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출 수 있을까?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4.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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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명 뮤지컬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가 자사 SNS 계정에 업로드한 한 게시물이 논란을 빚었다. 오디컴퍼니가 제작하여 현재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 중인 한 배우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였다. 극중 캐릭터의 시각에서 답변한 내용이었지만, 다분히 여성혐오적이라 해석될 수 있는 발언에 뮤지컬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디컴퍼니 측은 즉시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시하였지만, 논란 지점에 대한 명확한 문제 의식을 찾기 힘든 사과문은 성난 팬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치 않은 듯했다. 공식 SNS 계정에 인터뷰 내용이 게시될 때까지 충분한 검수 과정이 없었다는 점, 또 이번 사건이 비단 특정 제작사의 실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작품의 선정성 및 폭력성에 대한 공연계 전반의 문제 의식 결여를 방증한다는 점에 뮤지컬 팬들은 씁쓸함을 내비쳤다.


주목할 점은, 위의 해프닝에 대해 대부분의 뮤지컬 팬들이 보인 감정은 충격이 아니라 피로감이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많은 뮤지컬 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여성혐오적 테마와 이에 대한 제작사의 안일한 피드백에 몸살해왔다. 언급한 <지킬 앤 하이드>라는 작품만 해도, 폭력에 둔감한 작품의 서사와 선정성이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으로 위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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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



가령 <지킬 앤 하이드>가 작품의 요체인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선택한 장치는 원작에 없던 두 여성 캐릭터의 삽입이다. 주인공인 지킬/하이드를 언제나 믿고 따르는 천사같은 인물 엠마와, 팍팍한 삶에 마음의 문을 닫았지만 '다른 남자와는 다른' 따뜻함을 가진 지킬에게 반한 일명 '유흥가 여성' 루시. 이 두 캐릭터의 인물 구도는 흰색과 검은색, 흰색과 붉은색과 같은 대립적 색채 구도와 함께 선악의 이분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로 이용된다.


그리고 '예쁨'이나 '순수함'의 특성으로 포장되어 폭력의 산물이 된다. 선과 악, 이성과 무의식에 대한 성찰 대신 여성혐오 서사 속 전형적 인물들 간의 러브라인을 눈을 현혹시키는 볼거리들과 함께 끼워넣은 이 오락성 뮤지컬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스테디셀러이다. 관객의 의식 수준과는 동떨어져, 또다시 '성녀와 악녀 프레임'으로 돌아가 비판하고 해석해야 하는 작품이라니. 이와 같은 뮤지컬 시장의 관습적 클리셰들에 관객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킬 앤 하이드>을 제외하고서라도, 현재 권위를 누리고 있는 여러 대형 뮤지컬들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뮤지컬 시장의 현황에 대한 대중의 공분을 증폭시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언급했던대로 현재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작품들이 독보적인 스테디셀러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미 수차례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낡은 코드들이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통하고, 또 팔린다. 정전(正傳)이라는 면죄부 덕에 아직도 텍스트 속에 숨어 낮게 숨쉰다. 미해결의 상태에 놓여있지만 경시할 수 없는 이 쟁점이, '<지킬 앤 하이드> 해프닝'을 통해 전면에 드러난 제작사의 무지함을 도마 위에 올린 장본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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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를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 아이비



뮤지컬 시장이 이렇게 유독, 사회의 변화와 발맞춰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상 이미 정전화된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대중의 호응도와 탄탄한 플롯, 매력적인 인물군이 이미 검증된 정전들은 극화 대상 1순위이다. <레 미제라블>, <웃는 남자>, <안나 카레니나> 등이 모두 이렇게 만들어진 뮤지컬에 속한다. 이러한 작품들에 비춰지는 여성관과 소수자에 대한 묘사는 그를 기반으로 제작된 뮤지컬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둘째, 대중의 새로운 가치관과 필요를 반영하는 신선한 작품들이 시장에 들어와 지속적인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다. 이른바 '대작'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거대하고, 긴 제작 기간과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이 투입될 가치를 인정받는 창작뮤지컬은 매해 몇 작품 되지 않는다. 아울러 신예 창작자가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기 어려운 제작 환경과, 특정 배우가 아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지속적으로 찾는 소비층이 넓지 않다는 점은 더더욱 참신한 작품의 공급을 어렵게 만든다. 뮤지컬계가 타 대중예술 분야에 비해 일반 대중에게 노출이 적은 폐쇄적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어, 뮤지컬을 둘러싼 비평의 절대적인 양과 확산 정도가 부족하다는 점도 한몫한다. 뮤지컬 시장은 사회 변화의 흐름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뮤지컬 작품들이 서사 속에 함축하는 소수자 혐오와, 캐릭터 해석에 있어 만연한 연출진의 여성혐오적 시선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가령 실존 인물인 '황후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를 소재로 뮤지컬 <엘리자벳>을 제작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작품의 창작진이 주인공 엘리자벳에게 무기력한 주체성만을 부여하며 결국 자유를 표상하는 멋진 남성에게 구원되도록 연출한 것은 성찰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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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의 한 장면



물론 모든 뮤지컬 작품이 수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레드 북>, <호프>와 같은 작품들은 작품 자체의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또한 미투 운동이 활발했던 2017년과 2018년은 공연계에도 변화의 싹이 튼 해였다. 성범죄를 저지른 유명 연출가가 업계에서 퇴출되거나, <맨 오브 라만차> 등의 작품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장면들이 수정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뮤지컬 팬들이 더 큰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은, 앞서 말했듯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대작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과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과 같은 작품들의 위세와 그 속에서 반복되는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등과는 달리 한 번 무대에 올려져 흥행에 성공하면 계속해서 공연되는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배우들의 주체적이고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만연히 자행되고 있는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소수자 배제에 대해 함구하지 않고,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로 대사 한 줄 한 줄을 새겨나가며, 고민의 흔적이 깊이 담긴 그러한 작품을 뮤지컬 팬들은 기다리고 있다. 남성 캐릭터의 정서적 지원군 혹은 폭력의 대상이 아닌, 또 어설픈 주체성을 걸친 무력한 인물이 아닌, 독립된 개체로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 확고한 여성 캐릭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다. 수요가 부족하여 만들 수 없다고 하지만, 험난한 제작 과정을 견디고 세상에 나온, 여성 10명이 공연하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관객들은 기어코 매진시켰다.


'보지 않아서 만들지 못한다'는 말을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관객은 작품에서 여성을 읽을 줄 알고, 배제된 소수자의 권리를 읽을 줄 안다. 공연 티켓 앞에서 폭력의 소비를 망설이면서도, 신선한 작품을 기꺼이 맞이할 준비를 끝마치고 공연계의 움직임새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극, 타성을 경계하는 극, 폭력에 눈감지 않는 극이 뮤지컬 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해주길 기대해 본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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