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플랫다이어리 – 일상에서 오는 묵직한 울림 [웹툰]

마이너에 대한 고찰 10
글 입력 2019.05.0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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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도 유행이 있고, 요즘은 남들보다 #한 일상들이 사랑받는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한 일기를 쓰는 세상. 그래. 나는 세상에 넘쳐나는 #한 이야기들을 좇다가 날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졌다. 지금부터 내가 그릴 이야기들은 나를 위해 쓴 일기. 나만 보는 다이어리에 손으로 꼭꼭 눌러썼던 다짐들. 말하자면 남들의 일상보다 플랫(♭)한 일기!"



요즘 우리는 ‘일상 공유’라는 명목 아래서 과시적인 해시태그로 가득 찬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세상의 과시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너무 많은 이들이 해왔던 것이라 진절머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가고, 머리로는 그 문제를 알지만, 마음으로는 박탈감을 느낀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플랫다이어리>는 한 템포 늦추고 우리 일상을 돌아본다.

가끔 담담하게 써 내려간 어떤 글을 보고 예상치 못한 감정의 요동을 겪을 때가 있다. 또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생각보다 깊은 진리를 얻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스며들 듯 우리에게 와 닿은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고, 계속되는 우리의 삶 주위를 맴돈다. <플랫다이어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천천히 풀어낸다.

이 이야기들은 솔직하게 화자의 모자람을 드러낸다. 자신이 했던 부끄러운 고민과 편견들, 미처 알지 못했던 진리와 같은 것들에 대해 숨김없이 터놓는다.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우리는 깊고 진득한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일상으로부터 오는 가르침들은 사실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해시태그를 여럿 걸친 아름다운 사진에 간단히 두 번의 터치로 좋아요를 누르는 것과는 다르게 천천히 문장을 곱씹고 이야기를 되뇌면서, 그렇게 우리는 <플랫다이어리>를 읽어 내려간다.

오늘은 누군가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의 출렁임에 대해 써보려 한다. 이를 위해 현재 10화까지 연재되고 있는 <플랫다이어리> 중 몇 가지 에피소드를 뽑아보았다.



1. [ep.3 조별과제] - 우리가 말하는 까칠함에 대해서



그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나는 나와 친한 조원들이 낮은 점수를 받는다면 조장인 내가 편의를 봐준 탓이라는 것. 또 하나는 지금까지 잘못했던 사람은 원칙을 지키는 머니가 아니라 머니를 이상하게 여긴 우리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내가 한참 동안 머물러있었던 이유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닮았기 때문이었고, 그가 깨달은 것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은 전부 열심히 한다는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는 팀플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밤을 새우고, 사정이 있는 팀원들의 편의를 봐주고, 이야기 속 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언제나 자기가 해야 할 분량 이상의 것을 하는 사람들을 헌신적이라고 여겼고, 자기가 해야 할 분량만을 하는 사람들은 매정하다고 여겼다. 떠올려보면 인턴 설명회에 갔을 때, 정시출근보다는 10분 일찍, 내 일이 아니라도 일을 찾아서 하기 따위를 인턴 생활의 ‘팁’이라며 알려주는 이들에게 역시 헬조선이라며 욕을 했었는데. 실은 내가 그렇게도 욕했던 사회의 문장에 내가 일조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좋은 의도에서의 도움과 배려는 함께 일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사람’이 하는 일에 있어서 윤활유가 될 수 있고, 그걸 경험한 적도 많으니까.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이들이 대한 올바른 평가를 흐리기도 한다. 언제나 스스로 성실하고 꽤 괜찮은 팀장 혹은 팀원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과 내가 그랬듯이. 실은 원칙을 지켜 제 할 일을 해내고 있었던 머니에 대해 ‘불편함을 참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2. [ep.4 아주 작은 내 은색 차] - 당신에게도 아주 작은 은색 차가 있나요?



어느 날 밤, 나는 아무도 없는 도로위에 서서 거울을 바라봤다. 그 안에 있는 건 분노에 찬 미친 사람이었다.

(...)

회사를 그만두던 날, 사람들은 내 퇴사가 갑작스럽다고 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건 오직 내 차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차는 고요한 침묵으로 날 위로했다. 그래. 누군가 힘들어할 때 상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할 말을 쏟아내지 말자. 그냥 들어주자. 내 작은 은색 차처럼.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일상이 무너지고, 그걸 걷잡을 수 없을 때, 화가 나고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만으로는 조정할 수 없는, 견디기 어려운 일들은 우리를 쉽게 좌절시킨다. 솔직히 아직까지 완전히 사회로 나가지 않은 나에게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극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답답함, 컨트롤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인한 화, 가끔은 너무 불투명하게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도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크기와 관계없이 지금 각자에게 어떠한 이유로 인한 것이든 문제는 있다. 그리고 내 것이 남의 것보다 작다고 해서 참을 의무도, 또 크다고 해서 다른 이의 문제를 무시할 권리도 없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짊어지고 갈 뿐이다.

최근 들어 이런저런 일들로 잠에 들기 전 생각이 많아진다. 그다음 날이 되면 별거 아닌 일일 때도 있고, 몇 달 내내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도 있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가 나에게 와 닿았던 건 그럴 때마다 날 위로해줄 작은 은색 차 같은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걸 새삼 느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은색 차가 주인공을 위로해주는 방식이 우리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은색 차와 나는 가끔 통화를 한다. 어떤 날은 나의 일로, 어떤 날은 은색 차의 일로.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건 차분히 들어주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멋들어진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조급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은색 차의 고요함에 위로를 받으면서, 어쩔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우리는 서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여기에 너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게 할 뿐이다.

누군가를 위해 너무 많은 걸 하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 서로에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으니까. 이쯤되면 생각해보자. 나에게도 아주 작은 은색 차가 있나? 혹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은색 차가 되어주고 있나?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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