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시간을 사는 건 처음이기에 - 뉴필로소퍼 VOL.6

제한된 시간의 아름다움
글 입력 2019.05.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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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2시간의 출퇴근 시간, 하루 8시간 이상의 근무 시간, 최소 8시간은 자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들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의 개인 시간은 과연 얼마 정도가 남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으로 산다면 하루에 6시간 정도는 개인의 시간이 확보되는 셈이다. 6시간이라고 말하면 대단히 큰 시간처럼 느껴지고, 뭔가 자격증 공부를 준비한다고 해도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를 포함해서 그 6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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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피하고 싶을 때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2016년 4월의 어느 금요일, 두 명의 리포터가 TV 화면 속에서 커다란 수박에 고무줄을 감는 모습이 나왔고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고무줄이 늘어날수록 수박이 터질지 안 터질지 조마조마해 하는 리포터 두 명에게 수많은 사람이 휩쓸리고 있었다.

 

고무줄이 686개째 감기는 순간, 수박이 터졌고 리포터들은 흥겹게 수박을 먹었고, 사람들이 시간을 알아챘을 때는 45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나는 당신들이 수박에 고무줄 감는 모습을 40분 동안 지켜봤다. 나는 도대체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라고 스스로 한심함을 나무라는 댓글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는 심심하거나, 심지어는 할 일이 무수히 많을 때도 유튜브를 켜서 케이크 몇 판을 먹어치우거나 짜장면 몇 그릇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동영상을 본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동영상도 더 찾아본다. 대리만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제임스 윌슨 윌리엄스는 그 시간을 쓰는 것을 “관심을 쏟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것, 추구하지 않은 모든 목표, 만약 다른 일에 관심을 쏟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가능성”을 지급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말했다. 우리 삶에 좀 더 위대한 목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우리는 아무래도 좋을 것을 바라보느라 유일한 자유시간, 하루의 1/4 가까운 시간을 날리는 것일까?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이따금 내게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는 종종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고 두 시간 내내 기타를 쳐댄다. 어떤 날은 종일 카페에 앉아 몽상을 하고, 또 어떤 날은 서점에 가서 지금 하는 일과 아무 상관 없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내가 진작 끝냈어야 했던 일들은 여전히 손도 대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찾아온다.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이 평소보다 덜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나이젤 워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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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나머지 시간을 보낼 것인가? 그것은 곧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의 질문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는지가 곧 내가 될 테니 말이다.


나는 시간과 근기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소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한 나는, 나를 자발적으로 고립시켰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시간과 마음을 내야 가능한 것이었고, 그럴만한 여유는 잘 생기지 않았다. 꼭 필요한 일상만 간단히 처리하고 날이 바뀌면 다시 일터로 향하는, 무섭도록 완벽하게 안정된 일상에서 결핍이 균열을 낼 자리는 없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것을 다 지켜낼 수는 없다고, 모든 것을 다 누릴 수는 없다고 하니까. 내 손에 쥔 얼마 되지 않는 자유의 시간은 소중하니 기쁘게 고립을 선택했다. 이것이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휴식일 수밖에 없다고 되뇌며.


- [일하는 여행자의 시간], 김소담



일종의 도피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역량으로는 이겨내기 너무 힘든, 그 이유가 체력적인 것에서든, 정신적으로 과부하가 걸려서든, 아니면 그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든, 그런 일이라서 잠시라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압박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결국은 시간을 더욱더 낭비하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매 순간 내린 결정 때문에 다르게 살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파괴하고 있다. 쾌감을 느끼면서 마음을 어지럽히겠다고 결정할 때마다 진정한 목표를 좇는 삶을 저버리는 것이다.

 

요리를 배우거나 소설을 쓰거나 세계를 여행하는 삶이 영영 사라지는 셈이다.

 

게다가 당신 혼자서 모든 선택에 대한 극심한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다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닫아버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니까."


- <존재론적 만화> 실존주의 방문판매, 코리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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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중한 업무에서 달아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게 자신에게 활력을 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그게 온전히 자신을 위한 휴식이 아니라,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광고 회사, 유튜브의 속삭임이라면 우리는 에너지를 빼앗기기만 하고, 다시 힘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떤 일을 하겠다는 선택은 동시에 다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수반합니다. 어떤 일이 중요한지 따져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 매슈 비어드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지? 라는 말이 헛되다는 주장이 매우 많았던 책이다. 개중에는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이유가 본인이 시간을 자꾸만 타인에게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 많았다. SNS를 하게 되는 이유는 몸이 간지러울 때 다른 관심사로 돌리면 간지럽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급격하게 나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멀어져서, 타인의 근사해 보이는 서포트라이트를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다. 그것이 주는 쾌락에서 벗어나지 못해 중독되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자신도 근사해 보이게 만드는 SNS를 하게 된다. 버릴 것은 버리고, 그럴듯한 것만 찍는다. 그게 자신의 실제 삶이라고 착각하며.

 

그것을 ‘좋다’,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만약 판단한다고 해도, 그렇게 살지 말라고 조언할 수도 없다. 결국, 본인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남은 인생을, 빨갛게 터지는 수박을 액정 너머로 보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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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



반면, 자신의 시간을 무척 긍정적인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이나 마들렌 빵의 맛이 내 안에서 불러일으킨 감각과 내가 틀에 박힌 기억의 도움을 받아 재구성하려고 했던 베니스와 발자크, 콩브레에서의 기억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내뱉은 아주 사소한 말이나 의미 없이 취한 몸짓들은 논리적으로만 봤을 때는 그 본질과 아무 관계 없는 잔상들에 둘러싸여 우리 안에 남게 된다.


우리가 오직 과거에 마셨던 공기를 통해서만 그토록 깊은 소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낙원이란 결국 잃어버린 낙원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존재였기 때문에 미래에 벌어질 비극의 가능성에 무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쉘 프루스트



그것은 내 것이 아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독자들과 그 독자들이 점유하고 있는 각각의 시공간을 떠오르게 한다.


그들이 떠올릴 시인의 모습은 나와는 한없이 멀지만, 또한 한없이 나를 향해 수렴한다. 그러한 문장을 마주할 때면, 오후6시 39분을 가리키는 지금, 여기의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시간을 마주친다는 것. 우리는 함께하기에 더 많은 빈 곳을 의식하면서 고립된다. 아주 오래된 고독은 길들이는 것보다는 발달시키는 것이 낫다.


- <뮤즈를 기다리는 시간>, 기혁



부정적인 글을 읽을 때보다 마르쉘 프루스트나 기혁 시인의 글을 읽을 때 무척 즐거웠다. 그들이 시간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소중한 한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삶에 아주 집중하는 순간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연인과 만나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제발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하는 삶 속에서 한정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 사이가 조금씩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욱 지금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 거로 생각하면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마저도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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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새 어른이 되었는지,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다. 이미 10번은 예습을 해서, 대본을 외울 만큼 지겹게 들었던 영어 수업시간 따분한 교사의 수업을 듣던 그때의 시간의 흐름과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때는 시간을 아주 잘 썼고, 지금은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때와 비교하면 인터넷에 접속해서 남의 삶을 보는 시간이 늘었긴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정의할 만큼 빠져있지도 않으며, 누군가가 보라고 하기 전에는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는다. 나의 삶은 타인의 거짓된 소리 없이 조용하고, 키보드 스킨을 깐 노트북의 타자 치는 소리가 늘 쉬는 날 없이 반사되어 들려온다.

 

한때는 이 고요함이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갑자기 내가 미쳐서 뭔가 달콤한 것을 갈구하지 않을까, 하고 자신을 불신했던 적도 많았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두려워하느라 많이 낭비해버렸지만, 그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정면으로 마주쳤던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빠르게 끝내면 누군가 좋아할 거로 생각했던 일이, 빠르기보다는 정확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를 담아내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기까지. 사랑이라는 것에 어떤 중대한 목적점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나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나의 시간을 쓰고 있고,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나의 삶을 좀 더 풍족하게 해주는 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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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에 대한 부정적, 긍정적인 경험에서 더 나아가 시간의 본질에 관해 탐구한 글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물리학과를 지원하려고 했을 정도로 우주와 시간 개념을 좋아했는데, 당시 이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배웠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가장 인상 깊게 배웠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에 오랜 시간을 있던 사람의 시간과 지구에서 책을 읽고 일과를 하며 사는 사람의 10년은 전혀 다른 세월이 된다. 그들의 시간은 느리게 가기 때문에, 우리가 10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은 더 짧은 세월을 보내고 돌아오게 된다. 정해진 물리량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의 차이다.

 

시간의 실체는 중력장에 의해 발생한다. 우리 은하가 탄생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빅뱅이 발생한 후 여러 행성이 태양 주변을 돌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생기는 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공전하면서, 그리고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면서 하루의 개념과 일 년의 단위가 생긴다. 생명체는 지구 위에서 정해진 시간만큼을 살면서 사랑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내가 고등학교 때 우스갯소리인지, 사실인지 모를 이야기 중의 하나가 “천문학자들이 우주를 공부하다가 자살을 많이 한다”는 게 있었다. 우주의 그 위대함에 비교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보잘것없어서라는 이유가 덧붙었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집합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이 시간상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반면에 시간은 제한된 시간 동안 존재한다는 점이다. 돌은 원형적인 사물이다. 우리는 돌이 내일 어디에 있을지 물어볼 수 있다. 반면에 키스는 사건이다. 키스가 내일 어디에서 있을지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계는 돌이 아니라 키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영원한 것은 없고, 우리 자신도 특정한 실체가 아니라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단명하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의 정해진 수명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 <시간은 각각의 지금들의 총합이다>, 카를로 로벨리



그렇다. 아무도 우리를 TV 화면에서 생중계하듯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 인간의 존재는 우주의 파편 일부가 어쩌다 융합되고, 분해되고 성장한 하나의 유전자 조직일 뿐이다. 우리 은하 외에 다른 은하에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융합된 유전자 조직을 가진 생명체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그게 지금 이 순간이든,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든, 멀리 떨어져서 아득한 미래의 일이든 상관이 없다. 결국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주 일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래를 확인하는 것이 당황스러운 피드백 효과를 가져오며, 내가 미래의 행동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의 어떤 지점을 여행하더라도 나는 결국 현재에 있다는 점이었다. 하여,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기로 했다. 결국은 정말로 그게 전부니까. 


- <시간의 탄생>, 팀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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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지금까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정체성이 약하고, 생각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를 들며 나를 찾고 싶어 했는데,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어느 때로 돌아가던 그때의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했을 것이다. 조금 미숙하지만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에게 정면으로 대들었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과거에 내가 어떤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지금의 내가 아닐 거라는 것은 아니다. 망설임의 끝에 선택은 달라졌겠지만, 나는 결국은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지나올 수밖에 없는 길이며, 내가 이 시점에 해야 했을 고민이며,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삶을 살 가치가 있는 것은 그래도 첫 번째로 살아가는 순간이기 때문은 아닐까. 만약 무한 타임 루프에 빠져서 매 순간을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자신이 어느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지 안다면, 내일 연인과 어떤 일로 싸울지를 안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살기 싫을까.

 

나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내가 당연히 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이고,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내 가치관으로 판단하는 과정.

 

예전처럼 한 평도 되지 않는 고시원 침대 위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하루가 끝날 때쯤 맥주 한 캔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채 인식하기도 전에 기름과 설탕으로 범벅된 먹을거리를 잔뜩 사 들고 손과 발을 씻지도 않고 엎드려 입안으로 집어넣는 그런 것이 아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미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다 결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내 삶을 처음 사는 것이기에 할 수 있는 기대감, 그리고 내가 되기 위한 여행을 하는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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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6호
- 일상을 철학하다 -


엮음 : 뉴필로소퍼 편집부

출간 : 바다출판사

분야
인문/철학
문예지

규격
180*245mm

쪽 수 : 172쪽

발행일
2019년 4월 1일

정가 : 15,000원

ISBN
977-2586-4760-05-92

*
《뉴필로소퍼》는
1월, 4월, 7월, 10월
연 4회 발행되는 계간지이며
광고가 없습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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