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은 정말로 우리와 다른 사람인가요? "호수-다른사람"

강화길, 「호수-다른사람」, 『괜찮은 사람』
글 입력 2019.05.3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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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게 된 단편소설 「호수-다른 사람」. 호수란 제목 뒤에 붙은 ‘다른 사람’이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호수’와 ‘다른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지 고민하면서 소설을 읽었다. 단지, 호수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호수란 제목을 지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뒤에 붙은 ‘다른 사람’이라는 단어는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일까.

 

이 소설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이다. 처음부터 소설이 끝날 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증거가 등장하는지, 주인공의 의심은 합리적인지 등, 앞으로 진전되지 않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찝찝함을 느끼고,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는다. 동시에, 존재하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낀 채로 소설은 끝난다.

 

줄거리는 이렇다. 민영이 호수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된다. 친구인 진영은 민영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 민영의 남자친구 이한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이한이 범인이라는 확실한 물증은 없다. 이 소설에선 앞서 말한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만 할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마지막까지 이한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서 독자들이 느끼는 찝찝함은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다. 먼저, 이한을 의심하는 진영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데이트 폭력을 당한 피해자(소설 속 여성들)가 자신도 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찝찝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채로 무력하게 상황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

 

진영이 이한을 의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엔 그가 민영이 죽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점점 그의 행동은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아 진영은 그를 의심한다. 민영의 죽음을 부검하는데 민영이 왜 죽었는지보다는 ‘민영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기에 대해서 한 말이 있는지’를 진영과 민영의 주변 사람들에게 집요하게 묻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민영의 몸에 생긴 멍 자국이 근래에 생긴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무능하다며 화를 내는 모습이 민영의 사고를 밝히려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진영은 이한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진영의 의심이 합리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진영의 의심은 심증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영의 의심은 예민함으로 치부된다. 이한을 의심하는 진영을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며 “제발 남자를 좀 믿으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진영은 자신조차 그저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거라며 감정, 생각을 드러내길 꺼린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어야지


 

소설에서 아니, 현실에서조차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것이 육체의 죽음 때문일 수도,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화살 때문이기도 하다. 호수에서 강간을 당한 여자에게 ‘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 호수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도 전 남자친구는 장난이었다고, 장난도 못 받아 주느냐며 자신의 폭력을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라 말하면서, 진영을 ‘장난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범행의 책임을 진영에게 전가하는 상황과 진영에게 ‘왜 그를 호수로 불러냈느냐’며 질책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당신이 원한 거잖아요.

그래서 따라 들어온 거잖아요. 아니에요?


(p.40)



소설의 각 사건에서 일어나는 피해자 죽이기 과정을 모두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현실에서도 행해지는 피해자 죽이기는 가해자를 관심 밖으로 밀어내며, 사건의 중심에 피해자를 앉힌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묻는다. ‘왜 거기 있었는지’,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를.


 

 

실수였어요. 실수요. 어쩌다보니 그랬어요


 

가해자들의 ‘실수’라는 변명. 자신의 행동은 범행이 아니라 그저 ‘실수’일 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실수도 받아주지 않는 치졸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실수였다는 말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수’라는 말이 그저 변명에 불과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사람들은 그 말에 속아 넘어간다. 이한이 진영의 팔뚝을 세게 잡아 상처 입힌 것도, 진영에게 목을 조른 것도, 남자아이들이 미자네의 두건을 벗긴 것도, 민영에게 모욕적인 말로 놀려댄 것도 모두 실수였다는 말로 정당화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한은 민영을 살뜰히 챙기는, 좋은 사람, 좋은 남자,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민영을 살뜰히 챙기고, 다른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는 그런 남자를 의심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진영은 이한의 가면 속의 진짜 얼굴을 봤던 걸까? 아니면, 그저 민영의 말을 듣고, 민영의 팔에 새겨진 멍 자국을 보고 지레짐작으로 데이트폭력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진영의 의심에도 이 소설에서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끝까지 누가 민영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설 마지막은 이한의 부름을 받고 민영이 두고 간 물건을 찾기 위해 호수에서 더듬거리는 진영과 이한이 서로 대치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후 진영이 어떻게 되었는지, 진영은 이한을 범인이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을까? 지난 일을 생각해보면 희망적인 미래를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말에는 작가가 숨겨놓은 작은 희망이 있다.

   


나는 천천히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41p)



진영이 딱딱한 물건을 잡고 미끄러지면서 호수에서 있었던 여성들의 피해 기억을 공유한다. 호수에서 강간을 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비롯해 미자네의 이야기, 그리고 민영이 받은 모욕을 외면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때 민영을 변호해주지 못하고 어깨에 손을 내리면서 민영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선을 그었던 그때의 일. 진영은 여성들의 기억과 자신의 소극적인 행동의 기억이 교차하면서 진영은 각성한다. 더는 상황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마. 네가 신경쓸 것 없어.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야.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41p)



마지막으로 제목이 왜 ‘호수-다른 사람’인지 생각해봤다. 위의 문장은 민영이 미자네의 황망한 표정을 보고 무섭다고 했을 때 진영이 미자네를 보고 한 말이다. 과연 진영의 말처럼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남자아이들의 놀림을 받은 미자네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일까?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서 피해자가 된 것일까? 더 확장해본다면, 진영이 호수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한 것도, 호수에서 여자가 강간을 당한 것도, 민영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도 우리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앞으로의 상황은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소설 뒤에 일어날 일이 또 하나의 피해자가 나온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무언가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것. 비록 진영이 이한에 대적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그럼에도’ 시도하는 것. 피해자 여성들을 방관하지 않고, 자신과 구분 짓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의 상황을 열린 결말은 작가가 앞으로의 상황이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독자들에게 남겨둔 작은 희망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을 품고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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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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