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나라에 한평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나라에 사는 여인

글 입력 2019.05.0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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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달나라에 한평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달나라에 사는 여인


<달나라에 사는 여인>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손녀였다. 할머니도 손녀를 사랑했고, 할머니는 자기가 사랑했던 재향군인을 제외하고는 말한 적 없는 사랑의 대서사시를 손녀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하곤 했다. 책은 할머니가 손녀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장면이 섞여 뒤죽박죽 전개된다. 할머니는 사랑에 대한 혈기왕성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였다. 그녀는 어쩌면 지금도 꺼려지는 음, 주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음란한 여자'였다. 물론 그녀가 육체의 사랑에만 탐닉한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랑에 지나치게 열광한 여자였을 뿐이다. 하여튼 그런 그녀를 세상 사람들은 달나라에 사는 여자로 만들었다. (세상에, 금성에서도 여자라는 생물이 산다는데 달에도 산단 말인가! 달 토끼 실직 소식에 눈물을 금치 못하겠다.) 이 책은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들려준다.


*

흥미롭게도, 책의 원제는 신장결석이다. 한국은 이 제목을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라 표현했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적절하기 그지 없는 제목이다. 우리는 책의 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책 표지에 그려진 달은 신장결석같이 보이기도 하고, 달같기도 하다. 신장결석을 달로 표현하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로맨틱한 비유인가 싶기도 하지만, 신장결석을 통해 (할머니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인 재향군인을 만났으니 두개를 같이 두는게 맞는 것 같다.


할머니한테 '재향군인'은 이상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달'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다. 할머니가 생각했을 때, 그들은 같이 달의 조각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정말 우습게 느껴지지만, 그녀 마음 속에서는 달,재향군인, 이상적 사랑, 신장결석이 하나로 조건화된 것 같다.그런 맥락에서 달조각(신장결석)이 아닌 아빠를 낳은 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싶다.


사랑의 세계에 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곤두박질 치는 기분이 유쾌했을리 없다. 할머니는 달나라에서 온 남자와 영원히 달나라에 있길 바랬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사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달나라에서 온 여인이 현실을 딛게 되는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할머니는 정말 달나라를 꿈꾸는 여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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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상적 사랑의 세계에 있는 재향군인이 정말 할머니와 같은 사랑을 했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손녀의 위치에 있을 뿐이니, 사랑에 과한 열정을 가진 할머니가 과장했는지의 여부를 알지는 못한다. 재향군인도 실제로 온천치료가 끝난 후 할머니에게 연락을 한다거나,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그라미가 나오는 동화들에서도 빠진 조각을 찾는 동그라미들은 영원히 그에 맞는 동그라미를 찾지 못했지 않은가. 사람은 내 가슴 속 가장 공허한 부분의 갈망을 사랑으로 채우길 바라는데, 사실 그것에 딱 맞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영원한 독단자인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면, 그건 정말 함께 꾸는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비극은 아니다. 타인의 사랑으로 채워진 부분은 자전거의 보조바퀴처럼 작용한다. 타인으로 채워지는 마음의 공허는 사랑의 안정감 속에서 점점 나로 바뀌어 가니까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불가능한 사랑을 꿈꿨다. 그래서 그녀는 영원히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음란한 여자라고 평가하는 사회적인 제한-사실 이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모습은 사실, 우리가 가진 가장 정직한 모습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그녀가 행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걸 가지려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녀나 재향군인의 몸이 실제로 달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은, 사실 불가능한 것들을 꿈꾸는 유한적 존재인 인간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가진 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독자가 누가있으랴.

책을 읽으면서 쪽팔린 내 과거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아름다웠지만, 나는 아름답지는 않았다. 사랑받지 못할거라는 절망감은 좀 비슷했던 것 같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사랑에 대한 열광과 망상이 있었다. 짝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질렀던 온갖 흑역사는 어떤가? 상상 속에서 나는 과연 할머니의 호각수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흑역사로 덮어놨던 그 추억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당시 내가 저질렀던 모든 사랑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휴, 하나하나 쓰기엔 아직 부끄러워서 말하기 어렵다. 할머니는 어떻게 사랑하는 남자에게 그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나도 할머니가 그러했듯이 그때마다 사랑에 빠진 망상의 횟수만큼 머리를 박았다. 생각해보니까 그래서 이 책에 더 집중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철없기 그지 없는 행동과 광기 어린 생각들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지만, 생각해보니까 할머니가 그렇듯 당연했던 것 같다. 쭉 글을 쓰고보니까 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동정하지 않는다. 계속 이상한 상상을 하고, 이상한 글을 써대고, 발작을 일으킨 것도 이해한다.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괜히 틱틱 대고,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나 아빠에게 사랑 받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마음을 이해한다. 사람이 원래 그렇게 태어났는걸 어쩌나. 어떤 맥락에서 그건 말그대로 '미친년'이겠지만, 사랑을 꿈꿨을 뿐인 한 사람을 이해하는데 사회적인 기준은 잠깐 미뤄두기로 하자. 왠지 위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고 사랑 앞에서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이해해 주자. 그러다가 조져도 팔짱을 딱 끼고 '내가 뭐랬어'라는 듯한 표정도 짓지말자. 우리 모두가 달나라에 한평정도는 땅을 갖고 있지 않은가. 어휴, 난 정말 그래서 이 할머니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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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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