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안 궁금한 나의 군대 Diary 02 [사람]

사소한 것에 웃고 감사하던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4.2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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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음 주에 얘들이랑

같이 맞춰서 나갈 건데 시간 되지?”

 

대뜸 내무실 후임 녀석이 전화를 걸어와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후임 녀석들은 볼 것도 없는 내 대학교로 찾아왔고, 난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었음에도 공부, 심지어 수업까지 뒷전으로 한 채 후임들과 놀러 나갔다. 볼 것은 없지만 나름 아기자기한 학교 구석구석을 소개해주고 술을 마시면서 그동안의 밀린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또 언제 볼지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을 정하며 인사를 나눴다.

 

주변의 대학 동기들은 시험기간에 수업까지 도망간 나의 정성을 보며 ‘차라리 말뚝을 박지 그랬냐.’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난색을 보였다. 물론 나도 군대 자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온갖 불합리가 권력에 의해 합리화되던 곳이었고 비참함과 억울함의 연속이었다. 어이없이 휴가를 제한받고 계급의 힘으로 인격을 모독하는 상황도 많이 접했다. 하지만 그것을 버티게끔 도와주고 도리어 좋은 경험으로 바꿔 준 고마운 인연들을 만났고, 그것들이 현재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군대의 이미지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부정적인 인식만 심고 오는 것에 비하면 나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그 인연의 시작은 바로 나의 자대, 한 공군기지이다. 부대규모는 단급이지만 실제로는 여타 기지전대보다 큰 전대급인 부대. 이상하게 인기는 높은 부대여서 밤에 몰래 전자시계 불빛으로 공부하며 합격했던 부대. 미 공군과도 부대를 공유했기에 스테이크는 먹을 줄 알았지만, 국물도 없던 곳. 미군과 같이 근무하며 지지고 볶고 싸우기까지 했던 부대. 그런 부대가 내 자대였다. 지난 EP01에는 공군 훈련소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엔 나의 군 생활의 반 이상이었던 자대 이야기(초반부)를 살포시 풀어보려고 한다. 이번에도 조심스레 시작해보련다.


 

<무도 궁금한 나의 Diary> 02.

 

 

01 그리핀도르냐, 슬리데린이냐


 


누군가는 찾아오고 누군가는 떠나간다.

분명 나는 제자리에 이렇게 있는데

그런 과정들이 수차례 반복된다.


 

2015년에 운전면허 학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봤던 시의 한 구절이다. 제목과 작가 미상으로 소변기 앞에 붙어있던 이 시는 묘하게 내 군대 시절의 모습을 닮아있다. 내 군 생활은 멈춰진 시계처럼 정적인데, 꾸준히 선임들은 전역하고 후임들이 들어왔다. 100명 가까이 생활하던 생활관에서 나는 수많은 인연을 떠나보냈고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다.

 

나의 부대는 동기생활관이 아닌 선 후임들이 함께 지내던 생활관이었다. 6명이 함께 살았으며 막내와 최선임은 거의 20개월 정도의 군 경력의 차이가 났다. 이런 구조의 생활관에서 한 명이 제대를 하면 새로운 막내를 수혈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참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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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에 신병들이 들어오면, 각자 전역을 앞둔 사람이 있는 생활관은 막내를 뽑을 준비를 하고 서로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 모습은 과거 SBS에서 방영하던 프로그램 ‘짝’을 방불케 했다. 각자 생활관은 원하는 막내를 데려가기 위해 본인 생활관을 최선을 다해 소개한다. ‘우리 생활관엔 꼰대가 없다!’부터 시작해 ‘우리 생활관의 에어컨은 신식이다.’, ‘우린 덤벨이 있다.’까지 정말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자랑거리를 쏟아낸다. 나아가 상대 생활관을 장난스럽게 비방하고 심지어 평소에 행실이 좋지 않던 사람도 이 시기엔 그 어떤 성인군자보다 좋은 사람이 된다. 그렇게 이 기간은 참 요란스럽게 지나간다.

 

생활관 결정 일까지는 약 열흘 정도의 탐색 기간이 주어지고 이 기간에는 서로에게 직접적인 의사 전달을 금하는 불문율이 있지만, 그 선을 지키면서 모두 편법을 쓰곤 했다. 막내들 처지에서는 본인의 성향이 맞겠다 싶은 생활관 선임들이 지나갈 때 살짝 어필을 한다거나, 세상에서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면서 그 분위기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선임들은 더 적극적이다. 몰래 후임을 찾아가 과자 하나를 쥐여준다거나, ‘난 네가 맘에 들어’라고 수줍은 고백을 하고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은 모두 똑같은 법. 막내들도 가고 싶은 생활관은 겹치기 마련이고 생활관 사이에도 뽑고 싶은 막내가 중복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서로 보이지 않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데, 서서히 수위가 강해지는 양상을 띠면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할 사람들을 정하는 것이니, 서로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우리 생활관은 여태껏 90% 정도로 원하는 막내 데려오기 성공률을 보였는데, 그 팁은 바로 ‘가족 시트콤’이었다. 첫 소개 때 굉장히 가족 같은 모습으로 티격태격 되는 모습을 노출한다. 물론 그것의 기반은 정말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이지만, 그 티격태격하는 가족 시트콤의 첫인상 효과는 나름대로 막내들에게 잘 먹혔다. 그리고 우리는 손쉽게 막내들의 호감을 샀고 쌍방 합의로 좋은 인연을 받아들였다.


 

PS. 막내를 너무 잘 뽑은 나머지, 대다수가 더 좋은 보직에서 데려가 벼렸다는 후문.

 

 

 

2.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재작년 이맘때 즈음이다. 아이유의 팔레트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유애나였던 나는 새로운 정규앨범에 매우 흥분한 상태였고 수록곡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지금은 파리만 날리고 있는 사이버지식정보 방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해했다.

 

동시에 그 무렵은 내가 부대에 오고 두 달이 넘어가는 신병 시절이다. 군대 간부들보다 옆에 있던 병장이 더 무서웠고 일 한번 잘못하면 A가 B가 되어 소문이 부풀던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까닭 모를 무거운 분위기가 팽배했고 몇몇 무서운 사람들이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하루는 사지방에서 팔레트를 열심히 듣고 내려와 저 자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팔레트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아차, 싶은 마음에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맨 끝의 변기에 정체모를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나는 발소리를 줄이며 냉큼 줄행랑을 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침대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별 소문이 없자, 그 상황에 대한 까마득히 잊고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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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하루, 한 명의 선임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우후죽순 선임, 동기들이 내 앞에서 ‘팔레트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불행하게도 변기 칸에 앉아 있던 사람은 부대에서 가장 무섭고 질이 안 좋았던 병장이었고 그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를 주의 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소문의 뼈대가 완벽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소문에 의하면 나는 부대가 떠나가라 노래를 불렀던 정신이상자였고 화장실에서 샤워실로 장소마저 바뀌어 샤워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간이 두둑한 신병이 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은 내가 걱정된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지만, 그 포문이 너무 여러 개였기에 난 고마움보다는 오히려 공포감을 느꼈다. 이렇게 소문은 무섭구나, 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새삼 깨닫게 된 일화다.

 


(중략)


휴가를 잘 다녀왔지만,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다. 물론 그런 것들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진짜 나를 잃을 수도 있기에 너무 빠지진 말아야 하지만, 군대라는 곳에서 지키고 조심해야 하는 것은 주의를 가져야 한다. 아무튼,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2017/5/31 수요일 박하 색 일기장


 

 

<Diary (완)>에서 마무리됩니다.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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