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글 입력 2019.05.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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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다. 좋은 평들을 많이 들었다. '인생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이름. 분명 좋은 말들이 발자국으로 남는 작품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기억할 것이다.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웃기도 했다.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었지만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이 영화는 정말 많은 시대상과 배경을 다루고 있다. 포레스트의 어린 시절부터 다리에 장치를 끼고 다니던 등이 굽은 아이, 사랑, 베트남 전쟁, 탁구, 억만장자, 어머니..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지금 이 글을 통해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오직 하나다. 포레스트의 단순하지만 아주 강인한, 제니를 향한 사랑이다.


나는 그 둘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포레스트의 우직한 그리움과 미련한 사랑, 오직 그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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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는 제니를 이렇게 기억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콩과 콩깍지 같은 존재였다고. 사실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첫눈에 반하거나, 정말 사랑에 빠져 상대에게 객관성이 저하되면 흔히 콩깍지가 씌웠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콩이 등장한다. 콩과 콩깍지의 관계라니. 참외와 참외껍질같은, 수박과 수박껍질같은 느낌이려나. 어찌 되었든 서로가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기억하기로는 이런 표현이 극 중에서 적어도 세 번은 등장한다. 포레스트와 제니가 둘도 없는 단짝이 된 날, 서로가 서로밖에 없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 첫 번째, 그후 다시 극적으로 제니를 재회하게 되는 순간이 두 번째. 이후 다시 제니와 함께 하게 되면서, 포레스트는 말한다. "우리는 다시 콩과 콩깍지같은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달리 말하자면. 제니는 적어도 세 번이라는 순간 그 이상, 포레스트의 곁을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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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제니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꿈을 이루고 싶어 했고, 죽고 싶어 하는 동시에, 매우 살고 싶어 했다. 그런 제니의 마음을 알기에, 수도 없이 포레스트 곁을 떠난 그의 상황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포레스트의 마음이 너무도 가여워서, 그게 정말 불쌍해서, 무슨 마음인지 알 것도 같아서, 눈물이 났다. 보고 싶어도 외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그리고 잊어버릴 쯤에 다시금 나타나 나를 헤집어 놓는 그 존재가 너무도 힘들고 괴롭고 또 사랑해서, 그래서 더 보고 싶어서, 포레스트가 계속해서 달리는 시간 동안 얼마나 제니를 생각했을지 알 것도 같아서, 어떠한 생각도 정체되지 않는 달리는 그 시간이 사실은 그 사람을 더 뚜렷하게 떠올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서.


그 모습이 계속해서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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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극 중 주인공 정환은 영화관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있다. 그런데 머릿속이 계속해서 복잡하다.


그는 사랑하는 덕선을 혼자 남겨두고 온 생각에 계속해서 망설인다. 나갈까. 말까. 지금이라도 나갈까. 가만히 앉아 있을까. 그때 영화는 이런 장면을 띄워준다. 포레스트와 제니가 수많은 사건들을 뒤로 하고 드디어 극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 높이의 강을 헤집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첨벙첨벙 건너간다. 물의 저항으로 다리는 한껏 느리지만 둘은 마침내 서로를 품에 안았고, 강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했고, 정환은 뛰쳐나간다.


그리고 발견한 덕선의 곁에는, 이미 자신보다 빨리 결정을 내린 친구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그 이후 비 오는 하늘 아래 정환은 자신의 자동차에 홀로 앉아 이렇게 독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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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시시때때로 찾아 들지 않는다. 적어도 운명적이란 표현을 쓰려면 아주 가끔 찾아드는 극적인 순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운명이다. 그래서 운명의 또 다른 이름은 타이밍이다.


그 빌어먹을 빨간 신호등이 한 번이라도 나를 봐 줬으면 내가 지금 그녀 앞에 있을텐데. 내 첫 사랑은 늘 거지같은 타이밍에 발목 잡혔다. 그 빌어먹을 타이밍.


그러나 운명은,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것이 아니다. 간절함을 가진 주저 없는 타이밍이 운명을 만든다. 나는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그녀를 놓친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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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장면을 기다렸다. 둘이 서로를 발견하고 강을 건너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 드라마 속 주인공을 뛰쳐 나가게 만든 바로 그 장면. 드디어 마주하게 된 영화 속 장면은 솔직히 말해서 이미 드라마로 모든 여운과 감동을 느껴서인지, 그리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대신 드라마 속 정환의 대사와 목소리가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운명이라면 이어질 운명은 이어집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길.



하지만 그런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내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선택지를 찾아내고 싶고, 그것에 모든 답변을 하고 싶고, 오답을 적고 싶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떠올리는 그런 순간. 그러니 정환이 말한 운명이라는 것은 적어도 운명이 들어올 만한 길은 내가 내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 결단의 순간과 망설임의 시간이 섞이는 모든 과정에서 타이밍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명이기를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그 사람이 보고 싶을 것이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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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서 제니를 떠올렸다.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엄청난 돈을 번 순간에도, 함께 한 전우와의 약속을 지키는 그 순간에도, 새해 첫날에도.


그런 포레스트에게 제니는 다시 돌아온다. 마치 아주 힘들고 고된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모습 같다. 둘은 다시 콩과 콩깍지 같은 삶의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들의 모습은 내내 편안해 보인다.


사실 이 영화에서 받을 수 있는 메세지는 참 많다. 주어진 일을 그저 우직하게 해내는 포레스트,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해내는 포레스트. 포레스트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꿈을 마주하게 된다는 메세지, 너무 많은 생각은 뒤로 하고 하고 싶으면 일단 시작해보라는 당찬 메세지.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날 울린 이야기는 오직 제니를 향한 포레스트의 영원한 사랑이었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제니를 떠올리며 그저 한 없이 달리는 포레스트의 담담한 표정과 독백들이었다.


그래서 그 둘은 행복했을까? 포레스트는 행복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도시 곳곳을 날아다니던 하얀 깃털이 마지막 신에서 다시 멀리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고, 포레스트는 여전히 굳건한 모습으로 운명과 우연을 넘나들면서 그렇게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전히 제니를 그리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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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이 어느 곳에 멈춰설지, 그리고 그곳이 깃털의 종착역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멈추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놓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한 발짝씩,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가지 않을까?


그것이 현재 내 눈앞에 놓인 어떤 작업물이든, 아픔이 되든,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속 괴로움이 되든, 누구나 어려운 인간관계가 되든, 그 무엇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어떠한 사랑의 존재가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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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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