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펠릿을 거두며 봄이 온다 [도서]

정용준 '바벨'을 읽고
글 입력 2019.05.1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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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고를 하고 그 사고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행위, 즉 말을 하며 산다. 언어장애가 있지 않는 한 인간에게 말의 금지란 그 어떤 고문보다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용준의 소설 ‘바벨’은 이러한 말의 금지, 혹은 발화 자체가 고통이 되어 스스로 발화를 중지하는 재앙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바벨’은 인간의 말소리가 그대로 특정한 형태를 띤 물질(펠릿)로 형상화되어 생성되는 시대, 말 그대로 인간세계의 종말을 뜻한다. 펠릿이 생성되면 중력에 의해 발목으로 떨어지는데 이는 체형을 왜곡시키며 이를 처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필요하여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바벨의 특징이다. 너무 많은 펠릿이 생성되면 경제적으로도 문제지만 질식사의 위험이 있어 사람들은 결코 말을 하지 않고, 심지어 혀를 잘라 스스로 아예 침묵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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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전설 속 세상, ‘아이라’와 닮아 있다. 바벨은 아이라를 흠모하여 만들어낸 ‘노아’라는 사람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아이라라는 나라에서는 발화된 모든 말이 얼어붙는데, 이 나라의 사람들은 이렇게 얼음덩어리가 되어 가시적인 형태로 남은 언어가 언젠가 찾아올 ‘아이라의 봄’에 의해 녹아 온 세상이 생생한 언어로 가득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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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두 시대의 언어는 얼어붙어 있다. 둘 모두 언어는 특정 형태로 남게 되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말을 내뱉으면 얼어붙는 아이라와 바벨의 펠릿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한민국의 언어 역시 아이라의 언어와 펠릿의 언어와 다르지 않았다.


먼저 우리말에는 그에 맞는 문자가 없었다. 즉 고대부터 한국어는 존재했지만 이를 옮기거나 기록해줄 수 있는 우리만의 글자, 즉 한국어글자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모든 우리말의 기록은 주변 국가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여 이루어졌는데, 때문에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었던 상층 양반자제들과 달리 일반 서민들은 평생 말로만 언어를 사용했지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언어로는 사용하지 못했다. 자신의 언어가 있지만 표현할 매체가 없는 것, 이 또한 일종의 바벨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선까지 이어져오던 한반도의 바벨은 1446년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로 인해 드디어 ‘봄’을 맞이하게 된다. 길고 긴 세월 끝에 드디어 우리말을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의 문자를 얻은 것이다. 과연 이 시절 사람들은 한글의 탄생을 상상하기나 했을까? 이것은 어쩌면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의 노아가 발명해낸 진정한 바벨시대로부터의 해법이자 혁명이고 기록의 정체로 표상되는 펠릿의 종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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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말에 찾아왔던 봄은 가고 다시 아이라의 계절이 찾아온다. 문자언어로써 표현되고 기록되었던 한국어의 봄은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모든 언어가 얼어붙는 겨울로 변모하게 된다. 이 시기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한글사용은 물론 한국어의 발화조차 금지된 진정한 의미의 바벨을 맞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는 철저히 우리말의 사용이 금지된 시기라는 점에서 바벨과 정확히 일치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고 한국어를 쓰면 각종 체벌을 받았으며, 이름마저도 일본어로 개명해야 하는 등 한국어 사용에 따른 펠릿의 위험성은 대단했다.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펠릿이 튀어나오게 만든 노아였고 친일파가 아닌 대부분의 우리 민중들은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JAPAN OUT, 잣(JOT)’이었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식민지로서의 대한민국은 길고 긴 독립투쟁과 항거로 인해 결국 1945년 일본(노아)을 몰아내고 다시 봄을 맞았고, 이 봄의 볕은 특별히 “빛을 되찾았다”고 하여 ‘광복’이라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광복 이후 우리 대한민국의 언어는 지속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쓰이고 있는가? 우리들의 언어는 과연 정말로 자유로워졌는가? 내가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에 찾아온 바벨의 시대. 현대 사람들의 언어를 틀어막고 언어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만드는 현대의 펠릿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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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노아와 펠릿은 다름 아닌 자유로운 언어를 구속하는 ‘정치이데올로기’이다. 세상에는 많은 이념이 존재하며 각자 다른 이념을 구현시키기 위한 가치는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달성되기 어려운 ‘자유’인 것 같다. 한때 공산주의, 사회주의라는 말은 금지되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빨치산, 북괴 등으로 낙인찍어 법으로 처단하였다. 70년대 유신체제 아래에서는 박정희를 비난할 수 없었고,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희생됐던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은 한동안 희생의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다.


이렇게 어둡고 차가운 대한민국의 아이라는 다시 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가 선언되면서 봄을 맞는 듯 했으나 사계절의 국가를 대표하는 한국은 그 특성을 보여주듯 다시 2008년 광우병 사태, 2014년 세월호참사 등 봄이 가고 겨울이 도래했다. 그 당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불이익을 당했으며, 민간이 정부에 불법감찰이 되었고 사람들은 역사인식을 획일화하는 국정교과서 사태를 눈뜨고 지켜보아야만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한민국을 다시 봄으로 돌려놓았다. 이 무지막지한 현대 노아의 펠릿을 견디고 버텨내며 목소리를 냈고, 때론 총에 맞고 곤봉에 맞고 물대포에 맞아가며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봄을 불러냈다. 가장 최근엔 2010년대 촛불시위로서 우리 국민은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그리고 그 펠릿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히 극복하고 바벨을 종식시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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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에겐 겨울을 다시 봄으로 돌려놓는 ‘재생’의 힘이 있다. 자연의 계절은 우주의 섭리대로 겨울이 가면 분명 다시 봄이 온다. 그러나 아이라의 봄은 전설일 뿐이고 아이라의 국민들은 그저 멍하니 언젠가 찾아올 봄을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한 속성의 계절은 순환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봄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이 만들어낸 봄은 ‘재생’의 봄으로서 가만히 기다려서 갖게 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투쟁하고 진짜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가능한 ‘얻어낸’ 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언어를, 우리의 말을 자유롭고 제약 없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소리는 내는 것이지 기다려서 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내가 살아온 세월 중 사회적인 펠릿이 나의 언어를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는 편이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따라 광우병 시위에 참가하고, 머리가 커서 어느 정도 세상을 조금 알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를 말아먹으려는 노아에게 대항하고 나의 언어를 되찾기 위해 펠릿을 무릅쓰고 광화문에 나가곤 했다. 어찌보면 나도 2000년대 봄의 ‘재생’의 주역인 것이다.


봄은 가져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말해줬듯, 언어는 결코 자연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얻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얻었다고 해도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롭게 쓰이기도 쉽지 않은 것이 언어이다. 우리는 그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투쟁하고 있으며 우리의 봄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투쟁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 개개인의 바벨 역시 아직 봄을 맞이하진 않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의 펠릿을 가지고 있고 그 펠릿으로 인해 어떤 말을 하는 데에 있어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 같다는 불안함이든,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행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든, 각자의 펠릿은 그 사람의 언어를 구속하고 마음속에 심한 악취를 남긴다. 펠릿이 넘치면 자칫 질식사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질식사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말해야 하며, 펠릿을 과감히 잘라내고 개인 바벨시대의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러하면 분명 아이라에도, 바벨에도,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봄은 올 것이다.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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