못할 만큼 참신한 스토리는 많이 없지 않나? 그런데도 저 뻔한 장면에 감동을 받아서 운다고?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 내게도 나를 펑펑 울게 만든 애니메이션이 딱 두 개가 있었다.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토이스토리’ 시리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사실 음악 때문에 더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OST인 ‘인생의 회전목마’는 정말 내 인생곡일 정도로 전주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반면에 ‘토이스토리’는 주제, 스토리, 캐릭터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유일하게 나의 합격점을 받은, 나를 제대로 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토이스토리 3를 극장에서 보면서 훌쩍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고, 장난감은?

엄청난 케미를 자랑하던 콤비 우디와 버즈. 그리고 그들의 주인 앤디. 장난감들이 앤디와 이별할 때 그렇게 슬퍼했는데, 9년이 지나니 그 기억도 점점 무뎌졌나보다. 영화를 보기 며칠 전 우연히 소품샵에 들렀다가 우디와 버즈를 보고 앤디와 우디라고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을 마주했다. 과연 제대로 좋아한 것이 맞나 의심스러웠는데,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장난감을 좋아하지도, 떠올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된다. 나도 다를바 없다. 커버린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장난감이 필요가 없어지고, 장난감을 버리거나 또 다른 아이에게 준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장난감 입장에선 버려지거나, 또다른 주인을 만난다. 토이스토리는 한 번도 장난감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번 토이스토리4는 버려진, 주인이 없는 장난감를 이전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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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토이스토리는 ‘장난감들의 좌충우돌 구출 대작전’의 느낌이 강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보니가 유치원에서 만든 새로운 장난감 포키를 다시 우디가 보니에게 데려다준다는 설정이 주 스토리였다. 우디는 새 주인인 보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열외의 카우보이 인형이 되었다.

그런데도 보니를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감들 중 누구보다 보니를 걱정한다. 유치원 예비소집 날 보니가 만든 인형 포키가 계속 보니의 곁에서 탈출하려고 하자 도로 보니의 곁으로 돌려놓는 일을 자처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게 자신의 마음의 소리라며 묵묵히 그 일을 계속한다.

그의 끔찍한 주인 사랑은 도를 지나칠 때가 있다. 포키가 달리는 차 안에서 도망치자 포키를 데려와야 한다며 그냥 차 안에서 뛰어내리는 무모한 시도를 하기도 한다. 골동품 가게에 포키가 갇혀있는데, 주인의 안정을 위해 데려와야한다며 다른 장난감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을 때, 우디의 한 마디가 나를 이해시켰다.


“앤디는 날 가장 좋아했어."

- 토이스토리4 中


자꾸 도망치려는 포키를 잡아 보니에게 되돌아가는 길, 우연히 나온 전 주인 앤디 얘기에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우디의 모습이 참 미묘했다. 가장 많이 사랑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가장 사랑받고 있는 존재의 그 소중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으로 주인이 기뻐할 모습을 보기 위해 그런 무리한 시도를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전성기를 보내버린 장난감에게도 열정이 넘칠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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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장난감이라니!

자유로운 장난감이라니, 상상도 못해본 존재였다. 주인이 없는 장난감은 버려진 장난감이거나, 이제 막 공장에서 만들어져 아직 첫 주인을 만나지 못한 장난감이라고만 생각했다.  모든 장난감들은 다 우디나 버즈처럼 주인과 함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보핍은 주인 없이 사는 게 싫진 않냐는 질문에 전혀, 라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주인이 있던 시절을 우디가 막 늘어놓자 그때를 회상하며 추억하기도 한다. 그때는 주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갔다면, 지금은 그냥 내가 행복한대로 사는 거니 둘 다 행복하다는 말. 그리고 주인이 없다는 가장 큰 장점은 더 넓은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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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생각을 못해본 부분이지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우디 또한 영화 초반의 나처럼 그렇게 말하는 보핍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주인이 있는 게 최고인 것처럼 구는 행동에 재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꼭 혼자서 정의로운 척하다가 결국 된통 당하고 그제야 잘못을 깨달았다며 다시 아군에게 찾아오는 캐릭터같은 느낌이었다. 계속 포키만 찾으면서 포키를 보니에게 되돌려주려는 그의 희생에 가까운 노력이 달갑지 않았다. 저렇게 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우디는 주인에게 최선을 다하고 주인의 행복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며 계속 주인 옆에서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우디 또한 보핍을 만나 바뀌었다. 악당인 줄 알았지만, 아이와 교감하는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개비개비에게 자신의 소리상자를 기꺼이 건네줄 때부터였을까. 영화의 결말에선 우디는 보니와 다른 장난감들이 있는 자동차로 건너가지 않고 보핍과 함께 주인 없이 자유로워질 결심을 한다.

난 솔직히 우디가 포키와 함께 돌아갈 줄 알았다. 자유로운 장난감이라니, 자유와 장난감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인이 없으면 버려진 장난감이라는 내 인식관 달리, 보핍과 우디는 주인이 없는 장난감은 그저 자유로운 장난감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오랫동안 아이들만을 위해 살아온 그들이었기에, 그 결정이 더욱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몇십년 동안 아이들에게 계속 행복을 주던 장난감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명예퇴직을 하는 걸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I'll never forget you, my 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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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의 장난감에게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 주었어도, 잃어버렸어도, 뭘 해도 나의 어린 시절 한 켠엔 너가 항상 함께였음을. 기쁠 땐 함께 기뻐해주고, 슬플 땐 함께 슬퍼해줬음을. 눈물로 젖은 베개 옆에서 너가 나를 위로해줬음을. 보잘 것 없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주인으로 대해줬음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 함께 있진 못했지만, 함께 했던 그 기억만은 항상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게.




[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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