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통해 현시대를 되돌아보다, 루드비히 티크의 루넨베르크

글 입력 2019.06.2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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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독일은 계몽주의가 사회를 지배했다. 계몽주의란, 이성의 힘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믿으며 현존 질서를 타파하고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조이다. 문화 예술을 창작하는 데에도, 이를 해석하고 향유하는 데에도 이성과 합리성의 검열을 거쳤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 발발했고, 이웃나라를 지켜보던 독일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의 이념대로, 혁명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 과정 중, 국왕의 처형, 9월 학살, 자코뱅당의 지배 등 폭력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지식인들은 이에 크게 실망하게 된다. 당대 독일인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얻은 사회의 변화가능성과 폭력적 혁명의 정당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심사숙고하게 되었고, 이 같은 반성에서 문학의 역할도 새롭게 재고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사조가 괴테로 대표되는 고전주의와 헤르만헤세로 대표되는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에서 금기시된 무의식성과 비합리성을 발견하고, 상상력, 마법, 꿈, 광기와 같은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과 내면으로 침잠하지 않고,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견고한 질서를, 기이하고 환상적인 인물과 사건 속에서 현실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낭만주의 작가들은 세계의 중심을 인간의 자아에 두며 자유의지로부터 기인된 환상을 중시하는 초월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현실적인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마음껏 펼 수 있는 환상적 세계를 추구했다. 이러한 자유의자와 환상의 낭만주의 시대의 동화, 루드비히 티크의 루넨베르크(루넨산)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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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넨베르크의 줄거리

크리스티안은 외지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부모를 떠나 가출한다. 숲속에서 그가 어느 식물 뿌리를 뽑자, 땅속 깊은 곳에서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낯선 남자가 나타나 루넨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날 밤 루넨산에 오른 크리스티안은 초자연적 미녀인 산의 여왕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고, 보석들이 수수께끼 같은 형상으로 배열된 석판을 그녀로부터 받는다. 이때부터 현실과 꿈과 망상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튿날 깨어보니 석판은 사라지고 없다. 크리스티안은 인근마을에 내려가 임차농가의 딸을 사랑하게 되어, 얼마 후 결혼으로 일상의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극복된 듯하던 시적 망상은 몇년 뒤 이방인이 찾아와 거금을 맡기고 사라짐으로써 다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이방인의 금화로 주인공의 판단력이 흐려지고, 방랑자이자 숲의 노파로 다시 나타난 악령에게서 옛날의 석판을 되찾은 그는 부친과 아내의 만류를 끝내 뿌리치며 더 많은 금과 보석을 캐내려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가 실종된 뒤 집에는 경제적 재난이 닥치고 노인들이 죽는다. 여러 해가 지난 뒤 그는 실성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는데, 돌멩이를 자루에 담아 메고 다니며 그것이 보석이라고 자랑한다. 늙고 미친 주인공은 이제 숲의 노파, 즉 마녀로 바뀐 산의 여왕을 따라 영원히 숲속으로 사라진다.

*

루넨베르크의 줄거리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루넨산의 마력으로 인해 광기에 빠지는 크리스티안의 비극적인 운명' 이다. 크리스티안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마력에 이끌려 시민사회를 이탈하고, 숲의 여인을 따라 영원히 숲 속으로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시대와 루넨베르크가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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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산업혁명은 공장제 대량생산에 기반하고 있기에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단순한 교환의 매개체였던 돈이 자본으로서 등장하게 되었고, 돈이 돈을 벌어오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의 척도가 돈이 되는 사회로 바뀌었다. 돈과 소비 그리고 기술. 즉 이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단어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 개념이 된 것이다.

이러한 산업혁명에 기술의 발전까지 더해지면서 또 한 번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사이버 물리시스템, 사물인터넷의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회로의 도약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보다 지능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의 흐름은 정신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소홀히 하고, 이성과 지능, 현실세계만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술과 인문학의 위기가 이를 반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한 통찰력, 세상을 다르게 보려는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루넨베르크에서 크리스티안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현실과는 구분되는, 새롭고 마적인 세계에 대한 욕구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개개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현실 사회의 안락함을 버리고 숲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삶을 찾도록 만드는 것은 현실과 공존할 수 없는, 혹은 현실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될 환상적인 행동이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산으로 향한다.

그가 향하는 깊은 숲 속이란 단순히 풀과 나무가 우거진 현실 세계의 숲이 아니라 본능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크리스티안이 인식하는 숲의 세계는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는 크리스티안의 행동에 대한 반응 또한 나누어지게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의 행동을 정신착란 증상이라고 여기고 안쓰럽게 혹은 공포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에게 숲으로 가는 행동은 본능으로써 기존의 현실 세계에 도전하려는 시도이고, 세상에 대한 새롭고 획기적인 해석인 것이다. 이는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인 노발리스의 말과 같은 맥락으로 분석할 수 있다.


Die Welt muss romantisiert werden. So findet man den ursprünglichen Sinn wieder.


세계는 낭만화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근원적인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 - Novalis



기술에만 열광하는 시류 속 자아통찰과 세상을 다르게 보려는 시도가 필요한 현 시점에서, 이러한 루넨베르크는 사회에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기는 동화라고 생각된다.



개인적 감상

최근 1년간, 많은 생각들을 했다. 대부분의 생각들은 두 가지로 범주화되어 설명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사유'이다. 불현듯 스치는 불안감, 시간의 영속성, 밤마다 몰려들어오는 우울함과 자괴감, 내 정신적 표상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사소한 것들에 민감히 반응하고 끈질기게 사유했던 모습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완성된 글들의 내용은 결국 실존적 불안정으로 귀결되었다. 본래 타인에 대한 의심이 많고 예민하며, 종교 또한 허상에 불과하다고 믿는 나는 이런 생각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두 번째는 '작가에 대한 동경'이다. 얼마 전, 문득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대판 계몽주의' 사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감성만을 좇기에는 겁이 났다. 경제와 경영, 과학과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인간이 그저 자본을 위한 자원으로 치부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순수하게 예술과 창조의 정신을 따르기에는, 역설적이게도 다분히 자본주의 타성에 젖은 나이기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미련과 동경으로 남아 계속해서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넨베르크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광기에 찬 잔혹 동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낭만주의적 관점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크리스티안을 단순한 정신착란자로서 바라보는 것은 작가인 티크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점, 마적인 능력을 가진 것만 같은 본능에 계속해서 이끌리고, 현실세계를 살지만 자꾸 뒤돌아보며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점에서 나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이 자연의 마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찾기 위해서 숲으로 돌아가는 용기와 마적인 힘이 부럽기도 했다. 현실 세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사실상 구조 안에 있어 어떠한 시도도할 수 없는 무력한 내게 마력으로나마 현실 사회에서 도피할 기회를 쥐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크리스티안이 숲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습의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몹시 해진 누더기를 걸친 남자로서, 맨발인데다, 햇빛에 그을려 흑갈색이 된 얼굴은 덥수룩하고 긴 수염 때문에 더욱 흉물스러웠다. 그는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으나, 녹색 나뭇잎을 테 모양으로 머리털 사이에 엮어 매어서, 그것이 그의 거친 인상을 더욱 기이하고 불가사의하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단순히 보았을 때에는 그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현대적으로 해석되는 '동화'의 이미지와는 상충되는 자극적 묘사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흥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이 장면을 반추해보니, 오히려 크리스티안이 월계관을 쓴 북유럽 혹은 그리스의 신과 같아 보였다. 낭만적이고 본능적인 시선으로 하여금 현 세상을 다르게 보려는 획기적인 시도를 한 그가 견고한 현실 세계에 대한 도전자이자 나아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들 창조자처럼 비춰졌다.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인간으로서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고, 세상에 전면적으로 도전할만한 대단한 위인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무는 질문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 루넨베르크의 크리스티안을 떠올릴 것 같다. 낭만과 본능을 그리며 크리스티안의 루넨산을 남몰래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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