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칠드런 액트" 그녀는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라 했지만 [영화]

글 입력 2019.07.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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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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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믿음, 책임. 영화 <칠드런 액트>에선 이 단어들이 둥실거리며 떠다닌다. 오늘 점심을 뭘 먹을까, 오늘은 뭘 할까 같은 가벼운 문제도 있지만 영화는 종교와 법을 소재로 선택했다. 가장 무거운 부분을 건드리기로 한 셈. 양심적 병역 거부 때문에 알게 된 여호화의 증인. 왕국회관을 다니고 특징적으로 수혈을 받지 않는다. 사회 이슈로라면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지만 지인이 여호와의 증인이란 걸 들었을 때는 내심 걱정을 했다. 수혈받을만한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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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눈동자 색이 빛나는 18살 애덤 헨리에겐 안타깝게도 그 일이 일어났다. 백혈병에 걸렸고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니 수혈이 필요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그는 수혈을 거부한다. 병원과 애덤의 부모님은 수혈 때문에 재판을 하게 되었고 담당판사가 피오나 메이였다. 법관, 판사라는 직업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결정의 무거움을 평생 안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더라.

영화 속에서 그녀가 담당한 재판은 누가 고르래도 어려운 딜레마였다. 문제는 솔로몬의 재판급인데, 결정은 솔로몬처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 어려웠다. 모두 신의 영역, 생명의 영역을 결정하는것이었다. 처음 재판도 몸이 붙어있는 두 쌍둥이를 냅두느냐, 분리수술을 해서 살 가능성이 높은 하나라도 살리냐. 이번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을 허락하느냐, 치료를 받게 냅두느냐.

그녀는 한결같았다.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살 수 있다면 살 가능성이 높은 방향을 선택했다. 고심끝에, 휴일도 저녁도 없이 우선순위로 내린 그 판결은 존경은커녕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모두들 그 판결로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바쁠 뿐이고 그녀는 사람을 피하느라 출퇴근에 잘 보이지 않는 뒷길로 가야 한다. 그녀는 판사님이라는 뜻으로 My lady라고 불리지만 레이디의 삶이라기엔 너무나 건조했다. 자기 자신을, 아내로서의 자신을 뒤로 미루는 게 습관이 된 듯 했고 그 와중에 남편이 청천벽력처럼 서운함의 도장을 찍는다. "나 바람 피울 것 같아." 피울 것 같은 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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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서운함을 폭발하는데 기승전 없이 결로 갑니까. 피오나가 너무 무덤덤하긴 하다. 사랑하던 이와 멀어져 가고, 부부가 아니라 남매같은 생활이 남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늘 바쁘고 그게 당연해서 그와 함께 하지 못하는 그녀가 야속해서 그렇게 말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정말 행동에 옮겼다. 선전포고식의 도발이 아니었다.

궁금했다. 좋아하는 건 아닌데 바람은 피울 수 있고, 하지만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무슨 심보일까. 말 그대로인 건 아는데 한 가지 놓친 게 있지 않나. 상처받는 거 말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바람을 피워서 상처받았는데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나는 돌아왔어! 말면 그 뿐이냐 말이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느낌이다. 무엇이 더 나쁜걸까? 바람은 피우지 않지만 건조한 결혼생활, 때때로 바람은 피우지만 사랑이 충만한 결혼생활. 판사가 아니라도 생각해봄직한 흥미로운 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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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남편의 도발이자 폭발이 그녀를 흔들긴 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연달아 했다. 애덤에 대한 재판 도중에 예외적으로 그를 직접 만나러 갔다. 애덤과 피오나가 중환자실에서 나눈 짧은 대화만으로도, 둘 사이의 케미가 대단했다.

그의 혈관은 피를 만들지 못하고 폐는 숨을 잘 쉬지 못하는데도 그녀와의 대화로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음악과 문학을 좋아하는 피오나가 애덤에게 기타 훈수를 두고 그가 대강 기타로 대강 치던 <Down By the Sally Gardens>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데, 내가 애덤이라도 반했을 것이다. 둘다 무척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예상했던 소재는 이미 바닥이 났고 판결도 제법 일찍 나왔다. 피오나는 칠드런 액트에 기반하여 아동의 복지를 위하는 길, 수혈하여 백혈병을 치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애덤은 건강해졌다. 바로 여기서부터 영화는 진짜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졌다.

애덤이 피오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한다니. 무려 좋아하고 동경하게 된다니. 고작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비를 잔뜩 맞은 채 찾아오고, 그녀에게 사랑을 담은 시를 쓰고, 함께 살자고 하고, 판결문을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좀 스토커스러운데 또 위협적이진 않고, 어딘지 모르게 짠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가 실제로 마음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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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와의 한 번의 만남과 한 번의 판결이 그를 바꾸었다. 사실 애덤의 논리는 빈약하다. 대신 마음은 절박하다. 내 삶에 결정하고 관여했으니 앞으로의 나에게도 갈 길을 알려달라? 그를 지탱하던 기반이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성인이 되었고 야속함과 기대를 동시에 피오나에게 쏟았다고 본다.

이 괴로움에서 구해달라고. 길을 알려달라고. 동아줄처럼 붙잡은 것이다. 판결로 생명을 얻었으나 믿음은 무너졌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신념도 그리 진정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그저 믿음을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들려던 패기로운 고등학생이었지, 그 믿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이 사는 가능성은 생각할 만큼 현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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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를 만난 이들이 모두 그가 특별하고 매우 생각이 확고하다고 했다. 수혈을 받는 모습을 보고 흘린 부모님의 눈물이 믿음을 저버린 슬픔이 아니라 자식이 살았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믿은 게 아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주일이 되면 왕국회관으로 다시 찾아가는 그 모습은 또 뭐란 말인가. 본질을 놓치고 형식으로만 믿는 건 아닌가.

그는 왕국회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존재가 믿음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고도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문제다. 믿음이 한 번 깨졌는데 다시 깨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깨어질 믿음이면 왜 믿었던 건가. 애덤, 믿음이든 약속이든 깨지는 경우가 무척 많더라. 그게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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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병에 걸릴 줄 알았다면, 그래서 이번엔 치료받지 않고 죽어갈 것이었다면, 차라리 애초에 수혈받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게 나았을까? 그럼에도 나는 피오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 빛나는 눈빛을, 해맑은 미소를, 사랑스러운 친구를 놓칠 수가 없었을 테니까.

그녀의 남편은 애덤을 사랑했냐고 묻지만, 꼭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책없이 순수한 마음에 설레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만, 그의 대책없는 표현에 그녀가 많이 경계해서 놓쳤던 것은 있다. 그는 판사보다는 피오나가 곁에 필요했고, 어른보다는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책없이 찾아온 그에겐 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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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끈 것은 그 자신이었다. 신념을 저버리고 살아 있다는 것을 그는 계속 마음에 담아 두었다. 부모님이 보여주는 그 모순이, 자신이 납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믿음도, 선택도 일관되지 않았으니까.

또다시 병을 얻었을 때 그는 신념을 택하고, 죽음을 택해서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졌다. 그의 죽음은 그녀의 책임과 권한 밖의 일이지만 마음 아플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믿음과 선택, 결정이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새 수많은 이의 케이스에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 되었고 그녀는 그게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이 잘못되었던 것이라면? 그녀가 차라리 그의 신념을 처음부터 존중했다면, 좀 더 일찍 그와 한 시간만 대화했어도, 혹은 한 통이라도 답장을 보냈다면, 사랑편지 같지만 알고 보면 고민이 가득한 그의 편지를 제대로 읽었다면, 그의 순수함을 경계하지 않고 다독여주었더라면.

그에게 <Down by the Sally Garden>을 한번 더 불러주었다면. 그러면 그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계속 살아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눈을 빛내며 언젠가 그녀에게 감사하다며 웃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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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분에 계속 그 노래가 생각나서 흥얼거렸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이 노래의 가사에 다 들어있는 듯 하다. 애덤이 아일랜드 음악에 예이츠의 시를 덧붙인 이 노래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면 피오나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가 사랑하고 동경한 그녀는 애덤이 삶을, 사랑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길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었으나 어리고 어리석은 애덤에겐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결국 남은 이들에게, 그녀에게, 그 자신에게 눈물을 남기고 말았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
my love and I did meet
She passed the Salley gardens
with little snow-white feet.

She bid me take love easy,
as the leaves grow on the tree
But I, being young and foolish,
with her would not agree.

In a field by the river
 my love and I did stand,
And on my leaning shoulder
 she laid her snow-white hand.

She bid me take life easy,
as the grass grows on the weirs
But I was young and foolish,
and now am full of tears.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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