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이지를 넘기면 펼쳐지는 그래픽 디자인 세계 [도서]

디자이너가 할 일이 디자인을 넘어선 시대, 디자인 매거진 CA #244 리뷰
글 입력 2019.06.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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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으로 표현된 도트 폰트의 디자인 매거진 CA #244



이번 디자인 매거진 CA #244호의 주제는 ‘15명의 판을 바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다. 그래픽, 컴퓨터에 관련된 주제를 세련되게 연상시켜주듯, 매거진은 검은색과 흰색, 무채색 범벅으로 되어있다. 폰트는 도트 폰트를 사용해서, 마치 어린 시절에 옛날 게임기에서 봤을 법한 ‘기계다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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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을 빠르게 넘겨보면, 종이 재질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244호의 주제 ‘판을 바꾸는 그래픽 디자이너 15인’에 대한 소개 부분이다. 직접 물을 떨어뜨려 보지는 않았지만, 재료를 많이 다뤄본 경험이 있어 방수 종이 소재라는 것을 알겠다. 코팅된 듯 전등의 빛을 반사해 언뜻 보면 보기 힘들지만, 이 챕터를 강조하기 위해 힘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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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주제를 다루며 형식을 통일하려고 애쓴 모습이 보였다. 왼쪽 페이지에는 디자이너의 사진과 인터뷰, 관련 글이 나와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여준다. 페이지의 위쪽에 쪽수가 표기되고, 디자이너의 이름이 15인 가지각색의 폰트를 사용해서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 잡지 CA를 읽을 때마다 새삼 느끼는데, 폰트가 디자인의 기초라는 것이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를 보여주기 전에 늘 유행하는 폰트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그 생각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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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전체가 정말 고전 게임처럼 꾸며져있어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읽는, 하나의 재미가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잡지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미용실이나 치과에만 가도 흔히 보는 잡지가 대부분 이렇게 광택이 나는 재질의 종이를 사용하고 있다. 책장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문장의 의미를 되씹기 위해서 읽는 고전 문학과는 다르게, 한두 번 읽고 유행이 지난 뒤로부터는 손이 잘 가지 않는 잡지의 특성상, 빠르고 세련된 이미지를 심어 주는 효과가 있다.


일반 가벼운 종이와는 다르게, 잡지에 쓰는 이 재질은 무게도 꽤 무겁고, 책장을 넘길 때 지문으로 느껴지는 마찰감이라던가 속도감도 달라서, 집에 있다가 핫한 최신 장소로 온 것 같은 오묘한 기분마저 준다. 그래서 잡지에 내용에 별 큰 관심이 없어도 어떤 장소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잡지에 저절로 손에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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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잡지 CA #244호는 이번에도 독창적인 폰트 여러 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고, 디자인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잡지의 주제인 ‘판을 바꾸는 그래픽 디자이너 15인’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다. 또, 말차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브랜딩 ‘힛더티’를 포함한 다섯 가지의 독창적인 프로젝트와 ‘디자인 비즈니스’, ‘인공지능 :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과 같은 요즘의 디자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 밖에도 CA 시리즈에서는 영국학사원에 새로운 디자인을 브랜딩한 사례, 디자인 업계에서 대금 지금이 밀려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글, 마지막 챕터 ‘INSPIRATION’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지를 에세이 형식으로 쓰고 있다. 아래에서 내가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챕터를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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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전분으로 만드는 일회용 제품들?! - 폰투스 퇴른크비스크



몇 달 전부터 스타벅스에서는 일회용 빨대가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뀌었고, 다른 지점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판교역 인근 두 지점에서는 종이 재질의 빨대 사용량도 줄이기 위해 점원에게 개수를 말하면 빨대를 내어주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정말 TMI지만, 나는 빨대를 물어 씹는 버릇이 있어서 그 변화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빨대는 아무리 물어 씹고 물어뜯어도 쓰레기가 되지 않지만, 종이 빨대는 조금만 물어 씹어도 한 번 더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구겨지고 찢긴다. 플라스틱은 일회용이라기엔 낭비가 심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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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구


2018년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의 스웨덴 우승자이자, 룬드대학교 산업디자인과 학생 폰투스 퇴른크비스트는 '감자 플라스틱'을 개발해 일회용 나이프, 일회용 포크, 일회용 비닐봉지 등을 만들었다. 일회용 플라스틱이 20분 사용하고, 450년 동안 썩지 않지만 그의 감자 플라스틱은 2달 만에 완전히 부서진다.


감자로 된 식기구라니,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 식사를 끝마치고 식기구까지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시와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면, 하나도 남는 것 없이 다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갈 테니 쓰레기 비용이 얼마나 줄어들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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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ntus Tornqvist



그는 패스트푸드업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제를 하다가 친환경 소재에 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감자 플라스틱은 감자 전분과 물을 결합하며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러 가지 재료를 떠올렸는데, 감자는 그의 고향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이었고, 결국 지역과 연관된 재료를 이용해 더욱더 친환경적인 재료를 발표한 셈이다.


제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지만, 그가 친환경적인 소재를 제시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몹시 크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주어진 것으로, 또는 이미 완벽한 조건에서 디자인만 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어진 것에서 탈피해서, 인류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디자인이 필요할 때다. 또한, 소비자들 역시 이익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판매하는 상술에 휘둘리지 말고, 주체적으로 환경과 건강을 위해 윤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소비자가 재화와 서비스에 돈을 지급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그것을 지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642개의 포스터가 걸린 삼나무 보드, 픽시오네스 타이포그라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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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해보자. 1642개의 포스터가 벽에 붙여져 있는 모습을! 사실 100개라도 해도 상상도 안 되고, 10개도 충분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에릭 브란트는 자기 집 차고 밖에다가 삼나무 보드를 걸어두고, 전국의 다양한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 포스터를 만들게 해 붙였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1642개의 포스터가 붙었고, 그것이 마크 고윙과의 협업으로 <픽시오네스 타이포그라피카 1642>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에릭 브란트는 공공장소에서 타이포그래픽 탐구와 실험에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차고가 사람들이 쉽게 지나다닐 수 있는 거리와 맞닿아 있어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좋은 조건이었다. 모든 작품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길 바랐고, 작품은 기다리다 보면 목적성에 맞는 작품이 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거절하는 때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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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브란트는 거의 매일 포스터를 하나씩 잘라서 붙였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에 정점을 찍기 위해 책으로 출간했다고 하는데, 직접 포스터를 붙일 밀반죽을 만들고 날씨가 얼마나 궂은가에 상관없이 붙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는 에릭 브란트.


책을 보면 포스터가 연대기별로 전시되어있는데, 지루한 포스터 모음집이 되지 않도록 한 노력이 보인다.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차고에 작품이 걸려있는 모습을 다채로운 색깔로 표현했고, 오른쪽에는 포스터의 1 : 1 스케일 (원본의 크기)로 뽑아서 페이지를 넘어가는 오버프린트로 되어있다. 평면적인 이미지와 입체적인 이미지, 그리고 적절한 색감의 조화로 지루하지 않은 책이 되어, 현대의 타이포그래픽을 책 한 권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된 엄청난 시도였다.



 

온고지신, 새 시대의 언어로 전달하는 법 - 슈퍼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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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말차나 녹차, 쑥 등 이름만 들어도 구수한 전통 소재들이 디저트 재료로 활용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키워드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상당히 접근하기 힘든 소재였다. 전통이라고 하면 기성세대에게서 물려받아 후대에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해서 알고 있긴 하지만, 자신이 그걸 꼭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힘든 젊은 세대에게 힛더티는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


말차에 기존에 씌어진 전통, 고급, 격식의 이미지를 벗어서 '건강하고 패셔너블한 아이콘'의 페르소나를 입히는 것이다. 슈퍼말차의 대상인 젊은 세대를 위해서 '기능과 본능'에 충실하게, '과거의 문화'가 아닌 '내가 말차를 왜 마셔야 하는지'에 집중을 했다. 그것에 맞게 '0 칼로리 브랜딩 차'라는 웰빙 이미지를 주었고, 디톡스 : 독소 제거 등의 효용을 강조한 것이 돋보였다.


홍보하는 방법도 말차의 초록색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녹색을 주 브랜드 컬러로 사용하여 소비자에게 친밀하게 다가갔다. 기존의 가볍고 청량한 하얀색의 이미지를 버리고, 검은색 볼드체 타이포그래피와 결합하여 젋고 강렬한 이미지를 추구했다고 한다.


더 독창적인 점은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나아가서 공간적인 해석도 함께했다는 것이다. 2018 서울 카페 쇼에서, 현대적인 젊음의 이미지와 더불어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의 이미지를 함께 넣기 위해 자연적인 오브제 돌과 흙, LED 조명과 아크릴 재료를 조합한 공간에서 홍보했다.


슈가프리 (SUGAR - FREE), 좋은 영양 (Ultra - Nutrition), 유기농 천연재료 (Purely - Organic) 등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모두 강조했다. 온고지신, '옛것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안다'라는 사자성어가 이렇게 적절하게 들어맞는 사례도 없을 만큼 과거의 것을 현대인들에게 최적의 방식으로 맞추었다.



 

당신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처음 그 때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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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디자인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6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디자이너들이 처음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던 때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일하면서 수요자인 클라이언트에게 맞추게 되고 점점 새로운 것을 잃고 똑같은 것을 재생산하게 된다. 클라이언트는 만족하지만, 자신의 디자인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이 담긴 코너다.



1. "클라이언트에게 뭘 원하는지 묻지 말고, 뭘 얻으려고 하는지 물어보세요." _ 존 포스, 논-포맷


2. "기본적인 서열 원칙을 깰 것. 규칙 하나를 깰 때는 다른 규칙은 좀 더 철저히 지켜서 디자인에 균형을 잡을 것" _ 조시 뉴먼, 스테이트먼트


3. "실험을 하는 것, 실패와 거절을 겪을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고, 견딜 수 있어야 해요. 사실 약간 자기 학대적인 면이 있어요!" _ 앤 울쿠


4. 학창 시절부터 경계를 무시하면서 작업해왔고, 인간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인지 환경을 탐구.

"결국 반항을 통해 새로운 걸 발견해요. 발견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도전이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규칙을 어겨야 하는 거에요. 과학자들은 이전 과학자들을 따르지 않고, 디자이너들은 관습을 따르지 않아야 해요." _ 나시아 잉글레시스


5. "핑크를 여성적이라 하는 건 여자아이는 핑크, 남자아이는 블루를 입히는 현대의 상업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거에요. 이건 전혀 말도 안 되는 거죠." _ 프레드릭 와스트


6. "클라이언트 대부분이 저희가 규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저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유명해질수록 클라이언트도 실험적인 작품을 원하게 됩니다." _ 맷 하워스, 아이러브더스트



실험적인 것을 도전하고, 도전한 작품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또다시 도전할 것을 말한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인정받은 안정된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락한 것인지는 창조를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 마감 기한이 다가올 때까지 완성된 아이디어가 없다는 사실은 엄청난 초조함을 안겨주어 밤에 자다가도 수십 번 깨고,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잠이 줄어들 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차라리 디데이가 없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는 얼마든지 쉽다.


하지만 고객은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서도 시간이 한정되어있다. 그 프로젝트만 하다 삶을 마감할 것은 아니므로 자신만의 마감 기한도 필요하다. 그 촉박함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기성의 주어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실험하는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호함에 매료되어 공포물 잡지 편집자가 된 발렌티나 에고빌 메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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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으스스하고,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오싹한 것에 매료되었다는 발렌티나는 미학적 관점에서 자신이 왜 오싹함에 빠졌는지를 설명한다. "어떤 형식이든,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을 느끼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라는 자기주장과 함께, 공포에서 스릴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유머, 절망, 열망까지도 보고 있기에 호러에 빠진 게 분명하다.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우리는 현실과 현실 도피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잡는다. (...) 나는 언제나 공포가 비밀과 관련되어 있다고 느껴왔다. 이야기 또는 시각적 미학을 통해 공포를 접하다 보면 내가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섭지만, 흥분되고 그런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일하면서 발휘하는 가장 큰 전문적인 장점이다." _ 발렌티나 에고빌 메디나


"일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 일은 당신한테 좋은 것이 아니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 더 깊이 내려가 보라. 자신의 깊이에서 조금만 더 밑으로 들어가라.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고 느껴질때 당신은 굉장한 일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_ 데이비드 보위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느낀다. 누군가에겐 그저 인생의 한 오락거리인 부분을 평생의 업으로 진지하게 여기고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나도 누군가에겐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여겨질테지.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금 이런 다양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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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샤프란에 꽃이 필 때가 되었다. 일 년에 딱 요맘때만 꽃이 잠깐 피었다 지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부추같이 초록색 이파리뿐이다. 그래서 꽃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이파리만 있으면 또 뭐 어떤가, 이러나저러나 샤프란인 것을.” _ 디자인 매거진 CA 에디터, 윤채원


잡지에 끝 페이지에 있는 편집자의 한 중평이었는데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내 마음을 사로잡아 그냥 잡지를 덮으려던 손이 멈추고 세 번 정도를 다시 읽었다.




글을 맺으며



예전에는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보다는 나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에 더 많은 위로를 받곤 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별개로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힘이 되었다.


요즘은 딱히 그런 게 없다. 얼마 전,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로 보낸 책이 반송되어 우체국에 책을 받으러 갔더니 아무런 증거도 없고, 택배 송장 번호도 없는 나를 의심스럽게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니꼽게 책을 건네주는 직원에게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 화는 5분도, 1분도 가지 않았다. 우체국을 나오면서 즐겁지 않은 일을 하고 있기에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표출하는 그 직원이 자신의 인생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한 번쯤 마주치는 사람은 그렇게 내 인생에 별다른 자국을 남기지 않고 지나간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늘 마주해야 한다고 해도 같은 방식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는 쉽게 분노하고, 끙끙대며 화를 냈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면서, 혼자서 책을 읽으며 얻던 힐링이라는 것이 확장되어 타인에게서 얻을 수 있게 되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거리에서도 느끼게 되고, 어쩌다 내가 생각나서 연락이 온 카톡에서도 얻게 되고, 여전히 책을 읽으면서도 하루의 위로를 얻는다고 새삼 깨달았을 때 나에게는 이제 더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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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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