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혼이 깃든 소리로 영화를 움직이다 – 춘향전쟁

글 입력 2019.06.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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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서울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긴 세월 우리 나라의 전통 로맨스 극으로 명성을 떨친 춘향전을 모티브로 두 영화가 동시에 개봉한 해였다. 제작진과 출연진의 차이가 컸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시대를 사로잡았던 신상옥 감독과 홍성기 감독의 대 격돌이 이루어졌으며, 배우 김지미와 최은희가 연기 대결을 펼쳤다.


사람들의 관심이 몰리지 않을 수 없는 세기의 대결인 것이다. 연극 <춘향전쟁>은 당시 일어났던 이런 흥미로운 상황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풀어낸다. 영화 성춘향을 이끈 신감독과 그의 곁에서 묵묵히 소리 연출을 담당하는 폴리아티스트 이세형을 조명하며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진 실감 나는 현장 해설을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 특성상 부모님과 함께 보면 참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 춘향전쟁을 목도하시진 않으셨겠지만, 1961년은 아버지의 생일이 있는 해다. 어머니가 태어나신 해도 비슷하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는데, 나는 아무리 이름과 얼굴을 봐도 누군지 모르는 영화 성춘향과 춘향전의 배우들을 어머니는 오랜만에 본 친우의 얼굴인 양 반가워하며 추억을 되새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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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춘향이 개봉하기 바로 전날, 아주 늦은 밤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연극은 통행금지령이 떨어지기 직전의 긴박한 짧은 시간대를 설정함으로써 시작부터 쫀쫀한 몰입력을 전한다. 이 연극에는 다양한 매력포인트가 있지만 그중 다른 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감칠맛이 느껴졌던 것은 ‘소리’의 특성을 다방면으로 극대화한 점에 있다.

탁 트인 무대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생활 집기들 사이 영화에 소리로 영혼을 불어넣는 폴리아티스트의 움직임이 펼쳐지며, 신감독은 구성진 판소리로 극의 흐름을 이어가는 해설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재치있는 어조로 연극을 맛깔나게 만든다.

완성도 있는 소리 연출을 위해 이미 마무리된 필름을 몰래 빼돌린 폴리아티스트는 당장 극장으로 돌아가려는 신감독과 대립을 이룬다. 하지만 콩알로 발소리를, 양배추로 그네 움직이는 소리를, 내는 등 형형색색의 빛깔을 구현하는 소리의 세계를 맛본 신감독은 그의 열정에 매료돼 함께 주 장면에 다시 소리를 입히기에 이른다.

춘향과 몽룡이 만나는 장면, 그들의 첫날밤, 춘향의 투옥, 암행어사 출두 현장까지 스토리에 따라 상상도 못한 다양한 소재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가늠치 못할 정도로 흥미로웠다. 이게 정말 진정한 ASMR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울러 무대에서 함께한 관악기, 가야금, 타악 연주자분들의 화려한 음색은 엄청난 현장감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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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소리를 입힌다는 구성을 바탕으로 자칫 단순할 수 있었던 스토리는 의외로 전혀 지루할 틈 없이 입체적인 면모를 보였다. 성춘향의 영화 한 장면, 그리고 소리를 표현하는 장면이 번갈아 이어지나 놀라울 정도로 시각적, 청각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극이 지닌 복합적인 시점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감독이 소리꾼의 역할을 맡는 연극의 특성상 극중에는 크게 세 가지의 시점이 존재한다. 1961년 당시 개봉했던 영화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스크린으로 과거가 접목되고, 그 당시의 상황을 재해석해 영화의 소리를 입히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분명히 과거의 시점이긴 하나 새롭게 재창조된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며, 이 스토리와 관객 사이를 오가며 소리꾼이 해설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연극이 시연되는 현재의 시간대가 복합적으로 얽혀든다. 절묘하게 시간의 마디를 오가는 연극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흥미진진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더욱이 암행어사 출두 장면의 소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을 녹음실 건물에 사는 사람들로 상정하고 이들의 함성을 담아낸 연출은 생생한 현장감의 방점을 찍었다. 현실의 목소리가 극 무대 위에, 더 나아가 영화 성춘향 위에 오버랩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새길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다같이 소리쳐보자는 극 진행자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어찌나 크게 함성을 지르시던지. 그렇게 큰 소리를 내실 수 있다는 걸 평생 함께 살아오면서 처음 알았다. 그런 점에서도 남녀노소 누구나 다같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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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소리를 주제로 한 독특한 구성과 연출이 돋보였던 연극이지만, 이러한 표현력에 감동이 곁들여져 더욱 의미 있었다. 더 나은 소리, 더 생생한 소리, 더 살아있는 소리를 구현하고자 한 폴리아티스트의 열정에 힘입어 그저 개봉만 하면 됐다고 소리치던 신감독은 잊어버렸던 지난날의 꿈을 되찾는다. 통행금지령을 알리는 종소리도, 동이 터오는 하늘도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동감 넘치는 소리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겠다는,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소리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겠다는 폴리아티스트 이세형의 모습에서 그는 마냥 영화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린 것이다. 소리는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나보다.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그리고 무대 위에 서있는 신감독까지 모두가 동일한 흥분감을 안고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현실에 상상력을 덧댄 팩션이긴 하지만, 1961년을 다녀온 그 하룻밤만큼은 무대 위 모든 흐름을 사실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우리 삶의 모든 면면에는 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소리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소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면서 전통 국악의 매력을 새삼 깨우치게 되었던 소중한 연극. 이 세상을 채우는 모든 소리의, 소리를 위한, 소리에 의한 매력적인 연극 <춘향전쟁>은 소리로 생명력 있는 영화를 완성한 두 남자의 반짝이는 꿈을 너무도 재미있게 표현했다. 연극이 다 끝난 지금도, 귓가에 자글거리는 양배추 움켜쥐는 소리가 춘향이의 신명나는 그네 소리로 들릴 만큼.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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