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ㅁ

글 입력 2019.05.1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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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오랜 휴가를 받고 회사에서 돌아오시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셨다. 이불과 비상식량을 가지고 들어가신 아버지는 숙식을 모두 거기서 해결하셨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의 선택에 당황하면서도 세시간쯤이 지나자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면 세면대에서 물을 트는 것 만으로 대답하셨고, 우리는 그럼으로서 아버지의 생존을 확인했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돈을 잘 벌어오던 아버지가 드디어 실직을 당하시고 만걸까? 그걸 말씀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의견표현을 하는걸까? 자존심이 높은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욕조에서 둥둥 뜨는 시체로 발견되지 않을까?

우리 중 가장 현명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요새 많이 힘이 드시니 가족 중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화장실이 두 개였고, 우리는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없는 것 처럼 행동했다. 어차피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두번, 아니면 이주에 한번 왔다. 생각보다 아버지가 없는건 아무일도 아니였다. 아버지가 없는 일상생활은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걱정했지만, 그만큼 익숙해졌고 애당초 화장실이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행동했다. 나도 아버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슈퍼에서 장을 볼 때서야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왜 그 안에 들어가신 걸까? 아버지는 얼마 안되는 면적, 직사각형의 작은 방에 좀 더 작은 직사각형인 욕조에서 주무시고 계실까? 아버지도 효율적인 상품논리에 따라 제작된 케이스에 밀봉된 것 처럼 몸을 구부리고 주무시고 계실까?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뭔갈 안고 있는 어린 아이가 말을 걸었다. 그 애는 갑작스레 나를 붙잡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잔잔한 입술의 움직임으로 나에게 제멋대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애는 강아지 모양 도자기 인형을 가지고 있었다. 강아지 눈알은 지구별처럼 투명했다. 가득찬 내용물, 나는 그것이 통조림 같다고 생각한다.

그 애는 네모난 세상의 왕자였다. 누가 지구를 둥글다고 했는가, 사실 지구의 모습은 네모라고 했다. 그 애는 주민을 소개했다. 수많은 주민들은 돈 지폐기도 하고, 사진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주무시는 욕조기도 했다. 강아지 눈알이 번들거리고, 나는 꿈에서 깼다.

*

화장실의 문이 열렸다. 그 곳에는 아버지가 통조림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누워있는 곳은 욕조가 아니라 박제용 액자같이 보였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몸을 긴 핀으로 고정시킨 다음 자신의 몸을 천천히 말리셨던게 분명하다. 사랑스러운 시간과 영광의 시간을 영원히 박제할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흰 노트처럼 각이지고 비어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아버지를 동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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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_본인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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