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안 궁금한 나의 군대 Diary 01 [사람]

사소한 것에 웃고 감사하던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4.1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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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포털사이트에서는 일기형식을 빌린 여행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어딘가 ‘있어 보이는’ 생경한 나라의 도시명과 그 생활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버무려진 글은 왠지 모르게 예술의 향을 풍긴다. 그것은 아마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서 오는 동경심 혹은 이국적인 상황은 예술처럼 느끼는 문화 사대주의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한번 내가 가진 것들을 확인해본다. 내 통장 잔액은… 패스. 그럼 나의 값진 경험들은 뭐가 있을까?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자주색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펼쳐본다. 2018년 7월 27일 무더웠던 여름, 한 공군 병장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군 복무 단축이 확정되었단다. 무려 8일이나 줄어서 좋아하는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는 농담이 스쳐 지나가며 혼자 타임슬립 시간 여행을 떠난다. 이전의 민트색 일기장, 그 이전의 남색 일기장까지 펼쳐보며 2년의 군 생활이 단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훑어 지나간다. 고됐던 훈련소 빡빡이 시절부터 어느덧 나에게 의지하는 후임들도 여럿 생겨버린 말년 병장의 시절까지 모두 소중히 일기장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참 의미가 깊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군대 이야기는 너무 무력하다. 언제부터 복학생과 군인에게 단적인 프레임이 입혀진지 모르겠지만 군대 이야기는 곧 꼰대들의 무용담이라는 공식처럼 느껴진다. 더불어 특수한 공간에서나 힘을 가지던 이야기들이 사회에서는 암묵적인 금기, 혹은 그저 금세 잊힐 과거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것과 비교하면 나는 군 생활 2년 동안 경험하고 변화하고 성장한 것들이 많기에 너무 빨리 무력해진 과거에서 조금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뜬금없지만, 아무도 안 궁금한 내 군대 일기를 살포시 풀어보려 한다. 다만 독자의 다양성을 고려해 직관적이고 단편적인 에피소드만 다루어 보겠다. 그럼 아주 조심스럽게 시작해보련다.


<무도 궁금한 나의 Diary> 01.


 

 

01. 밤톨 훈련병의 식당 얼차려


 

*본인은 대한민국 공군을 만기 전역한 예비군이다.

*본인의 군 복무시절의 공군 훈련소 기간은 6주였으며 그 당시는 2017년 1월이었다.

 

훈련소(공군기본군사훈련단)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지만, 고성과 얼차려가 난무하는 분위기에 공황상태에 빠질 시간도 없는 긴박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저렴하게 말하면 먹고 자고 싸는 것까지 통제 속에 움직여야 했던 기간이다. 그런 분위기의 명목은 이해가 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따듯한 침대에 누워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던 20대 남자들을 단 6주 동안 군인 정신을 만들어야 하니 ‘그 분위기는 불가피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흐려진다. 그만큼 아찔한 6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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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mbc 진짜사나이

 


훈련소에서는 정말 많은 얼차려를 받았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경험이 있다. 일기를 살펴보면 2017년 1월 20일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는 살이 아릴 정도로 칼바람이 불었던 날인데, 높은 고지에서 화생방 훈련을 받고 간신히 몸을 녹이며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물론 밥을 먹을 때마저도 시도 때도 없이 조교들은 빨리 먹으라며 고함이 쳐댔기에 식사는 그리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적응된 상태다. 그렇게 평화롭게(?) 밥을 먹던 가운데, 한 명의 조교가 멀리서 손가락을 허공에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당시는 조교의 부름이면 번개처럼 관등성명을 외쳐야 했던 시기였기에, 그 애매한 손가락의 주인공이 자신이다 싶은 훈련병들이 마치 두더지 게임처럼 톡톡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그 레이더망은 좁혀지고 어느덧 내 앞 테이블까지 다가왔다. 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기에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고 그 나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빨간 모자의 조교는 분을 못 이겨 뚜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왔고 난 영문도 모른 채 식당에서 엎드려 뻗친 채 얼차려를 받았다.

 

(내려가며) “정신을”

(올라가오며) “차리자”

 

화생방 교육 때문인지 바닥은 진흙 물로 가득했고 어떤 자식이 또 김치를 흘려댔는지 김치와 출처 모를 음식물도 널려있었다. 난 그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분명 빨간 모자는 내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물을 것이고 또 대답하지 못할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연이어 몇 번의 얼차려를 받고선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내 팔이 식탁 위에 올라와 있어서란다. 제법 황당한 이유와 더불어 100명 가까이 되는 안쓰러운 눈빛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이미 엉망진창이 된 양손으로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마 이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하루가 아닐까, 생각된다.

   

PS. 이후에도 난 두 번 더 식당에서 얼차려를 받았다. 식당 바닥은 참 나를 좋아했나보다.

 



02 눈두덩이 복숭아와 꼴뚜기


 

*본인 시절 공군은 6주의 훈련소 수료 이후에 2박 3일의 수료 외박을 떠난다.

(2박 3일이지만, 본가로 올라가고 다시 진주로 내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1박 2일보다 짧았다.)


*수료외박 이후에는 각자의 특기에 맞는 ‘특기 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본인의 특기는 헌병이었고 2주 동안 훈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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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의 기분을 풍겼던 2019년 3월.

 

2017년은 요새처럼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았다. 2017년의 2월 하늘은 그 이름대로 파랬고 구름도 몽실몽실 떠다녔다. 2월은 지긋지긋한 훈련소를 떠나 각자의 특기에 맞게 ‘특기 학교’에 입소하던 때다. 물론 그곳 또한 진주였고 훈련소의 연장이었으나, 비교 불가능하게 늘어난 자율성에 조금은 넉넉한 인생을 살아가던 때다.

 

가장 행복했고 놀라웠던 날은 바로 특기 학교에서 마주한 첫 주말이었다. 주말은 면회가 가능했고 면회객이 진주까지 내려오지 못하는 잉여 훈련병들에겐 자율 운동과 텔레비전 시청이 가능했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 흥분을 감출 수 없었고, 당장 달려가 TV 앞에 앉았다. 역시 군대 아니랄까 봐 텔레비전 시청의 필수적인 방송은 바로 음악방송이었는데, 당시는 트이와이스의 Knock Knock이 한창 1위를 달리던 때다. 모두 요란스럽게 포인트 춤을 따라 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힘들기도 했지만 참 사소한 것에 웃으며 감사했던 시기이다.

 

하루는 햇빛이 너무 따사로워서 창가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 전체에 내리쬐는 햇볕은 따갑기보단 오히려 상냥했다. 눈을 감아도 빛은 내 눈덩이에 전해졌다. 눈알을 아래로 그리고 위로 굴리면 각기 다른 색깔이 펼쳐졌는데, 그 색은 난생처음 마주한 색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비유하자면 은은한 파스텔톤의 황도 복숭아 색이랄까. 나는 이 느낌을 가지고 일기를 제법 길게 썼다.

 


(중략)


햇빛을 맞으면서 눈을 감으면, 내 눈두덩이가 살구색 가림막이 되어 파스텔톤 복숭아를 마주한다. 이 색을 바라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다시 우울해진다. 꼴뚜기 한 마리가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2017/2/25 토요일 남색 일기장


    


<Diary 02>에서 계속됩니다.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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