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잡지가 참 좋다. 하나의 큰 주제 아래 다양한 이슈와 여러 이들의 시선을 담아낸 콘텐츠를 살펴보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아무리 사양 산업이라고 하지만 잡지에 대한 애착을 지닌 이들이 꾸준히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보화 시대인만큼 누구나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졌지만 수없이 난무하는 자료의 홍수 속에서 한 주제로 잘 정제된 양질의 지식을 습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 에디터가 선별한 기사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 잡지. 그리 두껍지 않아도 종이 한 장 한 장이 풍부한 가치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아울러 긴 텀을 두고 발행되는 책 단행본과 일간 혹은 주간으로 이슈를 스피디하게 훑어내는 신문과 달리,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잡지는 트렌드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으면서 심도 있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서두가 굉장히 길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새 잡지 덕분에 잡지 본연의 가치와 힘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늘상 익숙한 잡지만 읽던 내가 오랜만에 접한 새 잡지 <디자인 매거진 CA>는 말 그대로 디자인을 다루는 전문 매거진이다. 디자인 관련 전공에 임했기도 하고 평소 관심 있는 분야라 쭉 읽어보게 되었는데, 상당히 쫀쫀한 내용에 참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이번 주제는 '판을 바꾸는 그래픽 디자이너 15'로, 이 시대 주목할 만한 그래픽 디자이너와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메인으로 잡았다. 이에 걸맞게 다른 차원으로 빨려들어가는듯한 표지 디자인은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매거진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을 옮겨왔다. 디자이너를 타겟으로 한 전문지답게 글로벌 디자인 시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다채로운 주제로 매 호를 꾸려가는 듯 했다.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인 잡지.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작품관을 시원시원하게 읊어주면서 매달 테마로 놓쳐선 안될 만한 업계 이슈까지 폭넓게 다룬다. 월간이었다가 격월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용의 양뿐 아니라 글 양 자체꽤 많은 편이라, 월간지일 때는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한 권에 담아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잡지는 마치 20세기 모니터 화면을 연상시키는, 혹은 게임 화면을 연상시키는 오픈 페이지로 호기심을 유도했다. 잡지에 있어서 내지 디자인이 참 중요하긴 하지만 특히나 '디자인'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매거진이기에, 매 페이지가 감각적인 구성으로 몰입도를 높였다.


다른 칼럼도 마찬가지이나, 그렇다고 전문 정보로만 가득한 것은 또 아니다. 각 디자이너의 설명을 적절히 위트 있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진행해 재미와 정보력을 고루 만족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래픽 디자인, 혹은 디자인 업계 종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매거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디자인을 읽는 법'을 배우는 즐거운 과정에 가까웠다.
면과 컬러, 폰트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던 평면의 이미지들이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 단순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시각 디자인 특성상 처음 마주했을 때 주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수많은 디자인 요소가 충돌하거나 어우러지며 내는 효과 혹은 배경을 이해할수록 더욱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 무엇보다 감각으로 설명되는 영역일지 모르는 '디자인'이란 것을 '텍스트'에 의한 설명으로 이해하는 상황이 낯설게 와닿았다. 여하간 글이 지닌 힘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이외에도 디자인 관련 종사자라면 실질적인 팁을 얻을 만한 디자인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대한 전문적인 콘텐츠, 영감을 얻을 만한 전시 소개는 물론 디자인 업계의 생태계를 다룬 기사까지 폭넓은 내용이 담겨 있어 여러모로 알찼다.


텍스트로 표현된 내용도, 매 장의 지면 디자인도 마치 색다른 차원을 탐험하듯 재미 요소로 넘쳐났던 <디자인 매거진 CA>. 많이 보고 배울 수록 이 세상에서 새롭게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것들도 늘어난다는 어쩌면 뻔한 명제를, 오랜만에 기분 좋게 충족한 잡지였다. 간만에 시야가 넓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호가 나온다면 추가로 구매하고 정기구독을 고려할 의향이 아주 충분히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