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파도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영화]

글 입력 2019.07.05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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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퀄스 (Equals)는 2015년도에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로, 트레이크 도리머스 감독, 나단 파커 각본의 작품이다. 니콜라스 홀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줄거리 (스포 없습니다.)



전쟁의 폭격으로 인해 지구가 파괴된 뒤,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퀄)이 사는 ‘선진국’과 일반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결함인)이 사는 ‘반도국’으로 나눠진 세상. 선진국의 앗모스에서 일하는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는 감정 변화를 겪고 내원해 SOS(Switched-on-Syndrome) 진단을 받는다. 그는 직장 동료인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살 현장을 목격하고 감정의 변화를 겪는 것을 본 후 그녀 역시 감정보균자임을 감지한다. 사일러스는 니아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둘은 가까워져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사일러스와 니아는 몰래 사랑을 키우며 선진국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데.


***

영화 ‘이퀄스’ 속 이퀄들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감정을 느끼면 병이 되고, 사랑하면 죄가 되는 곳이 영화 속의 ‘선진국’이다. 영화 초반을 보면, 이퀄들이 감정의 동요를 겪었다는 이유로 자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생각을 하고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에게는 참 어색한 모습이다. 우리는 매일 감정의 동요를 겪고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기에 그들이 병원을 가고, 불안해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와 같은 모습을 가진 이퀄들이 나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 병으로 진단받는 것을 보면서 나도 같이 환자로 분류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저곳에 있었으면 참 고통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저곳에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고통일까? 우리 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일일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현 사회가 어떻게 우울증을 낳고 키워가는지를 그대로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질병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고, 아픔을 회복하기 위해 병원이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에 좀 더 차가운 잣대를 들이밀며 야박한 모습을 보인다. 전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내원을 거부하며 치료를 미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록이 남아서, 주변에 알리기 싫어서,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 누가 목감기에, 위염에, 골절에 이러한 이유를 얹을까? 곪아서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우울증에 대해, 현 사회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나도 이런 내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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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는 처음 감정의 동요를 겪은 후 불안에 떨며 전혀 어쩔 줄 몰라 한다. 한 번도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큰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병원을 찾고, 내내 눈빛이 흔들리며 물기를 머금은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인다.

우울증은 ‘우울’과도 ‘슬픔’과도 다르다.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기분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처음 나의 우울증을 감지했다. 그때 내 느낌은 사일러스가 처음 감정을 갖게 됐을 때와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 겪은 우울증에 마치 내가 엄청나게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체 이 감정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괜찮은 척, 밝은 척해봐도 그 역시 너무나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는 일이었다. 학교에도 친구들에게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마음의 병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배워보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이 가장 듣기가 싫었다.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아팠던 게 아니라, 아파서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던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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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 지 1년 3개월이 됐어. 알고는 있지만 의사에게 가기 싫었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돕지 못해. 약도 두려웠고…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 그렇지? 감정을 갖고도 살 수 있지만 매일 달라서 너무 힘들어.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또 배울 때면… 못 참겠어. 매번 죄책감을 느꼈고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원해서 생긴 거 아니니까. 매일같이 자제와 절제를 훈련했어. 누가 우릴 본다면 어떻게 될지 알아? 곧장 ‘덴’으로 보내지고 사형선고를 받아.”

니아는 감정보균자이지만 내원을 하지 않은 하이더(Hider)이다. 위의 대사는 니아가 사일러스에게 털어놓은 그녀의 병에 대한 속마음이다. 누구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알려지면 잡혀갈 것을 알기에 더 철저히 감춰야 했던 마음. 그녀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생각에서 오는 죄책감과 자책. 니아는 자신의 가면을 단단히 정비하며 속으로는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어린 나는 모든 것이 무서웠다.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받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의 병을 알면 사람들이 떠나갈까 두려웠다. 누군가 내 탓을 할까 가장 두려웠다. 혹여 내 잘못이라는 말을 듣지는 않을까 숨기고 또 숨기는 법을 익혔다. 나쁜 생각이 들 때면 자책을 했고, 타인의 앞에서 밝은 연기를 못할 때는 불안했다. 매일매일 숨죽이며 ‘하이더’로 살았던 기억이 난다.

저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이퀄도 아니고 SOS 환자도 아니지만 니아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우울증이 심하다고 사형선고를 받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만큼 끔찍한 게 사람들의 멸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은 가면 뒤에 숨어 홀로 운다. 누구도 원해서 우울증을 앓지 않고, 누구도 낫고 싶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뒤에 따르는 수많은 상황들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숨을 죽여야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확실히 예전보다는 쉽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이 내원을 망설이고, 치료 대신 가면을 선택한다. 상처 위에 컨실러를 바르는 격이다. 세균이 번식하고 더 곪아서야 “사실 오래전부터 아팠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 치료를 거부한 그들에게 이유를 묻지 말고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혹시 내가 누군가를 ‘하이더’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나는 단 한 번이라도 ‘하이더’였던 순간이 없었을까?’



그냥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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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은 없다는 데 원하면 가면 쓸게요.”

SOS 1기 판정을 받은 후 사일러스가 직장에서 한 말이다. 이에 직장 동료들은 가까이 오지 말고 컵을 따로 쓰라고 이야기한다. 병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과정도 고통, 내원을 하기까지의 시간도 고통, 그리고 그 후에도 고통이 연속이다. 이퀄들은 사일러스에게 눈치를 주고, 회사는 사일러스를 주시하고 주의를 준다. 사일러스가 직장을 옮긴 후 이퀄들은 병이 옮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일러스는 다른 이퀄들에게 피해가 갈까 계속 노력을 하지만, 이퀄들은 그를 병자 취급하며 피하기 바쁘다. 물론 그가 병을 가진 것은 맞지만, 그는 분명히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 또한 SOS는 전염성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게 잘 이겨내길 바란다는 위로 한마디를 하지 못한 건, 절대 이퀄들이 감정을 못 느껴서가 아니다. 그저 ‘그가 어떨지’보다 ‘내가 어떤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 우울증 시기를 잘 넘긴 후 약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우울증은 훨씬 더 크고 아팠기에 나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매우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다. 나아지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이겨내고 열심히 상담을 받아도, 늘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어디 아파? 무슨 약이야?” 우울증약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반 전체에 소문이 퍼지고 왜곡되는 것은 순식간일 걸 알았기에 늘 “그냥 몸이 좀 안 좋아.” 하며 말을 아꼈다. 나 외에도 몇몇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약을 먹는 것을 알았고 그들도 나를 알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면 당시에는 어려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사실을 알고 찌푸리던 눈빛들과 수군대던 말들을.




괜찮아요. 나도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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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변화를 참는 건 많이 힘들지. 하이더들은 그렇게 견디고 사는 거야. 그래서 작은 보탬을 주고 있지.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거야. 절대로 간섭해서는 안 돼.”

선진국의 건강과 안전 부서에서 일하는 ‘하이더’ 베스가 사일러스에게 한 말이다. 베스는 감정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SOS 발병 사실을 숨긴 채 건강과 안전 부서에서 근무한다. 그녀는 간섭하면 목숨도 직업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줄 수 있는 최대의 도움은 눈빛으로 위로를 건네는 일이라고 했다. 감정이 없는 세상에서 눈빛으로 건네는 위로는, 따뜻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말 뜨거운 위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감기처럼 닥쳐오는 우울증을 통제하는 법을 전보다 많이 익혔다. 처음 겪었을 때의 당황하는 모습 없이 차근차근 마주하고, 깊은 늪에 빠지기 전에 나를 구해내려 애쓴다. 나에게 ‘큰 일’이 닥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내가 문제가 아니란 사실도 안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들도 나쁜 마음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더는 숨기거나 감추려 들지 않는다.

한 걸음씩 내 마음의 건강에 다가가다 보니, 때때로 다른 사람의 아픔이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늘 고민한다. 외면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일까, 다가가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일까? 나는 그 사람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외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사람도 혹시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자꾸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힘내.”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묻기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하려 한다. 베스가 하이더들에게 눈빛으로 했던 말처럼,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나도 그랬어요.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내가 아팠을 때도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괜찮다는 말. 아파도 된다고, 항상 옆에 있겠다고,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금방 나을 거고, 그럼 다 좋아질 거라는 말. 우리 모두 아프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견뎌내 줘서 고맙다는 말. 언젠가 사회가 아픈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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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퀄스’에서 감정과 사랑에 대해 주로 다뤘지만, 나는 병에 대처하는 개인과 사회의 자세에 더 많은 눈길이 갔다. ‘선진국’ 사회가 SOS 환자들을 억압하는 방식과 그 결과를 통해 현 사회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사회의 억압에 의해 병을 숨기고 키워나가야 했던 하이더들과 이 시대의 가면성 우울증이 크게 다를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영화 내내 다른 이퀄들에게 들킬까 봐 혼자 울어야 했던 니아와 사일러스. 그리고 실제 우리 주변에서 홀로 울고 있을 많은 사람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어떤가요? 혹시 혼자 울어야 하는 하루를 살고 있지는 않나요?


***
괜찮습니다. 아파도 괜찮습니다.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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