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내달리는 욕망의 세계에 대한 관조 - 연극 "그때, 변홍례"

글 입력 2019.07.01 13: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18_0527_그때변홍례_1.jpg
 

1931년 7월 31일 오전 세시 경 부산 초량철도대교 집 하녀 침실, 변홍례가 잠든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부산 초량동의 일본인 집에서 일하던 조선인 하녀 변흥례가 희생되었다. 경찰은 증거 하나 없는 이 사건을 '괴이하다.' 생각했다. 직접적 사망 사인은 질식사. 질식사 외에도 가슴과 입술에 물린 자국이 선명했고 복부에 석 차례 뾰족한 무언가에 찔린 자상이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맹목적 의지의 꼭두각시인 인간이 욕망에 쫓겨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의지는 목적이 없기에 최종적인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막대한 부, 열정적 사랑은 그때 그때 떠오르는 욕망의 연쇄일뿐, 소망은 달성되자마자 또다른 형태로 떠오른다.


당시 사회 분위기와 세간의 평가와 맞물려 표현 양상은 다를 수 있지만, <그때, 변홍례>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끊임없이 욕망에 쫓긴다. 연극이라는 형식과 다른 시대라는 경계선이 있지만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닌다. 권력과 욕망에 쫓기는 등장인물들은 맹목적인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오늘날의 모습과 별달리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세련된 형식인 하나의 '비전'으로 제시되곤 한다.


2018_1101_그때변홍례_5.jpg
 


연출 윤시중은 <그때, 변홍례>와 관련해 욕망을 가진 생명체끼리의 충돌은 세상을 ‘짐승의 세계’로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인류가 지금까지 지나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아이러니에 대하여 질문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연극을 만드는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내면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고 싶었다고 서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연극은 '사과'를 굳이 '그림 속 사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용 그자체보다는 표현 방식에 관심이 간다.<그때, 변홍례>는 ‘마치 탐정소설 같은’이라는 실제 신문기사의 글처럼 그 시대 대중문화인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적극적으로 공연에 접목시켜 작품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 시대의 가장 진정성 있는 표현방식이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의미와 재미를 준다. 배우들이 알맞게 ‘재현(re-presentation)’한다는 느낌을 더욱 강조시켜, 작품의 허구성을 극대화 시킨다. 앞서 말했듯이 연극이 굳이 '그림 속 사과'로 표현되는 지점이다.



2018_1101_그때변홍례_4.jpg
 

시공간에서 독립적인 하나의 가상공간에서 내용을 전개하는 연극이라는 특성에 맞게, 소리와 빛의 활용은 단순한 효과를 넘어서 배우가 적극적으로 운영한다. 연극의 빛은 자연의 빛이나 기능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서사의 재료로서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당연하지만 놀라운 이야기다. 앞서 말한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이 가상공간에서 시공간에 머무르는 근거율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표상이 아니라 그 너머의 무엇이다. 빛과 소리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뒤쫓다가 어느 순간엔 앞서가며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갖는다. 빛을 쫓아가기 위해서 배우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준다.

여기서 목소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변사가 대신 이야기 해준다는 것이다. 무성영화처럼 배우들은 죽음의 진실과, ‘변홍례’의 삶을 놀이로 장면화시키고 행동과 말투는 1930년대 신파조와 그 시절 말투로 표현한다. 배우들은 현대적인 변사로 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극에 개입해 등장인물 대사를 여러 배우가 맡아 전달한다.


사실 '왜 목소리를 대신 전달하는가'는 직접 감상해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의 서문에서 소개한 쇼펜하우어는 근거율에 종속되지 않는,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는 예술이 의자와 현존재의 제약성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도 호평받은 <그때, 변홍례>다. 이번 기회에 감상해보는게 어떨까.

그때,변홍례포스터(최종).jpg
 




그때, 변홍례
- 2019 창작산실 올해의 레퍼토리 -


일자 : 2019.07.13 ~ 07.21

시간
평일 20시
토 15시, 19시
일 15시
월 쉼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하땅세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5세이상

공연시간
80분





극단 하땅세


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

극단 하땅세는 <그때, 변홍례> ,<위대한 놀이>, <파우스트l+ll>, <파리대왕> 과 같은 개성 있는 작품을 창작하며, 다양한 계층의 관객들로부터 호평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의 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극단이다. 처음에 간직한 '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는 강한 정신과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핀다.'는 공동체 작업을 통해 터득한 사유의 정신으로 창작하는 극단이다.



KakaoTalk_20180723_235535454.jpg
 


[손진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