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슬픈 이름의 그녀, 연극 “함익”

잠식하는 내면을 그리다
글 입력 2019.04.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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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연극 <함익>
작 김은성
연출 김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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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와 본능의 손을 잡고 영원처럼 걸어간다. 이야기의 끝에서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함익은 철저히 자신의 세계 안에서 사는 인물이다. 친아버지와 계모의 음모로 친어머니가 죽었다고 믿는 그녀는 그저 멸시 어린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거짓으로 얼룩진 현실로부터 자신을 배제한 그녀는 본인의 분신, ‘익’과의 시간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마치 1인칭 시점 글을 읽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는 극은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장면이 그녀의 서사로 풀어지고, 본능이라 불리는 또 다른 자신과의 대화는 그녀를 발가벗기며 유약한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이 함익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앞서 언급한 ‘익’과의 장면이다. ‘익’의 캐릭터에 지나친 거부감이 들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매력적이리만큼 솔직하고 설득력 있게 함익의 내면을 드러냈다. 마치, 자신을 잠식시키는 위험은 그 존재만큼의 티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녀가 직전 장면에서 차마 표현하지 못한 본심을 ‘익’과의 롤 플레잉에서 숨김없이 드러내는 부분도 시각적인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녀가 가면을 쓰고 사는 현실과 그렇지 못한 혼잡한 내면을 훌륭히 분리-대조-강조하는 직관적인 장치로서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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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강렬했다. 이전까진 찾기 힘들었던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밝은 조명 안에서, 서서히 붕괴되는 주변 인물 사이로 한발씩 나아가는 함익의 뒷모습은 환상적인 느낌까지 풍긴다. 그녀가 잠시 흔들렸던 ‘연우’ 역시 결국 견고한 틀을 부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이 극이 온전히 그녀 안에서 벌어진 일임을 되짚듯 마지막까지 자신의 세계를 믿고 걸어가는 그녀다.

스스로 숭상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며 함익은 과연 만족했을까? 그녀에게 만족은 없다. 햄릿이 그랬듯이. 그저 직접 자신을 배제한 현실 속에서 한없이 갈망에 뒤틀릴 뿐이다. 겉보기엔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자신의 벽을 전혀 허물지 못했다는 것에서 이미 완성하지 못할 그림을 계속해 덧칠하는 것과 같다. 누구의 이름도 아닌 ‘함익’으로 천천히 잠식되는 것이다.

*

덧붙여, 해당 연극은 장면 전환이 굉장히 많았는데, 마치 조각처럼 소개되는 여러 부분의 합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암전과 밝아짐을 지나치게 반복하는 것은 관객입장에서 극의 흐름을 끊고 집중력을 흐뜨러뜨린다는 위험부담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함익>은 쉴새 없이 반복되는 장면전환이 충분히 의식 되면서도 그 진행이 상당히 매끄러우며, 집중력을 분산시키기보다 긴장을 조금씩 더하며 이야기를 다양히 바라보는 데 속도감을 부여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 안에서 풀어가는 이야기인 데에서 유기적인 끈을 놓지 않으며, 능숙하게 장치를 이용해 극을 한데 집결시키는 기술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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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의 일상은 화려하다. 상류층 인사들과의 사교모임, 남자친구 필형과의 근사한 데이트 등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복수와 일탈을 꿈꾸면서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생기 없는 꽃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


함익
-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


일자 : 2019.04.12 ~ 04.28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오후 7시
일 오후 3시
(월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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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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