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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하지만 착한 아들 ‘케이타’, 사랑스러운 아내 ‘미도리’와 함께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성공한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뒤바뀐 남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이다. 료타는 자신의 살아온 환경과 너무나도 다른 친자 ‘류세이’의 가족들을 만나고 그동안 키워온 아들 ‘케이타’와 자신의 친자 ‘료세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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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주된 초점은 ‘료타’의 시선에 맞추어져 있다. 6년간 기른 자식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혼란이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며, 멍하니 자기 아들을 쳐다보는 텅 빈 눈동자에선 그 허무함이 전해온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된다. ‘혈육이냐, 양육이냐’ 이 매서운 양자택일은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극단적 사건에 고작 6살이니 이제라도 바로잡으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이 더해져 혼란을 가중한다.

 

그렇게 파란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료타는 새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료타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부터 도박과 경마에 빠져 료타에겐 콤플렉스의 대상이었지만, 편찮으시다는 말에 무거운 마음과 내키지 않는 불편함이 공존한 채로 본가에 내려간다. 오랜만에 마주한 아버지는 여전히 권위적이었고 제멋대로였다. 아들이 바뀐 사건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한데 오히려 아버지는 그것을 더 헤쳐 놓는다.

 


“이건 피에 관한 이야기야. 사람도 말(馬)과 마찬가지로 피가 중요해. 앞으로 류세이는 널 닮아갈 거야. 케이타는 반대로 그쪽 아버지를 닮아가겠지.”


   

이 말은 너무나도 차갑지만 가장 이상적인 답변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고 있던 료타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라고 화가 섞인 말을 남기고 일어난다. 그리고 한동안 분을 감추지 못하는 료타의 잔상이 스크린에 묻어난다. 하지만 영화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료타의 얼굴에서 그의 아버지가 겹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가 뱉은 말의 주술관계만 다를 뿐, 알맹이는 똑같은 말을 내뱉는 료타의 모습이 등장한다.

 


“앞으로 점점 케이타는 사이키 가족을 닮아가겠죠. 반대로 류세이는 점점 우릴 닮아갈 테죠. 그런데도 피가 연결되지 않은 아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나요?”


   

분명히 이 장면은 영화에서 주요한 장면은 아니다. 혈육과 양육 사이의 양자택일과 진정한 아버지 역할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이라면, 혐오하던 아버지의 말을 답습하는 료타의 모습은 영화적 장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본인은 이 작으면 작고 크다고 하면 클 수 있는 영화적 장치 혹은 장면이 조금은 남다르게 이입이 됐다. 절대 닮지 않고 싶던 아버지의 모습이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체화돼버린 료타를 보며 ‘후천적 환경의 불가항력’ 혹은 ‘말의 유전’에 대해 감독은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지려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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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부모의 말을 따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토록 듣기 싫던 아버지의 잔소리는 어느새 친구가 토로한 고민에 답변이 되어버린 경우를 맞이하고 친구가 “야 너 되게 애늙은이처럼 말한다.”라는 말을 곱씹어 보면 부모님의 언어가 내 일상의 일부가 된 걸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나는 홀로 ‘말에도 숨겨진 DNA가 있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라는 인간이 상황 속에서 많은 것들을 모방함으로써 학습한다고 말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과정은 무시행 학습, 즉 직접 해보지 않고도 단지 관찰하는 것만으로 동일한 방식을 획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지켜보고, 만약 어떤 보상을 받거나 기대한 결과를 일으키면 그 특정 행동이 더 강화되어 마음속에 각인되는데, 이를 대리강화라고 한다.

 

언어도 비슷한 원리를 따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모의 말들은 내 주변을 부유하며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가장 익숙하고 평범한 공간에서 발현되는 모습을 발견한다. 특히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접한 언어들은 옳고 그름이 여과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사전에 저장된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자신의 대물림받은 언어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료타가 그토록 닮기 싫어했던 아버지의 말을 대물림 받은 것처럼, 만약 내 일상에서 그토록 싫어하던 누군가의 말투를 나도 모르는 사이 체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큼 소름 돋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말이란 때로 내 입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발화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깊은 곳에 뿌리박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말이 씨가 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와 같이 유독 말에 대한 속담이 많은 것처럼, 생각보다 말의 힘은 강렬하다. 말·말·말,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보다 나의 언어에 집중해 본다면 보다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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