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룬다는 것은 포기의 또 다른 의미 [기타]

나의 미룸병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4.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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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라는 무서운 말



어느순간부터 "나중에"라는 말은 그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일을 미루는 습관이 달갑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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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 벚꽃이 만개하던 때, 나는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마침 평일 시간이 비어서 갈 수 있었지만, 꽤 되는 기차표 값과 이틀을 홀라당 날려버리는 기회비용 때문에 금세 포기하고 말았다.


예상했다시피, 지금껏 나는 여행을 지나치게 미뤄왔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해외여행을 간 적이 한번도 없  을 정도였다. 항상 핑계는 넘쳐났다. 돈이 없다, 아르바이트를 해야한다, 같이 갈 사람이 없다 등등...솔직히 말하건대, 이젠 내 미래가 추측이 가능한 것 같다. 이것저것 댈 핑계 다 대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될 내 미래가 말이다 (물론 난 점쟁이는 아니다. 그냥 쌓아온 경험치를 토대로 하는 것뿐...).


또 이번 년도 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2년 뒤에 워킹홀리데이를 갈 거라는 나름의 거창한(?) 계획을 아는 사람에게 들려줬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에게 아주 인상 깊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2년 뒤 너는 또 다른 일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할 것 같아.

왠지 그럴 것 같아.

그러니깐 지금 해.



이 말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아마 이때쯤이었을까, 나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하는 "나중에"라는 말이 곧 포기와 비슷한 의미라는 것을.




우리는 왜 '지금'이 아닌 '나중'을 택할까



"지금 대답해"라고 말하는 이에게 "나중에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이 혼란스러운 상태로 상대방을 대하기 싫어서 거나, 또 단순히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다든지의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왜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감정으로 사람을 대할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간혹가다가 그런 사람은 종종 있다) 누군가를 솔직하게 대하는 것은 곧 상처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렇다면 우리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 것이다.


아마 거짓으로 똘똘 뭉친 사회, 직장생활이나 위계가 존재하는 곳뿐 아니라 평범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종종 미루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슬금슬금 기회를 엿보면서, 수십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상황을 계산한다. 과연 그대로 이루어질까? 가끔을 운 좋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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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당황하면 순간적으로 정지 상태가 된다. 아마도 몸이 굳어버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입이 떼이지 않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된 후에, 시퍼렇게 멍이 든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그날의 1/3을 공상으로 마무리한다. 이상은의 언젠가는- 이라는 노래도 같이 흥얼흥얼 대면서 말이다.


사실 이것은 성격차이 문제이기도 하다. 불같이 화를 내는 다혈질 인간에게 '나중'은 최선의 방안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쩔쩔매는 왕소심 인간에게 '나중'은 근본적인 문제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악의가 있든 없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미룬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일들은?



어느 순간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두려움도 많아졌다. 또 앞으로 향후 5년 10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정말 겪고 싶지 않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겠지. 적어도 지금까진 그래왔다. 20년을 조금 넘긴 부스러기 인생이지만, 철저하게 배워왔다. 생각하는 즉시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리는 이상적인 삶들을. 나에게는 기대하고 꿈꿀 자격조차 없을까? 하며 저주라도 받은 사람처럼 궁시렁대면서...


나처럼 바라봐야 할 목표들은 다 너무 거대하기만 한데, 계속 바라고 꿈꿔야 된다는 것이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그러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성공을 조언하는 이들은 큰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이해가 되면서 동시에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어차피 안 이루어지잖아. 뜻대로 되는 거 봤어?' 라고 되받아 치면 되는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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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나는 모든 걸 팽개쳐놓고 여행을 갈 배짱은 없다. 누군가의 폭언을 들었을 때도 즉각적으로 화를 내고 해결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몸부터 그렇게 반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당장 눈앞에 현실을 생각하면, 소심이 본능을 제어할 수 없어 허우적대기만 하겠지. "어떻게 그러지..." 하면서. 그래서 몇몇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내 성격에 매우 답답함을 표하기도 한다.


아무튼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질질 끌어봤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 장기적은 목표는 단순 이상이 돼버릴 수 있다.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클 테니깐. 누구나 한번 쯤은 실패를 겪지 않았는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현자 타임도 꽤나 크게 온다는 것을. 우리 모두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회피를 즐기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큰 제약이 있지 않은 이상은 한 번쯤은 그 순간의 나를 믿어보는 건 어떨까? 오늘도 이렇게 자기 최면 걸면서 글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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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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