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에릭 요한슨 사진展 -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글 입력 2019.06.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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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만에 다시 마주한 서울은 거대했다. 이 거대한 기계덩이에서 바쁘게 굴러가던 일상이 나의 시간이 아주 먼 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 이번 서울 나들이의 명분은 이 한가람 미술관의 전시,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마주하는 것이었지만, 이외에도 여러 개인적인 일정이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났고, 근황을 나누고 이전에 잠시 머물렀던 공간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약간은 가뿐해진 마음으로, 또 약간은 낯선 반 여행자의 마음으로, 또 다른 익숙함이 물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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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하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전시장 출입구엔 꽤 많은 수의 인파가 몰려있었고 대기 후 번호에 따라 입장을 하고 있었다. 다른 날에도 이 정도의 인파가 몰렸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적북적 기피증이 있는 나로서는 그리 긍정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그건 내 옆의 친구도 마찬가지. '역시 주말엔 전시에 오면 안 되는 건가' 중얼거리며 차례를 기다렸다.

어떤 전시를 가든 늘 고민하는 지점이지만 전시의 흥행은 늘 전시 관람의 질과 직접적인 연관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찾는다는 점은 그만큼 작가와 작품, 전시관 자체에도 긍정적인 요소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없다면... 그 이후의 상황은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나의 전시 관람만은 한산하길 바라는 아이러니를 가슴에 품은 채 입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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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바람은 바람일 뿐, 그 이후엔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 반강제적인 전시장 투어를 시작했다. 한 작품을 오래 보기가 힘들었고 메이킹 영상이 나올 때면 빠짐없이 정체구간이 생겼다.


'우리가 전시를 보러 온 건지, 사람 구경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며 농담 삼아 넋두리를 하며 반쯤은 포기한 채 전시장을 둘러보았던 것 같다. 오히려 작품을 자세히, 뜯어보고 느끼겠단 마음을 내려놓으니 더 마음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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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작품 배치의 동선은 전체적으로 좋았다. 중간 중간 들어가던 작품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영상, 깔끔한 동선, 작품의 디테일을 살린 배치가 돋보였다. 다만 비하인드 영상 중 한 영상이 꽤나 긴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 영상만 영어자막이 따로 달려있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어린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지나가는 순간이 많았는데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나름 대중적인 이미지의 전시가 왜 굳이 이런 디테일을 신경쓰지 않았는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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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이리 저리 말을 하지 않아도 북적이는 전시장의 분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요한슨의 작품들이 흡입력이 강한 건 분명했다. 심지어 어린 아이들도 접하기 쉽고 부담이 없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찾아오는 것이리라.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꽤 재미있는 일인데 이 날은 아이들의 반응은 꽤 흥미로웠다.


물고기가 하늘을 난다든가, 군화가 걸어다니고, 안과 밖이 연결된 신기한 사진들 앞에서 아이들이 순수하게 감탄하고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종종 보였다. 자세히 그 내용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작품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들이 꽤나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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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이들이 이렇게 쉽게 공감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직관적이면서도 아이들이 평소 상상하는 것들과 비슷하기 때문일 테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생각들,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은 은연 중에 의식 너머로 소멸시켜버린다.


애초에 건물에 바퀴를 달아 타고다니거나 하늘에서 물고기 비가 내리거나 하늘 끝에 닿으니 다시 바다였다는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들은 예술가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어른이 되가며 자연스럽게 잃어버리는 그 상상의 감각은 에릭 요한슨은 치밀하게 혀를 내두를 정도로 치밀하게 구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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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완벽한 지점은 초기 구상단계다. 지금 당장 유튜브에 'photo manipulation tutorial'만 치면 굉장히 다양한 합성 사진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들을 합쳐 새로운 하나의 사진을 만들어 낼 때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초기 샘플 사진들을 잘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쓸만한 사진을 잘 골라야 나중에 이를 합치면서 컨셉이 바뀌거나 방향이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초반부터 명확한 컨셉과 디테일한 스케치가 필요한 것인데, 이전 프리뷰에서 언급했는 에릭 요한슨은 사진의 재료가 되는 모든 사진들을 직접 촬영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초기 컨셉 치밀함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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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상상을 완벽할 정도의

치밀함으로 구현해내는 예술가.



작가 에릭 요한슨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아마 이러하지 않을까? 그의 작업 영상을 보면 아마 저절로 혀가 내둘러질 것이다. 200-300장의 레이어로 만들어지는 한 장의 이미지는 그 안에 녹아든 수고로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한다. 그는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 이를 현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살아있는 디테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치있는 언어 센스를 발휘해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그 옆에 붙은 제목들이 보다 직관적이어서 작품 전체의 메시지와 컨셉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물론 북유럽 사람들은 영어를 잘 하기로 유명하지만) 영어로 이런 센스를 내보이다니 이 작가는 못 하는게 뭔가 싶었다.


불가능한 상상을 하고,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고, 그걸 한 단어로 요약하는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라니, 충분히 반할만한 작가다. 사람들에게 치이느라 쌓인 피로가 아깝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작품 수도 상당해서 한산한 시간에 방문한다면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전시임에 틀림없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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