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곳의 노을도 그곳의 노을과 다르지 않았다. [여행]

내가 존재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여행.
글 입력 2019.05.17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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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나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노을과 야경을 참 좋아한다. 내 또래 친구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느 도시의 어느 곳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지, 근처에 맛집은 어디인지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

나의 첫 여행지는 런던이었다. 평소 자연 경관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기대 없이 해질녘과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런던의 '프림로즈 힐'에 올랐다. 그저 공원에 피크닉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별 생각 없이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그리고 정상에서 만난 노을은 정말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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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림로즈 힐에서 잊지 못할 노을을 맛 본 이후, 나는 그야말로 노을 '덕후'가 되었다. 여행 전에는 항상 노을과 야경 명소를 꼭 찾아보았고, 친구와 정신없이 여행지를 돌아다니다가도 해가 질 무렵이 되면 걸음을 재촉해 높은 언덕에 올라 해가 지는 모습 부터 야경까지를 다 감상하고 내려오곤 했다. 하루의 마지막에는 "역시 알아보고 가길 잘했어"라는 말과 함께 붉게 물든 노을 아래로 보였던 풍경을 곱씹으며 잠이 들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나는 원래 여행을 할 때 꼼꼼하게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길을 걷다가 즉흥적으로 경험하는 여행이 아니라, 인터넷과 책으로 관광 명소를 찾아보고 그에 따라 움직이곤 했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기를 반복해 피곤하다가도 내가 직접 알아보고 계획한 장소에서 멋진 풍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고집을 바꿔준 여행이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약 2주간 여행했을 때였다. 시험기간에 기숙사 짐 정리까지 겹쳐서 정신없이 학기를 마무리하자마자 떠나온 여행인지라 거의 아무 것도 알아보지 않고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따라야 할 '계획'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유럽에, 그리고 이 나라, 이 도시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곳이라도 더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촘촘한 계획 없이 돌아다니는 여행도 충분히 가치있고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이렇게 즉흥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 당시의 내가 '여유'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느때와 같이 한 학기는 폭풍처럼 지나갔고, 곧 4학년이 되어 취준생이 된다는 걱정과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빠져나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생각에서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실 여행의 시작부터 내가 원래의 성격을 버리고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지는 못했다. 첫 도시였던 바르셀로나에서는 여전히 가우디의 작품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몬주익 언덕 주변을 더 둘러보고싶은 욕심에 바쁘게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스페인 여행을 하던 중, 세비야에 갔을 때였다. 친구와 함께 스페인 광장에 가기 위해 강가를 따라 쭉 걸어가고 있었다. 강가에서 햇빛을 쬐며 책을 읽는 사람, 맥주를 한 캔씩 들고 나와 연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등 꽤 많은 사람들이 강 주변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하고 있는 행동도 달랐고, 함께 온 사람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여유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여행객인지,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욕심을 버리고 여유로운 여행을 시작한 것도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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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서 피곤하면 당일치기로 근교를 다녀오기로 한 일정을 취소하기도 하고,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잠시 발을 멈취 구경하기도 했다. 그 순간, 나의 마음과 나의 기분, 감정에 집중한 여행을 하다 보니 계획대로 꼭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도, 조급했던 마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여행을 하며 마지막 여행지인 리스본에서 분홍빛 노을을 만났다. 친구와 항구를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만난 해질녘의 핑크빛 하늘을 보며 수다스럽던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춘 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노을 명소 프림로즈힐엣 봤던 붉은 노을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예상치 못하게 우연히 마주한 하늘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찮게 마주친 풍경은 감동을 배로 만들었다.

꿈 같았던 2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일상을 살고 있다.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바라본 창밖에는 주황빛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노을은 영국이라서, 스페인이라서, 포르투갈이라서 특별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내가 살아 숨쉬는 일상의 공간에서도 그 예쁜 노을은 똑같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 내가 그 존재를 몰랐던 이유는 삶에 치여서, 여유가 없어서 제대로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노을도 그곳의 노을과 다르지 않았다.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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