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 지극히 일상적인 사랑의 민낯 [도서]

마이너에 대한 고찰 08
글 입력 2019.04.2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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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충동적으로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샀다.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은 올해로 10회를 맞이했지만, 내가 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에 국문학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이름처럼 요즘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단편 작품들을 담은 이 책은 나와 함께 흘러가는 현재를 담고 있어서 좋았고, 한편으로는 현재를 사는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들에 허를 찔린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나를 일깨워줄까. 4월의 중반이 지나고 3월보다는 권태를 느끼는 지금, 새로운 자극을 위해 이 책을 펼쳤다.

책에 실린 7개의 단편 중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가장 독특한 제목을 갖고 있다. 바로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다. 제목만 봐서는 최소한의 장르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이 작품은 예상외로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사실 사랑은 늘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가끔 어쩌면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이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때때로 그 이면에는 나를 위한 이기심이 그득히 숨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사실 마냥 핑크빛으로 설명되는 무언가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이러한 사랑의 민낯을 보여준다. 작가의 솔직한 어투와 자조적인 유머는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감정을 내보이게 하고, 또 그래서 더욱 일상적인 사랑을 대면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서 내적 웃음은 많이 짓지만 이렇게까지 피식하고 웃어본 게 얼마만인가 싶기도 했다. 재치 있고 솔직하며 제목만큼 날 것 같은 소설. 그것이 오늘 이야기할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다.



영의 인생에는 엄마와 형, 두 개의 줄기가 있었다.


주인공 영의 인생에는 두 개의 실패한 사랑이 있다. 하나는 ‘엄마’,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형’이다. 단순하게는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연애로써의 사랑이라 둘은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실은 너무 비슷하기도 하다. 주인공 영은 퀴어이다. 그리고 그런 그와 관계하는 엄마와 형은 지극히도 전형적이고 편견어린 반응을 보인다.


01. 자신만의 사랑으로 영을 억눌러왔던 엄마

40년차 기독교인인 엄마는 영이 고등학생 때 두 살 연상의 이과생과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는 다음날 바로 정신병원에 데려갔고, 성경 구절을 읊었다. 영과 사랑하는 관계인 형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감춰야만 하는 거라고 여겼고, 길거리에서 티 나게 행동하는 영에게 날을 세웠으며, 동성애를 둘러싼 편견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국 영을 떠난다. 무엇이 그들이 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 해답이 역설적이게도 사랑에 있다고 생각한다.


“신발만 대충 꿰어 신고 나와서 유치원에서부터 허겁지겁 너를 찾는데 멀리 네 뒷모습이 보였어. 나는 가만히 네 뒤를 따라갔다. 네가 두 발쯤 걷다 자꾸만 멈춰 서기에 뭐하나 봤더니,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 앞에 서서 일일이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때로는 만져도 보고 그러고 있더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덜컥 무섭더구나. 네가 더 이상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네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네가 걷고 싶은 길을 너의 속도로 걷는 게. 너 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게 그렇게 섭섭하고 무서웠다.”



우선 영의 엄마는 분명 영을 사랑했다. 그런 그녀가 영이 퀴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그녀에게 그 사실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한평생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는 못하고 추구하기만 했다. 바람난 남편을 떠나 아들과 둘만 살았으며, 이성애의 정점에 맞닿아 있는 ‘결혼 사업’을 생업으로 삼아 다른 이들의 가정을 형성해주었으니.

늘 성실하게 살았던 엄마였고, 늘 아들을 위했던 엄마였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로 가지 않았을 때 그것을 바로잡아 줘야 한다는, 혹은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자신만의 사랑을 주입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사랑은 꽤나 이기적이며 인간적이다. 누군가를 위하는 행위는 내 손을 떠난 뒤, 그 누군가의 평가에 의해 선과 악이 가려진다. 분명한 건 이 이야기에서 엄마의 사랑은 영에게 선보다는 악이었다는 것이다.


02. 엄마로부터 도피로 택했던 형

두 번째, 영은 엄마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철학 아카데미로 향하고 그곳에서 한 형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둘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은 형으로 인해 끝없는 감정의 요동을 느끼고 형을 받아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은 영을 사랑했나? 마지막 순간, “사랑, 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죠?”라고 뻔뻔하게 물어본 형은 영을 진짜로 사랑했나? 이에 대한 대답과 영에 대한 입장은 형의 인물성으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소설 내내 형을 보며 느꼈던 것은 ‘옛날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예전에 학생회장을 했던 것, 미제를 극도로 싫어하는 것, 운동을 했던 것, 연애를 하는 내내 형은 영에게 이에 대한 이야기만을 계속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신념과 영이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그것을 ‘바로잡아주려고’ 한참을 설명한다. 이렇게까지 과거에 얽매여있는 그에게, 그리고 남을 신경 쓰는 그에게, 영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결심하기까지 강력한 사랑의 동력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형이 분명히 영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자신이 얽매인 과거보다는 강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준(과거 운동을 했던 자신의 신념)으로 사랑하는 영을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려는 것은 이전에 드러났던 엄마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이 둘의 사랑을 보라. 사랑은 극히 이기적이고, 때로는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을 상처 입힌다. 결국 영은 상처를 받았다.



폭풍 같은 사랑이 지난 뒤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지 않았다. 그동안 울 시간은 충분했다. 종이(형과의 이야기가 담긴)가 모두 없어질 때까지 물 내리기를 반복한 나는 숨을 고른 뒤 빈 가방을 다시 둘러멨다.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인생이 예상처럼, 차트의 숫자처럼 차곡차곡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두 개의 사랑을 실패한 뒤, 영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그는 울지 않았고 다시 숨을 고른다. 사과 받고 싶었던,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들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소용돌이 안에 있는 것처럼 섬세하고 예민했던 영의 감정은 마지막 순간 상당히 관조적이고 차분하게 변한다. 이기적인 사랑의 끝에서 영은 변화한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고 원치 않는 사랑의 방식을 취해왔던 그들에게 기대지 않는다. 동시에 여전히 그들을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좀 더 냉정해진 태도로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해답과 균형을 찾을 것 같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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