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가 함께 노래하고, 모두가 달리 느끼는 여행 - 아프리카 오버랜드

글 입력 2019.05.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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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을 가서 마주하는 것은 다른 공간일까, 다른 사람일까. 낯선 공간에 섣불리 외부인으로서의 시선을 덮어 놓고 그곳의 삶까지 규정해버리게 될까 봐 여행을 선뜻 떠나지 못한다. 누군가의 겉핥기로 인해 낭만이 되는 공간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가 고되게 일궈낸 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풍부한 감상이 결국 공간만을 마주하는 외부인의 층위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한낱 나의 주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장소를 옮겨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그래서 마땅한 여행의 이유를 찾기 전에 다른 삶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책을 통해서, 영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낯선 공간이 들어서도 그 안의 삶과 대면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여유 있게 확장하고 싶었다. 올해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그러던 중 하림의 공연이 찾아왔다. 여행의 의미를 처음으로 재인식하게 해준 그의 공연을 마주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5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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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집시의 테이블》이라는 공연을 통해 집시음악을 테마로 한 음악 여행을 떠났다면, 올해는 《아프리카 오버랜드》다. 아프리카로 육로여행을 떠난다는 테마의 이 공연은 2010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9년째 열리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지역에 악기를 보내 작은 곳에서부터 음악의 숨결이 살아났으면 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공연은 아프리카라는 공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숨 쉬는 사람과 마주한다. 처음으로 악기를 다뤄보는 사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사람, 음악인이 되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음악의 감동을 선물해주는 사람이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이 여행 안에서 꽃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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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아프리카 오버랜드 투어를 떠난다는 가상의 상황 속에서 진행된다. 드라이버를 맡은 좋아서하는밴드의 조준호, 쿡을 맡은 싱어송라이터 양양, 총무를 담당하는 베이스 이동준, 아프리카의 ‘시덥잖은’ 미어캣을 맡은 비브라포니스트 마더바이브가 하림이라는 가이드를 필두로 공연장 내 여행객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시작이 그렇듯 공연도 역시 경쾌하고 신나는 노래로 시작한다. 미공개 곡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은 언제 어디서 어떤 노래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이드의 지휘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노래들이 아티스트의 음악이 아닌 관객들과 자연스레 섞인 여행객들의 노래처럼 들리는 이유다. 공항에서부터 함께 출발한 일행의 음악은 후덥지근한 아프리카의 날씨를 떠올리게 하는 다소 느릿한 리듬으로 전환되면서 이제 아프리카에 도달했음을 알린다.

곧이어 아프리카 남쪽 나라에서의 첫날밤을 맞은 일행은 맑은 하늘에 흐르는 별 무리를 보며 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더운 밤공기를 가져다주는 양양의 잔잔한 노래가 끝나면 그제야 아프리카의 정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듯 사소한 사물을 관찰하며 만든 노래를 펼쳐놓기 시작한다. 길거리 한복판을 거니는 기린을 보고 만든 노래, 마사이족의 폐타이어 신발을 보고 만든 노래, 바오밥나무를 보고 만든 노래…. “바오밥나무에 밥이 열린다면 배고픈 아이들은 하나 없겠네.” 어린아이도 금세 이해하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쉬운 가사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풍경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감성, 나의 시각에서 비롯되는 감상일 것. 기린도, 마사이족도, 바오밥나무도 자신들과 같이 그저 아프리카에 있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듯 단순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타성을 배제하고 신나게 노래나 부르자는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의 유쾌함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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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한창 진행됐을 때, 익숙한 노래가 들린다. 작년 《집시의 테이블》 공연에서도 들었던 노래다. 하림이라는 가이드의 가장 독특한 매력이 아닐까. 여행 중 권태를 느끼고 집을 그리워하며 ‘우리 집 냉장고’, ‘솥뚜껑 삼겹살’, ‘김치찌개’ 등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한다. 이 노래는 여행이라는 가상적 상황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처음 만난 나라는 그 나라가 어떻든 간에 낯섦과 신비로움에 도취되어 뭐든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림은 거기서 감상을 끝내지 않는다. 매캐한 흙먼지를 마시고 척박한 숙식 환경에 배고픔과 피로를 느끼는, 육로여행을 하는 여행객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현실을 드러낸다. 여행지라는 화장을 지운 민낯의 삶의 터전과 직면하는 대목이다.

작년 하림의 공연으로 여행에 대해 재인식을 하게 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것이 하림과 함께 떠나는 음악 여행의 가치라고 생각했던 지난번의 감상은 올해 이 노래를 또 듣게 됨으로써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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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목표했던 세렝게티를 들른 후, 출발했던 공항으로 돌아오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여행은 언제 갔다 왔냐는 듯이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시야가 넓어지거나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거나 하는 거창한 결실을 보는 여행이 아니다. 그저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땅을 밟고 돌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타지의 정취를 노래하는 하림과 아티스트들은 외부인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번지르르한 낭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림이라는 가이드가 있음에도 감상은 관객 각자에게 달린다. 정해진 이미지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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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두 함께 같은 곳을 상상하며 노래를 부른다.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하는 그는 영감을 주는 모두가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에서 만난 ‘하나가 산으로 가 둘이 되어 내려왔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녀는 하림의 악기로 인해 음악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도 꾸밈없는 그의 방식에 매력이 덜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의 마음에 그 공간, 그 음악이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살아 숨 쉰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여행이 어디 있을까 싶다. 탁한 서울의 밤이 아프리카의 별로 밝게 비춰졌던 하림과의 뜻깊은 여행이었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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