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는 이만큼 거대하다 - 영화 "버블 패밀리"

글 입력 2019.06.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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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란 언어는 68년 전후로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의 구호다. 출산, 양육, 연애 등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것들 역시 사회구조의 자장 아래 있음을 선언하는 언어다. 자의적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선택의 배후엔 구조가 있다. 개인은 구조 아래 삶을 영위하며 개인의 선택은 당대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동시에 그것은 개인 선택의 방향을 좌우할 만큼 구조가 거대하다는 의미도 된다.


<버블 패밀리>는 감독 스스로의 가정사다. 감독의 아버지는 노동하여 돈 벌지 않는다. 개발 정보를 얻기 위해 종일 서울을 맴도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감독이 지원받은 제작비를 아파트 개발에 투자해보자고 할 만큼 현실감각이 없다. 어머니는 노동하지 않는 아버지 대신 집안 생계를 책임진다. 가사도 그녀의 몫이다. 수행되지 않아야 할 공간에서 전단지를 돌리다 쫓겨나는 수모를 겪어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닦달하지 않는다. 남편이 획득한 정보가 언젠가 실천되면 생계유지 정도는 될 거라 믿는다. 그 부모의 자녀인 감독은 돈돈돈 하는 가족의 음성을 듣고 싶지 않아 자립했다. 감독 자신 또한 집안 생계에 보탬이 되진 못한다. 겨우 자급자족하여 연명하는 수준이다.


감독이 <버블 패밀리>를 기획한 건 자기 가족이 붕괴됐음을 느껴서다. 낯익은 남자가 지하철 역사로 진입한다. 감독은 따라가다 놓친다. 남자는 아버지였다. 감독은 아버지에게 전화하지만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을 듣는다. 감독은 자기 가족이 언제부터 붕괴의 조짐을 보였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한 감각 정도만 있었을 테다. 학비 지급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부터 였는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엇 하나 바뀔 기색 없는 그들에게서 실망한 순간부터 였는지. 저물어가는 기세를 제동하려는 시도가 고작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 이어선지. 그것 모두일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다. 그러나 막연한 감각이 구체적 실감으로 바뀐 건 그때다. 감독은 부모 전화번호를 몰랐고 부모 또한 자기 신상의 변화를 자녀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관한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호명할 수 없는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버블 패밀리>가 제작된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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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금의 몰락한 양상과 부동산에 투자하는 족족 몇 배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여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던 과거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그리하여 몰락의 기원을 추적한다. 도전은 반드시 성취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감독 부모에게 있었다. 정말 도전하면 성공했다. 분수에 넘치게 소비해도 돈이 남았다. 그들은 여유로웠다. 주택 개발 열풍이 식고 정부는 개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부모가 투자한 땅도 규제 영역에 포함됐다. 이익 창출은커녕 원금 환수도 못했다. 처음 경험하는 실패였다. 실패의 규모는 컸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엇이든 다시 투자하면 되니까. 그걸 용인하고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그 즈음 국가경제는 IMF에 자본을 대출해야 할 만큼 쇠락하고 있었다. IMF는 사회 분위기를 전복했다. 냉소가 팽배했다. 모두가 몰락과 근접한 거대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다. 부모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몰락은 돈의 유무로 가름됐지만, 개인이 돈을 버느냐 마느냐는 구조에 의해 좌우됐다. 정부가 개발정책을 집행하자 감독 부모는 그 흐름을 타서 돈을 벌었다. 국가의 경제성장이 하락세에 이르고 IMF 사태를 대면하자 그들은 추락했다. 가족의 붕괴, 개인의 몰락 같은 것들이 당대 구조의 영향을 받아 발생했다.


영화는 개인은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역설하고 구조가 그만큼 거대함을 천명한다. 그리고 그 IMF란 국가적 재난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파를 행사한다. 감독의 가정은 IMF 때의 실패 이후 월세 낼 형편도 못되며 그 가난이 대물림돼 감독 개인 또한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감독은 희망을 말한다. 붕괴를 감각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감독과 그런 그에게 부모로써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게 가난은 아니었다며 땅을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에서 감독은 이 가정이 언제가 회복될지도 모르겠다고 은유한다.


개인의 삶은 지속적으로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개인들의 삶은 저마다 고유하게 빚어진다. ‘사회’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불투명한 존재로서 개인의 일생이 있다는 것. <버블패밀리>의 마지막은 어쩌면 그걸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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