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벤져스: 엔드게임 에세이 (스포 無) [영화]

My youth is yours
글 입력 2019.04.25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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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결말 및 줄거리에 관한 내용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읽는 이에 따라 아주 미미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엔드게임 이전 마블 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어에는 'Priceless'라는 단어가 있다. 가격을 뜻하는 'Price'와 없음을 뜻하는 접미사 'Less'의 파생어인데 역설적이게도 이 단어의 뜻은 가격없음, 즉 가치없음이 아니라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엔드게임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한다면, 나는 과감히 'Scoreless'라고 답하고 싶다. 이 영화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점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


평소 리뷰를 쓰면서 '나'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상황에도 필자라는 이름 뒤에 숨어 글쓴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글을 썼다. 그러나 이번 엔드게임 리뷰만은 '나'를 제외하고 쓸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지난 MCU의 10년이기도 하지만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이어지는 내 유년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은 리뷰보다는 에세이라 부르고 싶다.


피 대신 서버가 터지는 예매 전쟁에서 용케 살아남아 개봉 당일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온 탓인지 개봉 당일이 되도록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인피니티 워 이후 개봉한 앤트맨 앤 와스프나 캡틴 마블에 대한 실망감이 컸던 것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고 그 유명한 MARVEL 로고가 뜨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마블이, MCU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크고 중요한 존재였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영화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나는 거의 쉬지 않고 울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MCU 인트로 모음




#스포일러 논란



엔드게임을 보자마자 엔드게임 속 인물들을 분석한, 말하자면 강(强)스포 리뷰를 쓰려고 계획했었다(당연히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경고도 함께). 그나마 내가 전문성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분야기도 했고, 사람들의 관심도를 보아하니 보나 마나 조회수도 폭발적일 거라고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엔드게임이 개봉하기 일주일도 더 전에 결말까지 담긴 푸티지가 유출되었고 몇몇 철없는 인간들의 퍼 나름 덕분에 전 세계는 스포일러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덕분에 나도 근 3일간 인터넷을 끊고 온라인 연결이 되지 않는 게임 따위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결국 강스포 리뷰를 쓰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비록 경고문을 대문짝만하게 적어놓더라도 개봉 다음 날 스포일러가 담긴 리뷰를 쓰는 것이 MCU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결례가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SNS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 스포일러를 일삼는 인간들에게 외치고 싶다. 당신은 단순히 한 영화의 줄거리를 스포일러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추억을, 애착을, 시간을, 청춘을 스포일러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스포일러를 봐버렸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스포일러와의 전쟁은 마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늘 있는 일이고, 사실 마블 영화의 진정한 백미는 줄거리보다는 영화 속 인물들에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가더라도,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영화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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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1 포스터



#10주년



캡틴 마블이 개봉하고 나서 사람들은 어벤져스 원년 멤버 대신 그녀가 날린 한 방에 타노스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것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 이야기는 철저히 어벤져스 원년 멤버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데만 집중한다.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엔드게임은 MCU 개국 공신들에게 최선의 예를 다한다.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한 영화에 풀어내다 보니 당연히 러닝타임도 길어지고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도 많다. 그래서 이번 영화만큼은 특히 더 전작들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 어벤져스 시리즈와 시빌 워만 열심히 보아도 줄거리를 따라가는데 큰 부담이 없었던 인피니티 워와는 달리 엔드게임은 한국에서 100만도 동원하지 못했던 토르 1이나 퍼스트 어벤져까지 알아야 100%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개봉 당일 황금 시간대 표를 구하고도 아예 대놓고 폰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많았다. 여태 MCU에 별로 관심이 없고 전작을 거의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피니티 워의 줄거리라도 보고 가길 권한다. MCU 10주년 피날레는 뉴비(Newbie)에게는 어렵고 올드비(Oldbie)에게는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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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게임 속 32명의 인물들



#번역



인피니티 워 개봉 당시 'End game'을 '가망이 없어...'로 번역한 번역가를 향한 질타가 끊이지 않았다. 논란 이후 한 커뮤니티에서 어벤져스 4편의 부제가 엔드게임이 아니냐는 말이 농담처럼 나왔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그 후로도 헐크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가 인터뷰에서 어벤져스 4편의 제목은 엔드게임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설마설마하긴 했지만 워낙 스포일러에 민감한 디즈니인 만큼 고도의 노이즈 마케팅일 거라고 넘겼다. 그런데 아뿔싸. 진짜 어벤져스 4편의 부제가 엔드게임으로 정해지고 만 것이다. 번역가를 향한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10년을 기다린 영화가 오역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다행히 디즈니 측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번에는 디즈니 본사와 디즈니 코리아의 합작으로 번역이 진행됐다. 그대로 논란의 번역가를 고용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아직 오역 논란은 없다. 적어도 극의 진행을 크게 해칠 만큼 문제 될 만한 번역은 없었다는 뜻이다. 몇몇 말장난들은 더 좋은 선택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지만 오역에 지치고 지친 관객들에게 이 정도면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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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 논란의 정점을 찍었던 장면
출처: tcafe



#첫사랑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팬보다는 일반 대중들에게 초점을 맞춘 디즈니 코리아의 마케팅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미 전 국민이 팬이 되었는데 대중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무슨 의미냐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했다. 8년 전 아이언맨을 좋아하기 시작할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윈터솔져를 같이 본 친구는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며 하품을 했고 디씨 히어로와 엑스맨, MCU를 혼동하는 사람도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회를 말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아무도 MCU에 관심이 없었고 영화를 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뿐이었다.


2012년 어벤져스 때부터 MCU는 인기가 많았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벤져스, 윈터솔져 모두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경우에는 마블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마블 흥행의 상당수는 소수 하드코어 팬들의 N차 관람이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나만 봐도 페이즈 2의 영화들을 모두 3회 차 이상 관람했을 정도니, 상대적으로 N차 관람이 적은 한국 천만 영화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단적인 예로, 2014년 개봉한 윈터솔져는 수작 중의 수작으로 손꼽히지만, 4주간 국내 박스오피스 자리를 지켰음에도 누적 관람객 400만을 넘기지 못했고 N차 관람객을 고려하면 실 관람객은 35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엔드 게임 개봉 전날 두근거려서 잠이 안 온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의 심정은, 뭐랄까 이제는 슈퍼스타가 되어버린 나의 첫사랑을 보는 기분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내 청춘의 8년을 바쳐 열렬히 사랑한 MCU의 한 단락은 여기서 끝이 나지만, 아쉬운 마음보단 고마운 마음이 더 클 뿐이다. MCU 속 히어로들처럼 이별을 마주하는 나의 자세도 성숙해졌다고 하면 너무 우스운 얘길까. 마냥 노는 게 좋았던 중학생 꼬꼬마에서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MCU라는 거대한 환상 속에서 꿈을 꾼다.



'My youth, my youth is yours'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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