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술을 먹기 위한 치열한 투쟁 [도서]

최인호-<술꾼>을 읽고
글 입력 2019.06.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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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술꾼’, 이 소설에서 주인공 ‘아이’는 이른바 ‘술꾼’이다.


아이가 전전하며 돌아다니는 많은 술집에서의 술꾼들은 아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주당이겠지만, 이 소설에서의 제목인 술꾼은 진정으로 ‘아이’를 뜻하는 것 같다. 아이는 거리를 배회하며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아니, 사실 그에게 아버지는 없다.


몸이 위독한 어머니도 없으며 그의 집은 ‘고아원’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어딘가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부모의 이름을 팔아가며 술꾼들에게서 술을 얻어 마신다. 급기엔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에게서 돈까지 훔쳐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이렇게 술을 마시기 위해 갖가지 짓을 다하는 이 아이가 바로 술꾼이지 않겠는가.

 

소설은 아이의 술집 방문으로 시작된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며,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며 술꾼들에게서 술을 얻어 마시는 모습은 처음엔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찾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술꾼이라 취해 돌아다니고 있고, 그를 찾기 위한 아이의 사투는 다른 술꾼들의 미성년자에게 강요하는 술에 의해 처절하게 패배하는 모습이었다.


억지로 술을 터 넣는 아이의 모습은 내게 술을 이겨내고 아버지를 찾길 바라는 ‘간절함’까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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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소설의 막바지에 다다라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은 억지가 아니었으며 간절함도 위급한 상황도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이의 계획이었고, 철저하게 술꾼들을 속여 술을 얻어 마시려는 아이의 노련함이었다.

 

이 소설의 반전은 뭐랄까 그렇게 술에 대한 아이의 욕망과 집념으로 다가왔다. 내게는 이 소설이 아이의 ‘술을 먹기 위한 치열한 투쟁’으로 더 다가와서 재미있었는데, 마지막 반전을 맞이했을 때 번진 생각이 소설을 지배해버렸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 어쩌다가 맛본 술맛에 의해 아이는 완전히 취했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맛. 소주, 막걸리를 비롯한 각종 알코올. 부모님이 없이, 그리고 괜찮은 놀이 없이 살았던 그에게 술은 최고의 놀이감이였을 것이며, 그를 위로해주는 단 하나의 부모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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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갓 성인이 되었던 대학생 시절에는 ‘술’을 먹기 위한 투쟁을 벌이곤 했었다. 성인으로서 당당히 술을 마시는 것. 고등학생 때 막연히 술을 상상만 해왔던 내게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술자리의 분위기를 이겨야 하고 졸음을 이겨내야 하고 때로는 사람을 이겨야하며 통금 시간과 싸우고 결정적으로 술 자체와도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야만, 지더라도 적당히 승부를 봐야만 술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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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술은 참 흥미로운 음료다.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다른 음료와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 술. 결국 모든 것을 이겨내고 술을 들이켰을 때의 그 짜릿함을 ‘아이’는 알아버린 게 아닐까.


적당히 늦은 밤 한강을 따라 걸으며 한 모금 하는 맥주를 상상해보라. 상상만으로 달달한 신음을 낸다면, 그는 벌써 술꾼일 것이다. 주당과 술꾼은 그러한 점에서 다르다. 또한 그래서 우리는 주당은 아니지만 모두 또 하나의 술꾼일 것이다.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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