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의 미로의 재개봉에 맞추어서 [영화]

성장에 실패한 소녀들에게
글 입력 2019.05.1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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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성장에 실패한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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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에서 주인공은 안전한 성장에 실패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소녀들의 성장 서사는 소년들의 그것에 비해 부족하다. 그만큼 성장 실패 서사 또한 더더욱 부족하다. 실패한 소녀 성장 서사인 판의 미로의 재개봉에 맞추어서, 내가 알고 언젠가부터 품어버린 한 소녀의 성장 실패 서사를 가져와 볼까 한다. 그것은 영화 '디테치먼트'에서 나오는 메레디스라는 소녀이다.



0.5. 가족을 찾아서


이 글은 이랑의 노래 '가족을 찾아서'를 오마주하여 썼다.





1. '어린 것'의 두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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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것은 방황한다. 그들의 가치관이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선택할 때 선택 기준이 없고, 선택 기준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시행착오를 거친다는 말은 그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뜻이나 그들이 우유부단하게 선택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어떤 실험실에 놓여진다. 가끔 그 실험실 위에서, 어린 것은 스스로를 죽이기도 한다.



2. 가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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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레디스와 에리카 모두 가족과 집을 잃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둘을 찾기 위해 간절히 헨리에게 매달린다. 헨리가 이 둘에게 어떤 방식의 도움을 주는가에 대한 차이에서 이 둘의 운명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헨리는 에리카에게는 구체적인 도움을 내밀지만 메레디스에게는 부모가 자식을 재울 때 하는 거짓말만을 반복한다. ‘모두 잘 될 거야’ 라는 거짓말. 아마 메레디스는 그 거짓말을 믿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메레디스의 방황과 절망은 후에 좀 더 서술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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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가 에리카와 메레디스에게 다른 형태의 도움을 준 것은 어쩌면 타이밍의 문제, 혹은 멜로드라마의 문제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헨리는 이 점을 정말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도망쳤으며, 그래서 스스로 ‘마음 속이 빈 기분’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헨리는 애착으로부터 도망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감독은 이 영화를 현대 사회의 공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하였으나 두 세 사람의 운명이 타이밍에 의해 변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성격 또한 띄고 있다. 그리고 이 ‘멜로’는 학창시절 선생님을 무작정 선망하는 ‘애착’, 그리고 아이들에게 절망보다는 희망을 알려주려는 ‘애착’과도 치환가능하다.

메레디스는 헨리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잔인한 타이밍의 문제 때문에 자신의 애착을 부정당한다. 물론 메레디스의 애착이 과연 건강한 애착이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을 때, 구원자가 나타나면, 그 구원자에게 절실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겠지만, 구원자는 그에 대해 그리 절실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 메레디스의 실험실에서는 결국 아무도 남지 않게 되고, 결국 최선의 선택이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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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메레디스는 헨리의 ‘다 잘될 거야’ 라는 거짓말을 믿지 않았을까? 나는 만약 메레디스가 그 말을 믿었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메레디스의 행동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헨리나 주위 선생님들과 어른들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래서 메레디스가 불행보다는 행복을, 그리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더욱 믿는 (사실보다는 진실의 측면에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디테치먼트’가 주는 절망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어른들은 너무 지쳐있었고 이기적이었으며 누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슬픈 얼굴을 관찰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메레디스 한 사람 뿐이었다.

이상한 실험을 하는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도움을 받을 기회는 운나쁘게 잘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어른들이 하는 자장가 속 말들, 즉 ‘다 잘될 거야’라는 거짓말을 믿지도, 믿지 않지도 못해서 살아남았다. 앞으로 우리는 메레디스를 기억하고 어른들을 미워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토록 미워하던 어른들과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음 또한 알게 될 것이다.



3. 자장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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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의 주인공인 오필리아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상한 실험을 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그리고 분명 오필리아의 옆에서도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오필리아에게 어떤 사람인지 이번 재개봉에 맞추어 한 번 지켜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자장가의 진실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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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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