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잠시 쉬다 가세요 侘び寂び(와비사비)

글 입력 2019.04.1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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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비사비[WABI-SABI]


부족함에서 만족을 느끼는,

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서두르기보다 유유자적 느긋한


왜인지 모르게 삶이 마치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 쳐지고 공허한 느낌이 드는 시기가 있다. 이런 시기는 나 자신이 의도해서 생겨났다기 보다는 그냥 살아가다보니 어쩌다가 맞닥뜨리게 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 이다. 졸업유예를 하고 남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나도 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한달 간 학원도 다니고 시험도 보았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단순하며 단기지향적이었고,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투자한 것에 비해 꽤 만족스러운 결과의 시험이 끝나고 나니 내 인생은 다시 무기력해졌다.


4월 초가 딱 그런 시기였다. 날씨도 오락가락 한 탓에 산책을 한다거나 바람을 느낀다거나 하는 휴식을 취할 생각도 않은채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붙들고 '나에게 주는 휴식'이라는 명목 아래에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매일매일, 와비사비]는 나에게 있어서 건조한 4월의 단비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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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8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처음은 작가의 인사말과 와비사비에 대한 뜻풀이로 시작되는데, 우선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일본 문화인 와비사비를 영국인이 서술해나간다는 점이었다. <매일매일, 와비사비>의 저자 베스 켐프턴(Beth Kempton)은 대학에서 동아시아를 연구하며 동양의 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20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그녀는 영국인으로서 동양의 철학과 아름다움을 이방인의 눈으로 관찰해왔다.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했지만, 꼭 구체화하고, 알리고 싶은 삶의 방식이었던 ‘와비사비’에 그녀는 매료되었고, 와비사비의 생활방식과 철학을 연구했다. 더럼 대학교 동아시아연구학과 재학 시절에는 한국어를 1년 동안 배우기도 했고, 한글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도 했다. 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통역사로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직업을 사랑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이러한 이력은 와비사비를 단순히 미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삶의 영역 깊숙이 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와비사비를 철학으로 접근해 일과 삶, 인간관계 등 전 영역에 적용하는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사실 내가 생각했을 때 그녀는 전형적인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서양인인 것 같다. 유독 오리엔탈 컬쳐에 관심이 많고 자신들과 다른 일본의 고즈넉함에 끌려 푹 빠지게 되는 그런 매니아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영국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는 것 부터 신기했지만, 처음 유학을 왔을 당시 '아리가또'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꾸준히 노력해서 일본어를 마스터했으니 그녀는 아마 일본과 잘 맞는 사람이었을테다.

아무튼 외국에서 온 그녀는 와비사비에 대해 찬찬히 설명해나간다. 와비사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그녀는 와비사비는 마음의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깊은 호흡을 하며 진정한 감사의 깨달음을 느끼는 것. 그것이 와비사비인 셈이다. 와비사비에 관련하여 하나의 단어나 뜻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책을 읽어내려가는 와중에 이미 잘 깨달았지만, 그녀의 재미있는 예시와 이야기들이 점점 더 내가 와비사비에 대한 느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이었던 센리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센리큐는 다실의 물리적 공간을 줄여 다도의 근본적인 정서를 확립하기 위해 조용한 혁명을 시작한 인물로 유명하다. 불필요한 모든 것을 걷어내고, 본질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것. 공간, 자연, 찻주전자와 기본적 도구들, 차를 마시는 시간만 남겨둔 그의 혁명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다도의 본질이 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치스러움과 극명하게 대조되며 단순함을 숭배하고 오로지 차를 마실 떄의 감각적 경험에만 집중하도록 한 센리큐의 다도가 '와비사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와비사비란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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侘び(와비)란 본디 차분한 정취라는 의미이고, 寂び(사비)란 고색창연함, 오래된 모습, 우아한 단순함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두개의 한자가 합쳐져 나온 것이 바로 侘び寂び인 것이다. 불과 100여년 전에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이 와비사비는 '일본인들의 철학의 근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라는 거창한 말로도 포장된다. 따라서 이는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와비사비는 사람들 의식의 가장 깊은 자리에 존재한다고 한다. 이미 사람들의 일부이자 어떤 의미인지 느낌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와비사비의 예를 보며 나의 와비사비는 '한 여름밤 창문을 활짝 열어 제낀 다다미 방에 누워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졌다.


*

와비사비에 대한 흥미로운 점은 비단 감정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다. 와비사비는 살아가는 곳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간'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와비사비의 미덕이자 아까 앞서 설명한 센리큐의 다도도 모두 '단순'이라는 원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단순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책에서는 와비사비를 담은 집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단순을 위해 모든 것을 어떤식으로 버리고 어떻게 공간을 꾸밀지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게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와비사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때마침 인스타그램에서 아는 선배의 새하얗고 거의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은 깔끔한 방 사진을 보고 '와 정말 깨끗하고 미니멀하다.'라며 부러워 하고 있었는데, 다시 책을 읽고난 후에는, 약 5분전의 나를 부끄러워 하며 '정말 나에게 필요한 중요한 것만 남겨둔 정도의 심플함이여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이 주변에 존재하고 공간을 따스히 메꿀 수 있다면 그것이 와비사비이고 미니멀리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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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료안지 사찰의 쓰쿠바이(돌로 된 물그릇)를 처음 본 순간의 이야기이다. 당시 19세였던 그녀는 어느날 우연히 료안지 사찰에 들어가 쓰쿠바이를 만나게 된다. 일본 여행에서 사찰에 갈 때마다 사람들이 늘 사진을 찍어가는 사찰의 상징과도 같은 쓰쿠바이는 사실 손을 씻는다는 의미 이외에 더 많은 것이 담겨있지 않을까 나도 늘 생각하곤 했다. 사실 정확한 명칭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에 작가가 책 속에서 소개할 때에는 '오!'하면서 굉장히 반가웠다.

아무튼 그녀가 관찰한 쓰쿠바이는 둥근 모양에 가운데가 엽전처럼 네모지게 되어있고, 각 변에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는 한자가 쓰여져있었는데,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이 말은 '나는 오로지 만족할 줄을 안다'라는 뜻으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는 말이다. 일본어로는 와레 다다 다루오 시루라고 읽으며, 작가 베쓰는 처음에는 스님이 한자를 읽어주어도 그 뜻을 몰라 답답했으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께 의미를 물어 궁금증을 해소했다고 한다. 사실 이 에피소드는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이기에 너무 반갑고도 재미있었다. 늘 사찰에 있는 오유지족이라는 말이 사찰과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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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가는 완벽주의 성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나는 완벽주의로는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사실 이상한 부분에서 완벽주의 적인 고집이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인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나쁜 버릇을 제대로 고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방어수단이자 시간 끌기 전략이자 변명이자 통제 방식이자 무기이자 판단의 잣대이자 상처를 가리기 위한 가면이자 비관에 대한 극단적 대응이자 진실을 덮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완벽주의는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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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각자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책을 읽다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왜 여지껏 초조해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완벽하게 불완전한 삶의 행로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자기 자신과 그 길에 대한 노력과 신뢰가 필요한데, 나는 아직 노력도 채 하기 전에 모든 답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고 초조했던 것이구나-를 깨달았다. 때로는 나 자신의 현위치를 깨닫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행로에 도움이 된다. 이제 충분한 휴식기를 주었으니 또 다시 미래를 향한 즐거운 여정을 와비사비의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는 마지막까지 독자들의 길을 독려하고 마음을 보듬는다. 이 책을 읽는 기간 동안 내가 차분해지고 나를 되돌아보고 숙연해지며 다시 잘 해보고자 다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와비사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영국인 작가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굉장히 겉과 속이 단단한 사람이며, 자기에게 끈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런 자연의 풍류를 느끼고 즐길 줄 도 아는 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무렵에는 지극히도 일본스러운 도시 교토에서 유학을 하며 일본인들의 환대를 받은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당연히 생김새도 문화도 언어도 전혀 다른 서양인이니까 그랬을 수 밖에 없던 게 아닐까'라며 조금 베베꼬인 생각을 할 수 밖에없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덮으며 과거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떤 언어를 쓰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단순히 진리에 대한 추구와 탐구만 있으면 그 사람에게선 빛이 나고 사람들은 금방 그런 사람의 매력을 알아낼 것이다.


*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와비사비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대답할 것 이다. 그러나 와비사비는 내 인생의 모든 하이라이트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순간들에도 등장하며, 내 삶의 굳건한 지지대같은 역할을 하며 단단한 멘탈을 만들고 인생에 대한 행복을 느끼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껴진다.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새로운 와비사비의 순간들을 기대하며 책의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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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와비사비

- WABI SABI -



지은이 : 베스 켐프턴

옮긴이 : 박여진

출판사 : 윌북

분야
자기계발, 라이프스타일, 동양철학

규격
140*210

쪽 수 : 240쪽

발행일
2019년 3월 20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5581-210-5 (0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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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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