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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미지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보이는 것’과 ‘실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진짜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미지가 실제 사물을 반영한다는 생각은 매우 오래된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점은, 이미지는 실제 사물의 그림자나 대체물에 불과하고 그리고 가끔은 불완전한 우리의 감각을 속이는 못된 짓을 하는 존재로 폄하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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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ci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제목을 보고선 작품을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반대로 작품을 먼저 보고 제목을 유추하는 것이 때로는 작가와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다. 캔버스에 옛날식 담배 파이프 하나가 그려져 있는 작품을 보고선 당연히 ‘파이프’ 혹은 ‘담배 파이프’등과 같은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꽤나 당황했다. ‘파이프가 아니라면 무슨 착시효과가 있나?’라며 작품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마치 오아시스를 찾는 듯 바쁘게 눈을 굴려보고 몸을 움직여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나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을 혼란에 휩쓸리게 만든 장본인은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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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철학적 사고를 요하는 작품을 그린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는 이처럼 친숙한 이미지 앞에서 관람객의 당황스러움을 야기한다. 마그리트의 단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접할 때 관객의 당황스러움은 증폭되는데, <이미지의 배반>에서 보이듯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파이프라 하지 않는’ 모순된 어법을 창조한 것이다.


관습에 따르면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맞지만, 마그리트는 우리의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덧붙여 놓았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를 따라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즉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따라서 납득이 잘 안 갈 수 있더라도, 이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의 이미지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그림 속 텍스트도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단순히 그린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마그리트만의 새로운 문법은 무엇일까? 사실 마그리트의 이러한 재현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학이 도입되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언어가 가진 성질이 사물의 성질과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물’이라는 단어에서는 실제 ‘물’의 성질을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물’이라고 부르자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의 합의가 있었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파이프’와 언어 ‘파이프’는 성질에 있어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 일상에서는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마그리트는 바로 이 ‘일상성’에 대한 파동을 일으켜 기존의 언어 질서를 근간부터 흔든다. 이에 관람객은 사물을 지시하는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정확한 의미 전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며 의심을 품게 된다. 당연하게 여기던 행위와 현상에 대해 '정말 그럴까' 하는 여지를 남기도록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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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토대로 푸코의 비평이 담겨져 있다. 예술의 미적 체험보다는 인식론적 체험에 중점을 둔 미술비평인 듯하다. 책 속 인상 깊었던 점은 마그리트의 데생 작품을 통해 회화 자체 내에서 제기된 "진부한 작품, 상투적인 수업"에 대한 이의제기를 파고 든다는 것이다.


또한 책에서 푸코와 마그리트의 편지가 담겨져 있는데 이는 철학가와 화가의 교류의 광장으로 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자신의 친구 마르셀 르콩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과 사물-푸코의 책 중 하나’에 대한 자신의 열광적인 반응을 밝힌 바가 있으며, 같은 해 푸코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을 해석하고 의의에 다가가는 동시에 책으로 철학적인 접근을 하다보면 사실 이해가 되는 듯 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명백히 알게 된 점은, 우리는 많은 것을 ‘착각’하며 고정된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소설이 영화화가 되는 등 많은 것들이 텍스트에서 그림으로 현상화가 되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을 나는 긍정적으로만 보았던 터라 별다른 이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작품과 책을 읽으면서 문득 스쳐지나갔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좋은 현상이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 소설같이 글이란 텍스트는 개개인이 가진 상상력으로 생각하고 곱씹어 볼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소설 속 다양한 주인공이 나올 수 있는 반면에 이미지로 변형된다면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 받아들일 것이다.”

 

반면에 그렇다고 텍스트에 흠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방송프로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춤을 추는 것 가지고 ‘막춤’, ‘엉성한 춤’과 같이 자막을 붙여버린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한때는 아무런 의심 없이 스쳐 보냈던 것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착각’을 하게끔 만드는 큰 요소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한마디



이처럼 이미지는 현실을 보여주지만 어쩌면 그 현실은 단지 표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범람하는 이미지와 텍스트간의 혼동의 시대, 중요한 것은 그 표면의 얼음장을 깨고 심연의 진실로 내려가기 위한 깊은 호흡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끈질김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익사하지 않기 위한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말’과 ‘그림’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 길게 뻗어 나아갈 수 있는 생각의 길이를 울타리와도 같이 한정 짓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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