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르나르 뷔페 [전시]

글 입력 2019.07.0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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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대를 하고 전시에 갔다.

차갑고 가늘가늘하고 아슬아슬할 것만 같았던 내 예상은 제대로 틀렸다.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엄청 기 빨리는(?) 전시였다. 전시를 한 번에 보기가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보다가 중간에 탈진한 듯 쉬다가, 좀 지나서 일어나서 다시 봤다.

눈이 뱅글뱅글 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만큼 아우라가 강한 작품들이었다. 엄청나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고 지친 상태로 전시장을 나왔다. SNS에 올린 타이틀은 '기 빨리는 전시'였다. 그래서 비추하느냐? 아니, 그래서 더 강력하게 추천한다. 내 진을 빠지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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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가늘고 경직된 선이 많았다. 처음부터 선이 딱딱했다. 그리고 무채색이 대부분이었다. 뭔가 딱딱하고 단단하게 응축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왠지 모를 예리함이 느껴졌다. 무언가 팡 하고 터질 것만 같은데, 터지지 않고 차갑게 누른 듯한, 조용하고 서늘한 그림이었다. 나는 이런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드는 작품이 좋다. 그러한 일환으로 흐린 하늘과 전봇대 선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라앉은 그림에서 스케치 같은 잔선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 지저분한 흔적들을 좋아한다. 보통 그림을 그리리면 맘에 안들거나 잘못 그어진 선을 지우기 마련이다. 부끄러우니까. 하지만 흔적을 지우지 않는 건 용기이면서도 대단한 자신감이다. 틀린 선이 보여도 상관없는 그런 자신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흔적과 흐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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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부분으로 가니 힘이 굉장히 넘쳤다. 블랙이 차고 넘쳤다.

동양화 수묵화 느낌이 나기도 했다. 블랙을 굉장히 많이 잘 쓴다. 이렇게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니. 이 힘을 절제하니 극도로 우울해지는 걸까? 굉장히 파워풀했다. 마치 봉인 해제처럼 마띠에르(재질감)가 굉장했다.

그런데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성적으로 칼같이 그린 부분도 있으면서 동시에 미친듯한 광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화면에 두 가지 요소가 다 보인다. 굉장히 자신을 잘 컨트롤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절제할 때와 표출할 때를 본능적으로 아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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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 에코르세. 미친 사람들 시리즈. 너무 무섭고 역했다. 토하고 싶었다. 너무 소름 돋고 무서워서 몸이 떨렸다. 그림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같이 돌아버리는 것 같았다. 이 광기를 숨기지 않고 다 토해내면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나. 정말 힘이 강렬해서 오래 보지 못했다.

호랑이 앞에 선 토끼처럼 눈을 보게 되면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지만 그걸 즐기는 사람은 이런 걸까 싶기도 했다. 철저하게 바닥에 있는 욕망을 눈앞에 억지로 꺼낸 느낌일까? 너무 두려웠다 정말. 그림을 더 보고 싶은데도 떨려서 보지 못했다.

에너지가 저세상 텐션인 사람이다. 그런데 난색을 써도 따스한 느낌은 안 든다. 화이트와 블랙, 그리고 미친 주황색을 적절하게 잘 썼다. 예시로 도시들 시리즈 중에 뉴욕을 보면 에너지는 많지만 굉장히 서늘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작품이 진전될수록 점차 본인다워졌다. 노련미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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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기가 빨려서, 광대와 죽음 시리즈에서는 쉬었다. 너무 지쳤다. 그래서 꽤 쉬다가 다시 일어나서 그림을 보았다. 광대는 모든 종류로 변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다고? 오만상 찡그리면서 보았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그림은 까만 테두리 선이 뚜렷하게 있다. 페르소나를 강조해서 그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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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힘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에 그 어떤 매체가 아무리 나온다고 해도, 회화는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고. 굉장한 자아를 가졌다. '작품은 영감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통해 성실함과 에너지 두 가지 다 지닌 것을 알 수 있다. 화가라는 자의식이 강했다. 정말 단단한 사람이다. 이쯤 되면 내가 작품을 만드는지, 작품이 나를 만드는지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무아지경일 거 같은데.


그림은 무채색에서 점차 화려해졌다. 많은 에너지를 억압, 표출, 절제한 차이일까? 처음에 얇았지만 점차 두꺼워지는 마띠에르를 보고 당혹스러웠다. 내가 예상한 작가의 스타일은 이게 아닌데? 에너지에 압도당했다.


그게 이 사람의 모습이니까. 그게 평생의 작업이고 주어진 것이니까. 왜 광대로 기억되는지, 죽음 시리즈의 그림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그림 그릴 때의 순수한 기쁨보다는 그저 본능에 가까워 보인다.

아내의 글이 작품을 소개한다. 소설이나 에세이 같았다. 그래서 전시와 손톱만한 조막만한 글도 같이 즐길 수 있다. 참고로 전시를 보게 된다면 에너지를 감당할 마음도 먹고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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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뷔페 展
- 나는 광대다 : 천재의 캔버스 -


일자 : 2019.06.08 ~ 2019.09.15

시간
11:00 ~20:00
(19:00 입장마감)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최
조선일보사
Fonds de Dotation Bernard Buffet
㈜한솔비비케이

후원
주한프랑스문화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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