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는 내게 의미있는 단어, 소울메이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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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딱 한번 뿐인 나만의 인생에서 나와 꼭 빼닮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이 단어를 가끔 들을 때마다 어떨 땐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귀로 흘려보내기도 했었고, 한 땐 지금 내 주위에 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몇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땐 몰랐다. '소울메이트'라는 이 단어가 내게 이렇게나 의미있게 다가올 줄은.
어쩌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단어를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림잡아 알고 있었던 이 단어를,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떠올리게 되었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고자 처음으로 사전을 뒤적거렸다는 점이다.
-나와 모습은 달라도 영혼이 닮은 사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소울메이트라는 단어를 붙여봤을 때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그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 이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끊임없는 생각의 추파를 내게 던지는 사람
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 같다.
나의 소울메이트를 소개하자면 우선 1년 전 미국에서 공부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니 정확히는 내가 머물렀던 아칸소주가 참 좋았다. 이곳을 좋아하는덴 너무나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 내가 매일 아침 눈을 떠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행복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바로 나의 룸메이트 Cindy(이하 씬디)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보랏빛 하늘이 유독 아름다웠던 아칸소처음 씬디를 만났던 것은, 내 인생 첫 외국인 룸메이트를 만나게 된다는 두근거리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지금의 내방 309호 방문을 마주하고 그녀의 이름표를 봤던 순간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내 룸메이트의 이름조차 몰랐는데 그때 난 내가 한 학기간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나의 룸메이트가 씬디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갓 미국에 와서 새로운 것이 너무나 많았던 나에게 룸메이트는 또 다른 설렘 중 하나였다. 나와 같이 온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룸메이트를 그때 만났지만 난 며칠을 기다려도 씬디를 만날 수가 없었고, 그녀가 이미 배치해놓고 간 그녀의 물건들을 보면서 씬디는 아마도 이런 친구이겠지 생각하며 잠을 청하곤 했던 것이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들어서려고 하던 그때, 방에서 그동안은 들을 수 없었던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룸메이트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말에 심장이 너무나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의지로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빠르게. 그동안 혼자여서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외롭기도 했던 그 공허했던 시간들이, 드디어 내 생각 속에만 존재해왔던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정말로 설렘이란 이런거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문을 딸깍 하고 열었을 때 정말 씬디가 있었고 우린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 돼버린Holcome hall의 309호내가 본 그녀의 첫 이미지를 정의해보자면 성숙하고 프로페셔널하다이다. 이렇게 생각한 데는 첫째 그녀의 검정 정장 차림이 한몫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나긋나긋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 만난 그 날은 나름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기때문에, 내일도 앞으로 다가올 여러 날들도 그때보다 더 많은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학기가 시작되고 나니 나도, 그녀도 서로 바빠서 방에 같이 있는 시간이 거의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했던 Good morning 인사가, 어떨 땐 먼저 건네기 머쓱해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마음 깊숙이만 맴돌았던 이 작은 표현이 내가 씬디한테 건네는 하루의 첫 말이자, 많고 많은 24시간 중 건넸던 몇 마디 중 하나였다. 낮에는 서로의 수업과 일과 때문에 바빠서 볼 수 없었고, 늦은 오후나 초저녁 무렵엔 국제학생인 내가 학기 초 빡빡한 행사에 참여하느라 서로 이야기 나눌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았다. 처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젠 설렘도 크게 느껴지지 않고, 앞으로 남은 날들을 같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여러 걱정에 휩싸여 마음이 턱 막힌 것 같았다.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아니 그보다도 같이 사는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줄 한 사람에 대한 예의로라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보려고 해야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계속 마음에 머무르다 보니 서로가 점점 더 멀어져만, 어색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씬디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하루일과가 어떻게 돼?”
예상치 못했던 순간, 생각지 못한 그녀의 질문에 순간 멍해져서 전혀 어려운 영어가 아니었는데도 못 알아들었었던 난 되물었고,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곤 내 일과를 답해줬다. 내 대답을 듣고 난 후 그녀가 했던 말은
“너가 아침에 일찍 나갔다가 오후에도 없고
저녁에도 늦게 들어와서 그냥 궁금헀어”.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씬디는 나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 했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친해지고 싶어도 방에 있는 시간이 적었던 나 때문에 쉽게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이때 아차하고 느꼈다. 그리고 이 무렵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라고 표현하니 너무 장엄해 보일지 몰라도 이건 분명 하나의 특별한 사건, 지금 그녀와 내가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첫 걸음마 같았던, 다시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수업 마치고 방에 돌아왔을 때
책상에 살포시 앉아있었던 노란 나비.
내가 보았던 노란 나비들 중 최고로 예뻤다.
여느 때처럼 내가 일정을 소화해내는 게 아닌, 하루의 일과에 내가 끌려다닌 것 같았던 바쁘고도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잠을 자려고 하던 순간, 갑자기 'Sohee'라는 익숙하지만 약간은 낯설었던 내 이름이 건너편 침대에서 들려왔다. 씬디가 먼저 말을 걸어왔고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같아 들어보니,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또하나의 전개가 그 날 펼쳐졌다. 씬디는 자기가 오늘 하루종일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내가 처음 들어보는 어떤 증상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사실은, 그것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병원에 입원해있느라고 방에 없었다고. 그냥 너한테 알려주고 싶었다고.
이렇게 그녀가 말했던 그 순간, 난 머리에 뭔가를 한방 맞은 것 같았다. 그때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엉키고 설켜, 마치 지금까지의 내 뇌의 영역으론 이 복잡한 생각들을 처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우선, 그동안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많이 내 생각 속에 있었던 나의 룸메이트, 씬디가 어딘가 아프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슬퍼졌었고, 그래서 무슨 증상인지, 약먹으면 낫는 것인지, 끝없는 호기심에 가득한 어린 아이마냥 계속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도 물을 많이 마시고 특히, 크렌베리 주스를 많이 마시면 좋다고, 난 괜찮을 거라고 말해줬던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마음으로 내쉬었고, 오늘 씬디가 방에 거의 없었는지조차 실감하지 못했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어쩌면 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아픔에 대해서, 그 때 당시까지만 해도 잘 몰랐던 나에게 먼저 말해주어서 너무나 고마웠고 처음으로 씬디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입장에서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한 내성격을 탓하며 어색했던 그 느낌만을 부정하는 걸 되풀이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한없이 작아졌던 그 때, 난 비로소 그녀의 입장에 서서 만약 그녀가 영어를 잘하고 말이 잘 통하는 그런 룸메이트를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영어도 유창하지 않고 숫기가 없는 내가 한편으론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난 다음날 그녀의 증상에 좋다던 크렌베리 주스와 크렌베리가 포함된 에너지 바를 사서, 내마음을 살포시 담은, 그녀를 닮은 채도가 낮은 카키색 편지를 그녀에게 건넸다. 선물을 받고 씬디는 너무나 좋아했다. 나중에 친해진 후에야 알았지만 예쁘게 배치해서 사진으로 내 선물을 남겨주었고, 너무 고맙다며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었고, 자기한텐 이 편지와 선물이 정말 큰 의미였다고 재차 말했다.
함께 갔던 Brunch Cafe, Arsagas
우리는 늘 자신의 메뉴보다 서로의 메뉴를 더 좋아했다.
씬디는 내가 주문한 것을, 난 씬디가 주문한 것을(:
그 때 이후로 어색했던 우리는 점점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학기가 시작된지가 조금 지났을 그 무렵, 서로 방에 같이 있는 시간도 전보다 많아졌고 그래서 예전엔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전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젠 아침에 하는 Good morning 이라는 인사가 더 이상 불편하게 다가오지 않았고, 밥도 자주 같이 먹으며 그녀가 Vegan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어딜 가던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별로 없고, 마트에서 작은 에너지 바 하날 사더라도 꼼꼼히 성분을 확인한 뒤에야 살수있는 그녈 보며 한편으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듯이, 함께 저녁을 먹고 그 후엔 같이 피아노를 치는게 서로에게 하루의 일상 중 한 부분이 되었고, 정말로 생각을 못했던 부분 중 하나는 내가 씬디의 수학숙제를 옆에서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그녀와 주고 받는 메시지가 “나 오늘 키를 두고 왔는데 혹시 방 문 잠그지 않아줄 수 있어?” 와 같은 형식적인 말이 아닌 장난기가 가득 담긴, 큰 용건은 없어도 그냥 뭐하냐고 묻는 친밀한 말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 생애 첫 해먹도 씬디랑 같이 해볼 수 있었고,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 대해 처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공유하고, 앞으로 같이 더 알아갈 수 있는 진짜 룸메이트가 되어있었다.
"Flowers for you"
날 위한 꽃을 예쁜 사진으로 담아온 Cindy,
비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물방울을 품은 에쁜 꽃을 보러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이때 난 지난 시간들의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난 먼저 다가가는 것에 대한 쑥스러움이라는 내 감정을 지나치게 의식하느라 그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눈을 갖지 못했고, 어색했던 그떄의 감정은 모두 부족한 나의 영어 때문이라고 핑계를 만드는 것에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그게 맞았다. 전에는 크렌베리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했지만 지금 나는 크렌베리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의 중요함,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이 행동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심조차 품을 수 없다. 이제는.
저녁 선선한 공기와 마쉬멜로우 가득한 핫초코.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던 추억이
너무나 그리워진 지금 이 순간.
한번은 여느 때처럼 같이 밥 먹으러 가던 길목에서, 갑자기 씬디가 내게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했다.
“Sohee, 너 내가 너 많이 사랑하고 있는걸 이미 알고있지?” 정말 갑작스레 마음을 치고 들어온 질문이라 깜짝 놀랬지만 ‘이미 알고있지’라고 답했다. 궁금해서 왜 그런말을 하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Off campus가 더 싸면 지금이나 이번 학기 말이라도 빨리 기숙사를 퇴실할 수 있는데 왜 안 그래?’라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씬디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긴 해도, 난 그럴 수가 없어.”
“왜냐면 내 룸메이트는 내년 5월에 돌아가야 하는 방문학생이라서 지금 같이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내가 만약 떠나게 되면 그녀는 혼자 빈방에 남게 된다고.
돈이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기숙사에 살면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그녀는 내가 만난 가장 sweetest한 룸메이트고 난 내가 앞으로 그녀 같은 룸메이트를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기숙사에서 식당까지 가는 그 짧았던 순간이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정말로 내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생각지 못한 그 순간, 갑자기 훅 들어온 그녀의 말에 내 머리는 잠깐 하얗게 물들었다.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듣게 되면 그게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일까, 너무나 위대한 힘을 가진 한 사람의 말에 그때 당시는 잠시 멍해져서 할 말을 잃게 되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큰 감동에 계속 그 순간을 돌이켜보고, 또 되새겨보고 한없이 추억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그때 씬디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씬디한테 말해주었다.
“I love you, too.”
씬디에게 만들어준 Name Card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마음으로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것과 함께, 마음을 담은 조금은 쑥스럽지만 진심이 담긴 ‘사랑해’라는 짧은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모른다.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져 갈수록, 혹시 내가 나중에 그 사람이 싫어지면 어쩌지, 나도 모르게 상처주면 어쩌지, 익숙함이 처음의 초심과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짓밟지는 않을지, 또는 시간이 점점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는 아닐지.
하지만 지금의 난 이제 조금은 안다. 진정한 인연에겐 순간의 이별이 영원의 헤어짐이 아니란 것을. 언젠간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늘 생각하고 추억할 수 있는 마음의 등대를 서로의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을. 행복한 순간을 내 온 마음을 다해, 내 모든 가슴으로 만끽하며 그 순간에 깊게 젖어드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소울메이트'. 내 영혼을 닮은 어떤 사람. 나도 내 영혼이 어떤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자꾸만 가는 그 사람이 바로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한없이 큰 이 세상에서, 끝없이 넓은 이 지구 상에서,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 속에서 내 룸메이트이자 소중한 친구 씬디를 만나게 된건 어쩌면 내 영혼의 부름에 내 몸이 이끌려 간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곳에서 나는 어쩌면 나의 소울메이트일지도 모르는, 늘 내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씬디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소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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