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벨빌의 세쌍둥이 [영화]

낭만적인 도시에서 펼쳐지는 과장의 미학
글 입력 2019.04.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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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는 단연코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의 경우 할리우드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할리우드식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고 있고, 일본의 경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재패니메이션(japan+Animation) 덕후들이 존재할 만큼 명성이 높다(애초에 덕후라는 단어도 일본 애니의 열성 팬들을 지칭하는 '오타쿠'에서 파생된 단어임을 생각하면, 그 인기가 어마어마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현 애니메이션 시장은 예부터 탄탄한 입지를 쌓아 올린 미국과 일본에 의해 양분화되어 있다. 영화에 들어가는 노동력도 만만찮지만, 애니메이션은 각 화면을 일일이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보다도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초당 프레임의 수를 12장으로 설정해도 120장의 그림을 그려야 겨우 10초 분량인 것을 감안하면, 1초당 24 프레임을 사용하는 미국 애니메이션에 들어가는 노동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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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픽사의 애니메이션



그러나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일본도, 미국도 아닌 영화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찰스 에밀 레이노(Charles-Emile Reynaud)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를 발명해 1877년에 특허를 받고 뤼미에르 형제보다 3년 앞선 1892년 10월 28일, 파리에서 최초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 프락시노스코프는 회전 원통의 안쪽에 그려진 그림을 돌려 원통의 중간에 장치한 거울을 거쳐 반사하면 그림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이용한 영사기다(부천시 공식 블로그, 판타시티).



프락시노스코프와 그 전신인

조이트로프(Zoetrope)를 설명하는 영상



비록 일본이나 미국보다 인지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그림체와 분위기로 애니메이션의 발상지라는 유구한 역사를 품에 안고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 디즈니와 지브리가 휘몰아치는 세계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감독, 실뱅 쇼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루셔니스트>,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으로 더 유명한 실뱅 쇼메 감독이 만든 <벨빌의 세쌍둥이>는 1997년 감독의 데뷔작 <노부인과 비둘기>가 호평을 받던 시절 구상했지만, 개봉까지 5년이 걸렸고, 우리나라에는 2016년이 돼서야 정식으로 개봉했다. <벨빌의 세쌍둥이>는 세계적인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경기 중 납치된 손자를 찾는 할머니의 코믹한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2004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벨빌의 세쌍둥이>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니모를 찾아서>와 비견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애니메이션이지만 디즈니나 지브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벨빌의 세쌍둥이>는 낯설고 난해하다.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엄청난 자본과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창작자 개인의 아티스트 적인 면모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대신, 작가 스스로가 느끼는 문제점과 개성들에 초점을 맞춘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한 편의 영화보다는 현대미술에 가깝게 느껴진다.


<벨빌의 세쌍둥이>만의 특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각하게 과장되고 왜곡된 신체 비율이다. 주인공 손자의 심각하게 삐쩍 마른 상체와 두꺼운 하체는 그가 얼마나 자전거에 열정적인지 강조하고, 머리끝까지 치솟은 마피아의 어깨는 그들의 권위를 과시한다. 뚱뚱하다 못해 원형에 가까운 벨빌 사람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탐욕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할머니인 수자가 역시 할머니인 벨빌의 세쌍둥이와 함께 손자를 구출하는 과정에도 과장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십 명의 마피아를 피해 페달을 밟아 굴러가는 바퀴 달린 무대를 타고 손자를 구출하는 모습은 허풍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여느 할리우드 액션 영화 못지않게 긴장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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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빌의 세쌍둥이>에 등장하는 마피아



이러한 과장성이 영화의 반미(Anti-American) 테제를 강조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뚱뚱한 자유의 여신상과 햄버거 가게에서 ‘No money, no hamburgers’라고 외치는 주인의 모습은 삭막하고 정 없는 도시의 풍경과 미국 문화로 점령된 프랑스 사회를 낱낱이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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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 대신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를 손에 든 자유의 여신상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벨빌의 세쌍둥이>라는 제목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관통한다. 이들이 앞서 감독이 풍자하고자 했던 사회상과 반대되는 인물, 즉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점령한 대도시에서 살면서도 물질과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다. 식사 재료라고는 오로지 개구리뿐이고 제대로 된 악기도 없어 쓰레기들로 연주하지만 세쌍둥이는 그저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노래를 묵묵히 해나간다. 그들은 과거 유명가수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허송세월하거나 이를 되찾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마치 부처처럼, 생의 모든 집착을 버린 듯한 여유로운 모습은 불교의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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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것들을 활용해 연주하는

세쌍둥이와 마담 수자.



영화는 '할머니들의 연대'라는 모티프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어쩔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막을 내린다. 바로 이 점이 앞서 언급한 현실성은 살짝 달나라로 보내 놓은 마피아와의 추격전이 허세 가득한 아버지의 모험담을 듣는 것처럼 미소 짓게 하는 이유이자, 이 영화가 과장의 미학으로 불려 마땅한 이유다.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빡빡한 도시 생활에 지쳐 과거의 여유와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밤, 이 귀여운 과장의 미학에 흠뻑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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