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부시게 빛나는, 그래서 더 슬픈 아이들 [영화]

나를 울게 한 영화 속 그 아이
글 입력 2019.06.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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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무리 슬픈 예술작품을 봐도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울컥하는 감정이 차오르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그것이 눈물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최근, 그런 나를 눈물을 넘어 오열까지 하게 한 영화가 있다. 그 영화는 바로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의 <룸>이다. 무려 6개월 만에 영화를 보고 터트린 울음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내가 어떤 지점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 6개월 전, 마지막으로 나를 울게 했던 것은 바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어린 무니의 얼굴이었다. 영화 <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운 것은 8할이 5살짜리 아이 잭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의 면모를 보일 때, 그렇게 슬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아이가 주인공이라는 것,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 그리고 아역배우가 연기를 경이로울 정도로 잘한다는 것. 나는 이 글을 통해 나를 울렸던 <룸>,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그 아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결말에 관해서 얘기하는 부분도 있으니 이 점 주의하길 바란다)



 

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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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때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3.5m 방에 7년 동안 감금당한 조이(브리 라슨)와 그녀가 그 방에서 낳은 5살의 아들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야기를 다룬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룸> 은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실화를 대하는 성숙한 태도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자아내는 깊은 영화이다.

 

조이와 잭은 같이 감금당한 처지이지만 그들이 각자 인식하는 방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조이는 바깥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3.5m의 방이 얼마나 좁은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이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반면, 그 안에서 태어나 자란 잭에게 3.5m의 방은 세상의 전부다. 비교 대상이 없는 잭에게는 그 방이 좁다는 자각조차 없다. 그에게 바깥세상은 텔레비전과 천장에 있는 아주 좁은 창으로만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그래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도 오로지 조이에게만 있고 잭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조이에게 탈출은 말 그대로 방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잭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상의 붕괴를 나타낸다. 하지만 잭은 결국 탈출 시도를 감행한다. 엄마 조이와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탈출은 잭을 내세우면서 결국 성공한다. 영화는 잭이 처음으로 방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다. 텔레비전으로만 보았던, 텔레비전에서도 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한 것들이 잭의 모든 감각에 닿는 그 순간의 감정은 제이콥 트렘블레이라는 뛰어난 배우의 연기력으로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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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빛을 보면 눈을 찡그리게 되는 것처럼 좁은 방 안에서만 살아왔던 잭에게도 외부 세상은 너무 밝고 그만큼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는 곳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 줄 알았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된 잭의 감정은 전율에서 시작해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그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바로 잭이 경찰차에 타게 되는 순간이다. 잭이 경험한 공간이 오로지 3.5m짜리 방뿐인 것처럼 잭이 만나본 사람도 오로지 엄마 조이와 그 조이를 납치한 닉 두 사람뿐이다. 그런 잭이 처음으로 조이와 닉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말을 건네게 된다. 그럴 때 잭은 한껏 몸을 웅크려 몸을 떨 수밖에 없다.

 

잭의 첫 외출을 담아낸 그 부분은 내가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지점이었다. 보통의 5살이었다면 외출해보는 것은 물론이고 유치원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도 형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잭은 보통의 5살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박탈당한 아이다. 고작 트럭에 실려 밖에 나왔을 뿐인데도 크게 놀라워하는 잭의 얼굴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좁은 방에서의 삶에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초반부의 잭은 굳센 아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야외의 햇살에 눈부셔하고, 경적에 반응하고, 낯선 사람을 보면 몸을 떨 만큼 연약한 아이였다. 이렇게 연약한 아이가 그 참혹한 방에서 5년이나 지낼 수 있었던 건, 강해서가 아니라 그게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이 불행인 줄도 모르는 아이, 잭은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뒤늦게 세상에 눈을 뜨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섬세하게 보여주는 제이콥의 커다란 눈이 나를 울게 했다.

 

경찰의 도움으로 조이까지 그 방에서 탈출하게 된다. 나는 결말 부분에나 어울릴 법한 장면이 중반부에 펼쳐진 것에 대해서 의아함을 가졌다. 그러나 의아함은 곧 깊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무책임한 해피엔딩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자극적인 가십으로 소비하는 세상과의 전쟁이었다. 조이는 그 현실에 괴로워하고 적응하지 못하지만 잭은 플라스틱처럼 적응하고 새롭게 성장해나간다. 낯선 세상 속 유일하게 친숙한 존재인 엄마, 그런 엄마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잭은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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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에게 잭은 자신이 당한 폭력의 증거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 방에서 필사적으로 잭을 지켜내던 조이는 영화의 후반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잭에 의해 지탱된다. 잭은 이제 더 이상 좁은 방이 전부였던 아이가 아닌, 다시 그 방에 찾아가 자신이 인사했었던 모든 물건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할 만큼 성숙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기에 조이를 지탱하는 잭을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아름다운 잭의 성장에 나는 마지막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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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란 디즈니가 1965년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진행한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일대의 부동산 매입계획을 뜻한다. 그 매입 계획은 디즈니랜드 주변,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을 짓기 위함이었고 실제로 잔뜩 지었으나 미국 경제침체 이후 관광객 대신 빈곤층들이 그 모텔에 살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무니는 바로 그 모텔에 사는 빈곤층 아이다.

 

브루클린 프린스가 연기한 무니는 기존에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아이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순수한, 해맑은, 천진난만한 등 평소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붙여왔던 모든 형용사가 무니 앞에서는 무의미해진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상스러운 욕을 하기도 하고, 주차된 차에 침을 뱉기도 하고, 심지어 건물에 불을 지르기까지 한다. 디즈니랜드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주변 모텔엔 이렇게 노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바로 무니다.

 

초반부, 그러한 무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저렇게 노는 게 즐겁나?’ ‘왜 저렇게까지 해서 노는 거지?’ 영화를 더 보자 마음속으로 던진 나의 그 질문이 얼마나 초라한 건지 알게 되었다. 그 질문은 아이들이 사는 방식을 철저히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정, 교육, 사회의 안전망이 없는 아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무니는 엄마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집에 찾아온 엄마의 성구매자와 마주치기도 한다. 무니네 가족이 처한 상황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관객으로서 계속 지켜보는 게 힘들 정도로 끝없이 비참해진다. 그러나 정작 그 현실을 살아가는 당사자인 무니는 마치 눈물 흘리는 것도 사치라는 것처럼, 울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 것처럼 울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나간다. 이러한 무니의 모습은 다른 아이들이 쉽게 울고 쉽게 칭얼댈 수 있는 것도 특권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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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무니조차도 영화의 말미에 눈물을 흘린다. 그 이유는 바로 엄마 핼리와 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그 참혹한 상황에도 울지 않아 우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던 그 아이가 엄마와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자 가장 절친한 젠시의 집에 찾아가 울음을 터트린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상황을 겪는다고 해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무니도 어쩔 수 없는 6살짜리 꼬마였다.

 

무니가 우는 장면에서 터지기 시작한 내 눈물샘은 친구 젠시가 무니의 손을 잡고 달려 디즈니랜드의 랜드 마크인 캐슬로 향하는 장면을 보고 폭발하고 말았다. 나 역시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랜드에서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모습을 하는지, 그 캐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모텔의 빈곤층 아이들에겐 그곳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이다. 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폐허, 창고, 매니저의 사무실과 같은 곳뿐이다. 그런데 모텔의 비참한 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던 그 디즈니랜드가 조금만 뛰어가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살았음에도 마치 디즈니랜드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놀던 그 아이들의 현실이 너무나 슬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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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랜드에서 노는 아이와 모텔 주변에서 노는 아이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똑같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들이다. 다른 건 그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안전망의 유무뿐이다.



 

아이들이 겪는 현실



위의 두 영화가 내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두 아역배우가 대단한 연기력으로 그 배역을 잘 표현해낸 것이 크지만 그 아이들이 겪는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 알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아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다. 육체적인 힘도, 사회적인 힘도 모두 부족하다. 물론 어떤 아이는 수많은 사회적 혜택 속에서 살겠지만, 그것은 모두 주변 어른들 덕분이다. 아이들은 약하고 그래서 무기력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미친 영향력을 100% 넘어 200%까지도 받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그 상황을 통제할 힘이 전혀 없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일상에서 쉽게 봐왔던 티 없이 맑고 귀엽기만 한 아이는 그만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견고한 울타리를 지닌 아이였다. 사람들이 모르는 3.5m의 방 안, 디즈니랜드 주변의 허름한 모텔에는 그렇지 않은 아이가 살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는 우리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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