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장인은 어떻게 문화를 향유하는가 [문화 전반]

직장인이 문화생활을 어떻게 하냐고?
글 입력 2019.05.0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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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어떻게 문화를 향유하는가


민음사 북클럽에 가입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북클럽 선물로 선택한 다섯 권의 책 중 내가 읽은 건 두 권쯤이던가. 그리고 다시 다섯 권의 책을 선택했다. 이로써 내가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은 십 수권.. 아니 그 이상에 달한다.

내일(5월 1일)은 서울국제도서전 사전등록이 오픈하는 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책장이 버거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김영하 작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사놓은 것 중에 읽는 거라고.

전자책은 편하다. 결제 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다운받아 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출퇴근길에 잠깐 짬을 내어서라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 기력이 없다. 사람들 꽉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 한 몸 의지할 손잡이와 함께 버티는 것만으로도 지칠 때가 있다. 출퇴근 길에 짬을 내라니 잔인한 소리다.

자기 관리의 시작은 남는 시간의 무얼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 뭘 해야 하는 거라던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가겠다. 그렇게 대여해둔 전자책을 다 읽지 못하고 대여 기간이 만료되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는데 하나하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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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은 많지 않다. 전시는 대부분 오후 8시면 종료한다. 공연은 대체로 시작 시간이 8시라 여유가 있지만, 그 대신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잘 시간이 된다. 공연장과 직장과 집의 거리 삼박자가 잘 맞아줘야 부담이 덜하다.

공연 한 번 보면 지쳐서 돌아오니 자연스레 남는 선택지는 영화, 책, 드라마, 예능, 웹 소설, 웹툰 등이다. 영화관은 접근성이 좋고 늘 새로운 것이 공급되며,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볼 수 있다. 책과 방송, 웹 컨텐츠는 집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그렇게 문화생활의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직장인에겐 주말이라는 이틀의 시간이 있다. 그중 일요일은 출근할 기력을 비축하기 위해 아껴서 써야 한다. 그럼 주말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금요일 퇴근 후부터 토요일 잠들기 전까지. 지친 날에는 예능을 보다 잠들고, 토요일 오전, 문화생활을 위해 외출한다.

그마저도 약속이 있으면 미뤄지고, 피곤해서 미루게 된다. 결혼식이 많은 봄에는 한 달에 한 번 제대로 된 문화생활 하기도 빠듯할 때가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책 한 권 읽는데 소비할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미뤄뒀다. 문화생활에 필요한 감정의 여유가 없어 여기저기서 끌어모으고 있다. 그래도 5월 초는 휴일이 많아 과감하게(?) 질렀다. 5월의 시작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바딤&알레나 듀오 콘서트와 함께하고, 주말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으로 채웠다. 휴일이  없었으면 꿈도 못꿨을 일정이다.

나는 내가 스낵 컬처의 소비층에 합류하게 될지 몰랐다. 가벼운 것을 좋아하는 요즘 세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스낵 컬처는 짧은 순간이라도 문화를 즐기려는 노력이었다. 출퇴근길 핸드폰만 보는 젊은 층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핸드폰을 통해 문화생활에 접근할 수 있다.

단순 오락에서 취미생활까지 핸드폰을 켜면 많은 것들이 바로 튀어나온다. 우리는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즐기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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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하는데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 공연을 좋아하는데 공연장에 가지 않는 사람, 책을 좋아하는데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이들 중 바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얼마일까. 바쁘지 않더라면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영화가 영화관에서 내리기 전에 보는 것, 독립/예술영화를 찾아보는 것, 전시회에 가서 한 작품 한 작품 마음껏 감상하는 것, 음악회에 가서 연주자를 향해 박수치는 것, 뮤지컬 커튼콜에서 여운을 느끼는 것,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고 읽는 것.

나는 오늘도 지쳐서 돌아왔다. 휴일을 앞두고 모처럼 퇴근 후 약속도 잡았다. 집에 돌아오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고 싶은 상태가 되었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달이 넘어간다. 하나씩 미루게 된다. 여러 개가 밀린다. 엄두가 나지 않아 제일 쉬운 걸 집어 든다. 그렇게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Q. 직장인은 어떻게 문화를 향유하는가.
A. 일단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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