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강원도 속초의 7번국도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어느 특정한 국도 위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와 관련된 가족이 있고, 가해자가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렴풋이 피해자를 아는 사람도 있다. 한번은 슬쩍 지나가듯 만난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같은 공간에 살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또는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시놉시스>
강원도 속초, 7번국도 위. 동훈의 택시에 군복을 입은 주영이 오른다. 그는 얼마 전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동창의 죽음을 두고, 주영은 안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이 낯선 군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는 동훈은 바로 그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다. 동훈은 오늘도 경기도 수원의 공장 앞 1인 시위를 위해 집을 나선다. 하지만 남편인 민재는 동훈을 막아서고, 시위에 함께했던 용선은 피켓을 내려놓는다.
주영이 동훈의 택시에 다시 오른다. 이 낯선 택시 기사님은 주영에게 말한다. 이제 시위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고. 때가 됐나 보다고.
사실 이때까지 글에서 주장하는 것을 피해왔다. 정확한 근거도 없이, 나의 개인적인 감정만으로 어떤 주장을 한다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핑계였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에게서 반박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면, 가해자의 편에 선 사람들에게서 분노를 받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어려웠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애의 단짝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 그런 눈치를 보며 살았을까?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옳은 말을 했더니 경찰서에 잡혀가고, 별 죄도 없는데 벌금을 몇천만 원을 내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인 척 덜덜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에 겁을 먹었던 걸까.
그래서 나는 비겁하게, 피해자의 마음에는 수도 없이 공감하지만, 그들의 편에 서지 않고 중간 즈음에 서서, 저기도 맞고 여기도 맞고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이해심을 선보였던 건가.
그렇다면, 비겁했다. 하지만 그 비겁함마저 사회가 일반인들을 복종하게 하는 '피해자다움'이라면, 나는 그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