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운의 음악가 베토벤. 글쎄? - 뮤지컬 루드윅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만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글 입력 2019.06.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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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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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이 세고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음악가, 천재적 음악성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청력 소실로 인해 비운의 삶을 견뎌야했던 예술가. 피아노 소곡집에서 특히 좋아했던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 대한 내 어릴 적 인상들은 이처럼 희박한 지식과 단순한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음표 둘이 소실된 셋잇단음표와도 같았다.

당시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친구들이 베토벤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곡 ‘엘리제를 위하여’의 리듬을 따서 만들어진 우스꽝스러운 곡이 유행했던 점과, 그가 귀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수많은 명곡을 작곡한 음악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알아왔던 한 음악가에 대한 지식은 이후에도 크게 발전하지 못했고 ‘운명’, ‘비창’, ‘전원’ 등의 곡 몇 개가 지식의 범주 안에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음악가들보다도 훨씬 먼저, 오래 알아왔던 베토벤에 대해서 더욱 큰 관심을 가졌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던 내가 신기할 정도로 나는 그에 대해 무심했다.

하지만 지난번 바딤 콜로덴코와 알레나 바에바 듀오 콘서트를 본 후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들을 작곡하며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생각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베토벤에 대해 무심했던 나에 대해 반성의 시간을 조금 가지고 있던 와중 최근 그를 주제로 한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바로 과수원 뮤지컬 컴퍼니에서 제작한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가 2018년 호평 속 초연에 이어 또다시 우리에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천재 음악가 베토벤이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사람으로 존재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했던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내가 놓쳐서는 안될 뮤지컬이기도 했다. 그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까지 베토벤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던 나의 과오를 만회할 기회이자 무엇보다도 이제는 그의 삶 자체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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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얼마 남지 않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앞두고 쓰여진 베토벤의 편지 한 통. 그리고 그 편지가 한 여자 앞으로 전달된다.
 

청력을 일고 좌절의 늪에 빠져 있던 청년 베토벤이 죽음을 마주하고 있던 바로 그날 밤, 세차게 내리치는 폭풍우 소리와 함께 낯선 여자 마리가 어린 소년 발터를 데리고 무작정 찾아와 그에게 발터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어 달라 청한다.


망가진 청력, 나락으로 떨어진 자괴감에 베토벤은 그녀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마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 두고 떠난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연을 마주한 베토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되는데…



공연 전 접한 이 시놉시스를 보고 스토리의 전개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뮤지컬이 지금 내게 이렇게 큰 감동을 안겨줄 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했다. 평소 감수성이 풍부한 내 성격을 감안해 이 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될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내가 베토벤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보고 울만큼 감정에 휘둘릴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공연 도중 이미 어린 시절 베토벤의 상처를 보며 내 코와 눈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감정을 표출해댔다.


베토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음악가로 만들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에게 쉴 틈 없이 연습을 강요했다. 그러다 음 하나를 잘못 연주하기라도 하면 호되게 야단을 맞았고 ‘그정도 실력 가지고 어디 모차르트를 따라갈 수나 있겠어’ 등과 같은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베토벤. 아버지의 계속되는 꾸중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베토벤은 말했다.


“저는 모차르트가 아니란 말이에요”


삶의 어떤 시기보다도 자유로워야 했고 사랑받아야 했을 어린 시절, 베토벤은 자유가 금지된 감옥에서 끝없는 비교가 만들어낸 열등감의 밧줄에 묶여있어야 했다. 자신에게 너무나 큰 상처여서 쳐다보기도 끔찍한 것이 피아노여야 했지만, 베토벤에게 피아노는 그의 상처를 치유해 줄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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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베토벤은 수많은 곡을 작곡하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악가가 되었지만 그에게 청력 소실이라는 위기가 찾아온다. 음악가인 그에게 절대 찾아오면 안 될 이 위기 속에서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좌절에 휩싸여 자살을 결심한다.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려던 순간 ‘마리’라는 한 여자가 찾아와 어린 소년 ‘발터’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베토벤의 제자가 되지 못하면 영국으로 떠나야했던 발터의 상황은 딱했지만, 누구를 가르칠 여유가 없었던 베토벤은 발터의 재능이 뛰어난 것을 알고도 그의 스승이 되길 거절한다. 이후 영국행 배가 침몰하여 세상을 떠난 발터의 소식을 마리에게 전해들은 베토벤은 겉으로는 자신의 탓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죄책감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었던 그에게 그의 조카 카를이 나타났고 베토벤은 자신에게 ‘루드윅 빵’이라고 장난을 치는 카를을 누구보다 아꼈다. 또한 카를에게서 죽은 발터의 모습을 보았던 그는 발터의 청을 거절한 자신을 원망하며 카를의 스승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조카 카를은 음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베토벤은 카를에게 계속되는 연습을 강요했고 심지어 카를에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채 그의 단독 연주회를 잡기도 한다. 이후 자신이 발터의 대체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은 카를은 베토벤에게 자신은 음악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오랜 꿈이자 평생을 바쳐왔던 소중한 음악을 ‘음악 따위’라고 표현한 조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배우의 연기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집착으로 변질된 사랑을 더이상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베토벤의 조카에 대한 마음은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되었다가 집착으로 변했다. 그를 어머니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집착, 정작 당사자는 관심도 없는 음악을 억지로 주입시키려는 집착, 의도했던 아니든 발터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위한 수단으로 조카를 이용했던 집착.


누구보다도 자유가 없는 삶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을 그가 자신의 어릴 적을 잊기라도 한 듯 조카에게서 그 자유를 뺏어가는 모순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 모순이 내게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은 자유를 잃은 카를 때문이기도 했지만 베토벤에 대한 감정이입이 더욱 컸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자신이 겪었던 상처를 조카에게 고스란히 각인시키며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과 마주해야 했을 베토벤, 이후 그런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 속에서 또다시 고통 받아야 할 베토벤의 모습을 배우의 혼신이 담긴 연기를 보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베토벤이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합창’을 떠올리며 곡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있을 시점, 카를은 과거 베토벤이 그랬듯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눈다. 환희의 송가와 별을 수놓은 듯 반짝이는 조명이 무대를 가득 메웠을 그 때의 아름다움. 그와는 아주 대조되는 카를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아주 날카롭게 부각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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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길거리를 가다 다락방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꿈에 대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는 마리에게, 베토벤은 맞지 않으려고 연주해야 했던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의 꿈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허탈함을 감추지 못한다. 또한 마리는 여성으로서 건축가는 꿈도 꾸지 못했던 당시, 옷 하나만 바꿔 입었을 뿐인데 더욱 많은 문이 열렸다고 말한다.


이후 수녀가 된 그녀는 당장 꿈을 이룰 순 없어도 계속 그 꿈을 꿀 수 있고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루드윅 : 베토벤 더 피아노는 내게 꿈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재능이었던 청력을 잃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베토벤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내 안엔 온통 고요한 외침일 뿐이었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난, 신을 원망했네. 왜 나에게 환희를 보게 만들었나.”



하지만 이후 그는 청력을 소실했어도 자신의 가슴에선 늘 음악이 뜨거운 피처럼 끓어넘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어쩌면 신은 자신안에서 불타고 있었던 이 재능을 미처 몰라본 그에 대한 벌로 청력을 앗아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그 때 탄생한 수많은 아름다운 교향곡들 ‘영웅’, ‘전원’, ‘운명’ 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마음에 담긴 열정과 그것이 가진 신비로움을 동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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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엔 베토벤만큼 유명한 또다른 음악가인 슈베르트도 등장한다. 공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멋진 피아노 연주로 뮤지컬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피아니스트 강수영씨는 슈베르트역 또한 맡으셨다. 베토벤을 존경해왔던 슈베르트는 그에게 자신의 곡을 보여주고자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까칠했던 베토벤의 반응에 깜짝 놀라 줄행랑을 쳤다.


슈베르트가 실수로 떨어뜨리고 간 악보를 본 베토벤은 곡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마리, 베토벤, 슈베르트는 마지막 부분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 아주 소심한 성격의 슈베르트는 존경하는 베토벤을 찾아갈지 오랫동안 고민하다 지인들의 계속되는 권유에 결국 그를 찾아갔다고 한다. 나중에 서로의 집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걸 알고 난 슈베르트는 지나간 시간동안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자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며 깊은 자책감에 빠지기도 했다.


뮤지컬이 끝난 후 모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표했던 것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보통 클래식 공연에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것은 봐왔어도 뮤지컬에서, 게다가 모든 관객이 일어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는 것은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공간의 제약을 최대치로 이끌어낸 무대설계와 베토벤역의 이주광씨를 비롯한 배우분들의 멋진 연기, 몰입도를 높였던 화려한 연출효과가 잘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지컬이었다.


유명한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에 그쳤던나의 조그맣던 교양지식은 인간 베토벤의 고뇌의 과정에 그려진 꿈, 열정,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로 더욱 풍성해졌다. 베토벤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 후에 그의 음악을 감상하니 그동안 그의 음악만을 쫒았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록 상처로부터 시작해 역경의 순간이 많았던 비운의 음악가 베토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를 비운의 음악가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그를 잊지않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또 앞으로 그러할 사람들이 있기에.



죽음이 언제 오든 나는 기꺼이 맞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예술적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동안은 설령 내 운명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죽고 싶지 않다. (내 재능이 충분히 꽃필 때까지) 삶을 지속하고 싶다. 허나 (죽음이 예상 밖으로 일찍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죽으리라. 그러면 끝이 없는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까.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당당히 네 앞으로 가 너를 맞으리라. 잘 있거라. 죽은 다음에도 잊지 말아다오. 그럴 만한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中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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