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 뉴필로소퍼

글 입력 2019.05.1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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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 년 동안 프라하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서울에서의 삶과 프라하에서의 삶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시간’에 있었다.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는 날에도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필요’와 ‘효율’에 따라 살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만 같아 자투리 시간이라도 악착같이 쓰려고 발버둥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프라하에서는 달랐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해질녘까지 산책만 해도, 전날 술을 잔뜩 마시고 늦잠을 자도, 장을 봐서 요리를 하는데 만 두세 시간을 보내도,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시간이 아깝다든지 따위의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할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주5일, 9시부터 6시까지 인턴으로 회사에서 일을 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회식이 있었으며, 한 달에 두 번 이상 주말 여행을 떠났다. 그럼에도 매사에 여유로웠고 바쁘지 않았다. 프라하에서 시간이 더 느리게 가거나 시간의 총량이 늘어나진 않았을 터였다. 같은 24시간을 살면서도 서울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일상을 철학 하는 < 뉴필로소퍼 > 6호에 담긴 철학적이고 물리적인, 심오하고 과학적인 시간에 대한 사유들 속에서 그에 대한 답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 시간이 뭘까? ]
 

드라마 < 이번 생은 처음이라 > 에서 짝사랑 하던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윤지호(정소민)는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남자주인공 남세희(이민기)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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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쪽팔려서 그래요. 그 쪽이 아니라 나한테. 
나이 서른 먹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하고, 
혼자서 3년을 얼었다, 녹았다. 
서른까지 울렁울렁
내 마음한테 내가 쪽팔려서 그래요.
하… 스무살도 아니고.
나이 서른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지호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세희는 말한다.


“그 짧은 문장에 ‘서른’이란 단어를 3번이나 쓰다니, 신피질의 재앙이네요.
스무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 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 같은 집에서 매일 똑 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 친구한테 시간이라는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깐

스무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그렇게 분, 초로 나누어서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상에 인간 밖에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서 
돈을 쓰고, 감정을 소비하게 만들죠.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살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온도, 속도, 돈 만큼이나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를 인간이 알기 쉽게 년, 월, 일, 시, 분, 초로 그저 ‘표현해 놓은’ 것으로 여겼다. 아주 오래 전 시계가 없을 때 해나 달의 위치로 시간을 가늠하고, 별을 올려다보며 계절을 구분했던 일을 들으면서도 시계가 없어서 참 불편했겠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드라마가 지적하고 있는 바로 이 지점, 시간의 절대성과 시간에 대한 통념에 대한 의문을 < 뉴필로소퍼 >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아몬다와족이 보기에

시간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달력도, 시계도 없는 사람들이라니!’, 앙드레 다오


새는 제 나이를 알지 못한다.
장미도 제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마리 코렐리



시간에 대한 우리의 또 다른 통념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 뉴필로소퍼 > 는 새로운 시각을 담아내고 있다.

 

지난 300년 간 시간에 한결같고 지속적인 흐름이 있다는 뉴턴식 시간 개념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오로지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만 시간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도 있었다. 즉, 시간이 보편적이지 않고 국지적이며 누군가가 경험할 때만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뉴턴의 개념이 세간에 널리 받아들여지긴 했어도, 실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이 더 시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 아닌가?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개념인가?


‘시간은 각각의 ‘지금’들의 총합이다’, 카를로 로벨리 


올해 스물 다섯 살이 됐다. 흔히 ‘반오십’이라고 칭하는 스물 다섯. 2018년 12월 31일까지만 해도 감흥이 없던 동갑내기들은 2019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스스로를 반오십이라고 부르며 전보다 더 불안해했고, 제 신세를 불행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연 달력도 시계도 없는 사회에서도, 새와 장미의 세계에서도 시간이 지금처럼 시, 분, 초 단위로 흘러갈까? 해가 바뀌면 떡국과 함께 한 살을 먹고 늙어가는 자신을 미워하면서 살까? 물론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노안이 오고, 등이 굽어가며 종래엔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고양이도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하지만 자신의 생을 길고 가느다란, 구분선이 빼곡한 실선 어디 쯤에 위치시켜 놓고 좌불안석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 왜 시간이 부족할까? ]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시작한 이래
나에게 시간은 거의 항상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하는 여행자의 시간’, 김소담



시간의 존재 자체와 방향성에 대한 의심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던지는 시간에 대한 불만은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 년, 반 년, 한 달, 일주일, 하루, 한 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짜곤 했다. 그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네가 연예인이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누군가는 ‘시간관리 정말 잘한다’ 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변명하자면, 나는 단지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그럼 왜 시간이 부족할까?

< 뉴필로소퍼 > 에 따르면 우리가 SNS에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시간이 하루 135분 정도다. 자그마치 2시간이 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올리버 버크먼은 오늘날 사회는 ‘관심경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는 방식으로 부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주요 앱이나 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스크린 반대편에서는 우리의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대가로 월급을 받는 1,000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시간 도둑을 잡아라’ , 올리버 버크먼


그러니 내가 어떤 대상에 관심을 쏟고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소비하고 낭비하는 행위와 동일 선상에 서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을 두고 남 탓만 할 수 있을까? SNS든 광고든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뿌리치기만 하면 나의 관심을 원치 않는 방식으로 투자하지 않을 수 있는 거니까.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간을 쉽게 낭비하는 데 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의 끝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주옥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인생이 짧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것을 낭비하는 데 있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나이젤 워버튼



 
[ 어떻게 살 것인가? ]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와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도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즉 인생을 잘 살거나 못 살거나,
평화롭게 살거나 고통스럽게 살거나를 결정하는 데 핵심적이다. 

‘시간은 각각의 ‘지금’들의 총합이다’, 카를로 로벨리



시간이 무엇이고, 시간이 왜 부족한가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이 섰다면 이제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이며 시간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도 < 뉴필로소퍼 > 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어쩌면 이 질문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중대한 문제다.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하는 무서운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않으려면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술에든, 시에든, 선에든,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그저 취하라


샤를 보들레르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라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불렀어요.
요즘 말로 하면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데,
이런 시간은 지나가 버릴 뿐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이들은 크로노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뜻하는 ‘카이로스’을 함께 사용했어요.
카이로스는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 같은,
우리가 애타게 바라고 평생 기억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뜻하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건 크로노스를 낭비하는 걸지도 몰라요.
하지만 잡다한 일로 인생을 채운다면 카이로스를 낭비하는 게 돼요.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낭비할 건가요?


‘어른들은 왜 재미있는 일들을 시간 낭비라고 하죠?’, 매슈 비어드


사람에게 시간은 유한 자원이고 이 자원의 소진은 곧 죽음을 의미하므로
시간을 나누는 것은 곧 자신의 생명을 내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예술’, 나성인


프라하의 빨간 트램과 낭만적인 야경은 매년 프라하 인구만큼의 관광객을 불러들일 만큼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광경이라도 반 년을 넘게 보면 질릴 만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프라하성과 까를교 곁을 맴돌며 매번 같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매번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행복했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에 유달리 집착했던 건, 그게 프라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 프라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프라하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유한하지만, 문제는 프라하 생활이 끝나는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던 반면, 인생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을 즐기기 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해 더 집착하게 된다.


< 뉴필로소퍼 > 를 읽은 독자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시간이 절대적이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필요와 효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도 있겠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중요한 건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위해  < 뉴필로소퍼 > 는 충분한 위로와 조언을 아낌없이 베풀어 줄 것이다. 




차례


10 News From Nowhere
18 Feature 시간 도둑을 잡아라 올리버 버크먼
24 Feature 시간은 왜 늘 부족할까 티파니 젠킨스 
32 Feature 달력도, 시계도 없는 사람들이라니! 앙드레 다오
38 Interview 시간에는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휴 프라이스 
52 Comic 실존주의 방문판매 코리 몰러
54 Feature 여전히 우리는 태양의 영향 아래 있다 패트릭 스톡스 
62 Feature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톰 챗필드 
70 Feature 미래를 보는 실험 마리나 벤저민 
76 Interview 시간은 각각의 ‘지금’들의 총합이다 카를로 로벨리 
90 Feature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98 Feature 내일을 위해 여전히 알람을 맞추자 마시모 피글리우치
104 Feature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나이젤 워버튼 
110 Essay 시간의 탄생, 그 이전 팀 딘 
118 고전 읽기 시간 여행자의 귀환 허버트 조지 웰스
130 6 thinkers 시간Time 
132 Coaching 어른들은 왜 재미있는 일들을 시간 낭비라고 하죠? 매슈 비어드
136 고전 읽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144 Opinion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예술 나성인 
150 Opinion 뮤즈를 기다리는 시간 기혁 
156 Critic 최후의 날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164 Our Library
166 Essay 일하는 여행자의 시간 김소담 
172 Interview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_수잔 칼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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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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