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변혜민

글 입력 2019.05.0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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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다. 작년 여름에 <화모>를 진행하기로 했다가 바빠져서 미뤄지고, 어느새 다음해 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밝고 즐겁고, 봄과 어울리게 꽃치마를 입고 왔다. 모처럼 모델이라 해서 신경써서 입고 왔다고 했는데, 사실 난 의상이 중요하지 않은걸. 웃음이 조금 났지만 너무 즐거웠다. 근황 이야기를 하다가, 슬슬 그림을 시작했다. 대상화된 사물로써 대상의 첫인상(?)을 그렸다.


변혜민1_2.jpg

꽃치마의 패턴이 좋았다. 밝고 화사한, 노랑노랑한 분위기가 좋았다. 그래서 배경에 노란색을 깔았다. 꽃을 색색별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읽고 있는 책도 그렸다. 그런데 얼굴을 그리기가 너무 싫었다. 얼굴 인상을 넣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지. 너무 그리기 어려워서 초록색으로 뭉겠다. 그래도, 웃는 입을 그리고 싶어서 날려 그렸다. 색깔로만 살려내기 어려운 느낌이 있어 콩테로 선을 추가했다. 내가 선을 추가해서 적당한 형태와 적당한 날림의 그림이 되었다.


친구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막마라톤을 목표로 지내며, 계획하는 것과 계획을 이루는것, 동시에 깨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곧 서있는 사람은 대화가 즐겁다. 흐리지 않은, 뚜렷한 사람을 볼 수 있다.

 
변혜민2 - 복사본.jpg


​"걷는 걸 좋아한다고 깨달은 건, 예전에 여행을 갔는데도 너무 공허한 거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건축물들을 봐서 좋았지만, 그게 끝이었거든. 그래서 다음 내가 좋아하는 도시로 걸어갔어. 30km였는데, 사실 거리 개념이 없어서 무작정 걸었어. 6시간 정도를 걸었던 것 같아. 근데,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 무조건 걷지만 않았고 물론 다른 것도 보고 사진도 찍고 먹기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걷고 나서는 (도착하고 나서) 너무 뿌듯하고, 벅차오르고 행복한 거야. 그래서 그 때,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나는 내 발이 너무 좋아. 거을 수 있게 하니까."


친구는 자신의 발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자신을 어디든지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에. 자유의 근원, 원인(?) 어떤 단어를 써야할까, 도움 닫기 위한 시발점은 (?) 발이었다. 가장 아끼는 발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발을 그리지 않았다. 주위를 그렸다. (이런 청개구리 심보) 딛고 있는 쇼파와 주름, 명암, 밝은 치마를 표현했다. -나는 확실히 아무래도, 무에서 유를 그리는 것보다 있는 현상에서 내 마음대로 변환시키고 변화시키는 게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보니 확실히 첫인상 그림에 비해서 애정이 많이 묻어났다. 애정도 보이고, 집중도도 밀도도 엄청나게 보였다. 처음에는 내게 흐렸던 사람이라면, 나중에는 그 사람의 깊은 곳까지 느끼며 그렸다. 많은 색과, 색이 합쳐진 색의 검은색까지 같이 썼다. 그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변혜민2.jpg
 


그림을 보니 누워있는 옆보다는, 세워서 보니까 더 어울렸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처럼. 뒷꿈치를 딱딱 두드리면 다시 다른 세계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사실은 다른 세계에서 본인 집이 있는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거지만) 즐거운 애정이 담긴 그림이다. 하지만 난 늘 그렇듯 디테일하게 그리지는 않았다. 아마 자세히 잡지 못하고 즉흥적인 기분에 취한 그림이겠지. 괜찮아. 내가 즐거웠으니까. 너와의 만남이 너무 행복했다.


*


내가 인물에 관심 없는 이유는 여전히 정확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둘 다 매력이 있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같은 종족 '사람 대 사람'으로써의 정이 있는 그림과, 그저 '개체'로만 대했을 떄의 그림은 정말 다르다. 친구에게 받은 피드백도 같았다. 이게 칭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사진을 찍으면 내가 긴장하고 뻣뻣하게 얼어붙은게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잘 안좋아해. 그런데 언니가 그려주는 건 너무 편안했어. 그림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나를 그렇게 적나라하게 봐주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게 더 편하게 있었던 것 같아. 정확하지 않으니까. 긴장할 필요가 없더라구. 사람처럼 대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좋았어. 덕분에 편하게 있었어."


사람이 좋아지는 중이다. 인물을 대상으로만 물건처럼 그렸지만,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담아내면서 내게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다. 혹은 이야기하는 이 얼굴만을 그려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듣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림은 철저하게 외면만을 보고 그리지만, 이야기를 통해 내면도 담을 수 있으니까. 왜 화가들이 모델을 사랑한지 알겠다. 더 깊이 알게 되고, 그걸 더 표현함으로써 더 감정이 깊어질 테니까. 나는 이렇게 그림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들이 너무 즐겁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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