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제나 탈덕을 준비하는 나, 정상인가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5.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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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축제에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연예인들이 축제에 다녀가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주인공은 잔나비였다. 축제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였다는 말을 듣고 허탈감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의 음악을 듣고 위로받았다는 사실에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는 피해자의 글을 읽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축제에서 찍은 모든 공연 영상과 재생목록의 노래들을 지워버렸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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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덕질을 못하는 이유



나는 태생적으로 연예인 '덕질'을 못한다(표준어는 광적인 팬 활동으로 순화하나, 여기서는 보다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덕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콘서트를 봐도, 영상을 봐도 멋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현생`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누군가에게 푹 빠지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나마 방탄소년단을 가장 좋아하지만, 노래가 나오면 스트리밍을 하고, 앨범을 사는 정도에 그친다. 그것도 통장에 여유가 있을 때만 한다.


당장 내가 커피를 마시고, 나와 접촉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것을 더 중요하고, 나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의 관계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 번은 좋아하는 유투버를 보러 행사에 참여한 적도 있었지만, 극심한 `현실자각 타임`을 겪으며 다시는 콘서트나 행사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을 정도다. 무대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좋아한다는 마음도 모를 것이고, 나의 존재는 그에게 아무런 힘도 되지 않을 것이니까.


그렇지만 `덕질`하는 삶을 항상 부러워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성장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만 들어도 힘이 나고, 지친 일과를 끝내고 라이브 방송을 보며 웃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나의 성장만이 위로가 되는 사람이라 특히나 그런 점이 부러웠다. 마치 무빙워크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능동적으로 뭔가를 찾아서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주어지는 과제를 하고, 시간이 흘러가 주말이 되기를 바라는 나의 삶이 너무 한심해서 울고 싶은 날에도 위로받지 못하는 나날들이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덕질만 그런 게 아니다.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마음을 열지 않는다. 언제든지 상처받지 않고도 관계를 끊을 수 있도록, 적당한 친절과 배려를 한다. 나를 늘 생각하고 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조차도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뒤돌아서면 나에게 실망하는 것은 아닐까 늘 걱정하고 초조해 하며 억지로 웃는 날도 많았다. 당연히 나 자신도 믿지 못한다. 내가 여유 있는 금요일에 기사를 쓸 수 있을 거라 믿지 않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요일부터 주제를 정하고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내가 `덕질`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나에게는 없는 그 믿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고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과 나도 남을 완전히 믿고 그 사람에게 에너지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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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끼, 믿는 구석



이런 사건들이 있었으니 오히려 `덕질`을 지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연예계와 경찰의 유착 관계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며, 수많은 아이돌 팬이 그들에게 쏟았던 자신의 시간이 아깝다며 허탈해했다. 나도 지뢰 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을 `감별`해야 했다. 과거 방송에 나와 했던 말이나 행동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짤방`들을 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내가 저걸 좋아했었다니, 하면서.


그러면서도 또 누군가를 믿었다.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절대 남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 없었을 거라 나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기를 얻었는데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며 불안해했다. 그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연예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공인은 아니지만, 어쨌든 대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늘 도덕적 잣대로 평가받게 된다. 특히 10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아이돌의 경우 과거 행실이나 사소한 행동까지도 감시의 대상이 된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도,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노래를 잘하고 춤만 잘 추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는 트와이스를 배출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식스틴`에서 `조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남겼다. 정답이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이 시대에, 논란이 되지 않으려면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일이 전혀 없는사람이 되면 된다(그런데도 일부 비합리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이들이 있어, 트와이스에게 논란이 일어나기는 했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말인가?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최근의 논란들로 미루어 볼 때, 그게 진짜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믿는 구석>이 발등을 찍는 <믿었던 도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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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를 돌아본다. 나는 과연 조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지. 내가 상처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실은 남들이 나를 배신할 것 같아서 발을 뺄 준비를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남들을 믿지 못해서 나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남들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연예인들의 몰락은(정확히 말하면 그들을 몰락하게 만드는 사건들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팬이 허탈감을 느끼게 하고, 손가락질받게 한 그 사람들의 잘못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그들에게 투자한 돈과 시간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으므로 덕질을 망설인다.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해서.


그렇지만 언제든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더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끝나버릴 수도 있고, 타인에게 위로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또 늘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불안에 떨어야 하고, 설사 상대와 정말 관계를 끊게 되더라도 발을 빼는 그 마음이 편안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질을 할 것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앞서 밝혔듯 이건 나의 성격이나 가치관과도 관련이 있어, 하루아침에 누군가에게 푹 빠져 모든 것을 믿어 주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를 믿고, 내 주변인들을 믿는 것은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1시간 만에도 이렇게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다(질은 보장할 수 없지마는). 내가 나를 믿고 보여주는 만큼, 내가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려 하는 만큼 남들도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리라 믿어본다. 잠깐, 이건 믿어도 되는 거겠지?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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