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문화전반]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국뽕'
글 입력 2019.05.0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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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국뽕'


Opinion 민현



처음에 엄청난 만족감을 준 것들, 달달한 과자나 듣자마자 꽂힌 노래같은 것들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조금 질린다. 가끔은 그 반복에 피로감도 몰려온다. 요즈음 느껴지는 피로감은 흔히 ‘국뽕’으로 불리우는 민족주의에 대한 반복으로부터 온다. 물론 그 피로감 전에는 나도 손흥민이 출전하는 경기를 보면 가슴이 뛰고, BTS의 소식을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속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그런 상상, 아마 우리 모두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소위 ‘우리 민족의’, ‘우리 나라의’, ‘우리 전통의’ 등의 수식어가 붙는 한 개인의 혹은 한 기업의 성공은 우리나라의 성공으로 치환되곤 한다. 가슴속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현대 민족주의 열사들의 최전선은 인터넷 댓글창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필두로 국경을 초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겐 찬사와 함께 인터넷의 훈장이 주어진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또다른 열사들을 찾아 나선다.



ㅁㅁ.jpg▲ 출처 : 한국일보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국뽕'에 열광할까?? 아마 어릴 때부터 받은 역사 교육과 문화의 영향이 아닐까싶다. 역사 교과서에는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글이 400페이지 가량 쓰여 있고, 심지어 내가 태어난 세상엔 2002년 월드컵까지 있었다! 나는 자라나는 25년 동안 ‘국뽕’ 교육을 받아오며 자라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 글을 쓰고 있는 머리는 그렇지 않은데 나도 가슴엔 아직 그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민족주의는 예전에는 주로 스포츠와 한국의 찬란한 경제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 '4강 신화' 등의 이름 아래 우리나라의 자부심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21세기의 민족주의는 대중문화와 손을 맞잡았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우리 문화는 최근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들을 필두로 서양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빌보드 차트에 아시아인의 이름이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BTS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BTS를 주제로 대화하는 모습이 보였고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우리 부모님도 BTS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bts.jpg▲ BTS
 


문제는 이 문화는 안으로는 우리들을 감싸고 태극기를 펼치는 역할을 하지만, 밖으로는 날카로운 칼날을 세운다는 점이다. 자랑스러운 민족주의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외국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우리 민족’이어야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면 용납할 수 없다.


애초에 '국뽕'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가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이니만큼 '국뽕주의자'들은 그 정의에 부합하는 행동과 생각을 보여준다. 아래의 사진은 토트넘 핫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동료인 시소코 선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다. 아이들 사진을 올린 게시물에 달린 저런 댓글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려지게 한다.



인스타댓글.jpg



게다가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깊은 해이며 3월 1일엔 전국 각지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에 대한 연민과 이로부터 비롯된 독립운동가에 대한 박수갈채는 너무도 쉽게 타국과 타국민에 대한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게는 특히 더) 칼날이 된다. 중국 혹은 일본 관련 뉴스 기사를 클릭해보면, 댓글 창엔 항상 그와 관련없는 혐오 댓글들이 적혀있다. 기사 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는 한글로 적힌 날 선 칼날들이 너무도 자주 보인다.



댓글.jpg▲ 일본 지진 기사에 대한 댓글반응
 


‘국뽕’은 분명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또다시 그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늘 우리에게 역사를 기억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데 분명 큰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그리고 생각하게 하는 역사와 자부심이 과연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이 문화는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그 일그러진 영웅을 똑바로 세우고 우리가 쌓아온 그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때라고 믿는다. 우리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더하여 과거의 일을 이유로 현재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는 일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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