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차르트와 말러로 보는 클래식 이야기 [공연예술]

때론 우리는 음악 속에서 인생을 배운다.
글 입력 2019.04.1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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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인천, 모차르트와 말러를
만나러 가는 멋진 길목에서


한 달 전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내 시선이 향했던 곳은 출구 방향이 아닌 지하철 기둥에 붙어있는 한 포스터였다. 대학교 1,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보고도 지나쳤을 오케스트라공연 포스터였지만, 갑자기 커져버린 키처럼 훌쩍 4학년이 돼버린 지금의 나는 호기심에 부푼 마음을 안고 포스터 쪽으로 이미 걸어가는 중이었다.


맨 처음 시선을 사로잡은 모차르트의 사진과 함께 공연정보를 읽어보니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말러의 곡이 주 프로그램이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수많은 곡들은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내 기억 속의 말러는 단조느낌의 곡을 많이 작곡했고, 이는 이 프로그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 아주 타당한 이유였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가진 이 두 곡의 대비와 조화, 그리고 이미 알고있는 작곡가에 대해 더 알아나갈 또 한번의 의미있는 시간이 된다는 점은 어느새 방으로 돌아온 내가 뭔가에 홀린 듯 공연티켓을 예매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급하게 알게 된 공연이라 좌석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는데, 그 당시 최선의 선택지는 무대를 기준으로 가운데 열의 맨 끝과 앞에서 3번째 줄 둘 중 하나였다.


너무 앞에 앉으면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중요한 소리의 조화를 놓칠 것 같아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이번 기회엔 앞좌석에 앉아보겠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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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이렇게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웠을 정도로 앞좌석을 택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라고 공연을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공연 프로그램이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었기 때문에 클라리넷의 독주무대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휘자의 지휘방식이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 각 악기들이 내는 소리들을 더욱 명확히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였다.


전에도 한번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했던 적이 있었지만, 매번 느끼는 점이 오직 무대의 조명만이 밝게 빛날 때 검은 정장을 입고 자신들의 악기를 들고 등장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는 것이다. 그들이 뿜어내는 이 매력적인 오로라는 착석 후 악기들을 다듬어보는 모습에서도 쭉 지속된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에게는 특히나 의미가 깊었던 곡이었다. 바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달 전 작곡된 일생에서의 마지막 협주곡이자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친분이 깊었던 클라리넷 연주가 안톤 슈타들러의 공연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 그는 클라리넷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이 악기의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이 협주곡을 작곡한다. 슈타들러를 위해, 그리고 이 곡을 사랑하는 수많은 미래의 관객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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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작곡하던 당시 모차르트는 병든 아내와 가계는 빚으로 쪼들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품을 써야만 했던 아주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다. 이런 모차르트의 어려운 생활을 본 슈타들러는 직접 뛰어다니거나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면서까지 모차르트의 가계를 도왔다. 이 고마운 벗을 위해 모차르트가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은 총 3악장으로 구성된다.



제 1 악장 Allegro


제 2 악장 Adagio


제 3 악장 Rondo-Allegro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시작되는 가장조의 1악장은 즐겁게 뛰어다니는 리듬 속에서 클라리넷의 고요한 소리와 현악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특히 끝부분에서 빨라진 박자와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이끄는 힘찬 멜로디가 아주 매력적이다.


이어지는 2악장의 첫 선율을 들었던 그 순간 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클라리넷의 독주로 시작되는 이 선율은 어디서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내 귀에 익숙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곡을 직접 현장에서 마주친 그 느낌은 마치 꿈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황홀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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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 곡을 조사하는 동안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은 영화 <아웃오브아프리카>에 수록된 OST 였다. 이 영화는 생명력 넘치는 아프리카를 담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많은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이에 모차르트의 음악이 수록되면서 그들의 가슴 속에는 아프리카의 대자연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다.


뜻밖에도 난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던 터라 TV나 방송에서 이 곡을 들었던 것이라 짐작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 영화를 꼭 볼 거란 계획을 세웠다. 영화 속의 대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내가 좋아하는 배우 메릴스트립의 연기, 그리고 모차르트의 선율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경험이 될지 벌써부터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악장에선 단연 클라리넷의 독주가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난 후 난 클라리넷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클라리넷은 깊은 울림과 여운 짙은 음색으로 가슴에서 쉬이 떠나질 않으며, 저음역에서 고음역까지 넘나들며 매번 다른 느낌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클라리넷 연주가 채재일이 연주할 때 온몸을 활용한다는 점도 매우 인상깊었고, 다른 악기들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다음에 있을 자신의 파트를 기다릴 때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곡의 전체 선율을 느끼던 모습, 앞부분 연주의 끝자락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 호흡 그대로 새로운 선율의 막을 멋지게 여는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한번 최후 결정의 문턱에서 앞좌석을 골랐던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고요한 2악장이 끝난 후 채재일은 지휘자에게 준비됐다는 신호를 보내고 이와 동시에 3악장이 시작된다. 통통 튀는 듯한 발랄한 느낌으로 악장이 시작되고 그 후 같은 멜로디 내에서의 옥타브변화도 흥미로웠던 관람 포인트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관객들 마음을 동심으로 돌아간 것 마냥 들뜨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그가 가장 힘들었을 순간, 죽음을 이미 예언하고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예술을 이용해야하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이처럼 밝은 협주곡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믿기지 않는다. 그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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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5번 #C단조



<제 1악장. 장송행진곡>


트럼펫의 웅장한 소리가 1악장의 문을 연 후 아주 강렬한 도입부가 엄숙한 기운과 함께 폭풍우 치듯 몰아친다. 하지만 연이어 잔잔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악장의 제목이 장송행진곡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분에선 죽음이 가지고 있는 엄숙함과 그에 대한 슬픔의 감정들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고요한 부분이 끝난 후 갑자기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며 또다른 위기를 암시한다.



<제 2악장. 폭풍처럼 움직여서 가장 강렬하게>


제목 그대로 도입부는 아주 현란한 선율을 타고 흘러가고 도중 새로운 선율이 시작된다. 마치 바다의 폭풍이 잠시 잠들고 새로운 신비의 섬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부분은 뭔가 슬픈 느낌이 드는 동시에 그 슬픔 속에서 왈츠를 춰야만 할 것같은 아주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슬픔 뒤에 올 새로운 기쁨의 시간을 맞아 환영의 춤을 추는 것일까?



<제 3악장. 스케르초, 활기차게, 너무 빠르지 않게>


3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1악장에서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의 시간에서 해방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것처럼 희망찬 느낌을 풍긴다.



<제 4악장. 아다지에토, 아주 느리게>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서 가장 감미로운 선율인 4악장은 오로지 하프와 현악기만의 연주로만 진행된다. 푸른 잔디가 펼쳐진 목장에 누워 맑은 볕을 쬐고있는 양 떼를 구경하는 듯한 이미지가 연상된다. 너무나 고요한 이 분위기는 이 악장이 앞의 악장들과 같은 곡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제 5악장. 론도-피날레, 빠르게-빠르고 쾌활하게, 생기있게>


다소 차분한 선율로 시작되는 5악장은 악장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강렬하고 힘찬 선율로 뒤바뀐다. 특히 끝 무렵에선 거의 대부분의 악기들이 연주되고 끝을 향해 달려가는 매서운 속도감을 보여주듯이 마지막 부분의 매듭을 짓는다.


말러는 독일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교향곡 작곡가로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긴 연주시간, 복잡한 형식, 엄청난 연주인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말러의 교향곡에선 서로 상반된 요소들이 공존하여 때론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는 근대음악 발전의 과도기에 속한 인물로 낭만파시대의 끝자락에서 이같은 교향곡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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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교향곡 5번 악보



확실히 말러의 교향곡에는 모차르트나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에서 보지못한 새로운 세계가 담겨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음악사조의 과도기에서 혼란과 고민으로 휩싸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창조해낸 새로운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클래식의 멋진 선율에 심취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통해 인생에서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말러가 겪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야할 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나아갈 첫 걸음을 떼야할 지 모르는 인생의 과도기에 놓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의 시간이 존재했기에 말러의 교향곡 5번이 탄생했듯이, 이 시간들은 나중에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형식의 구애에서 벗어나 그것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안 수많은 감정을 마주치고 이 감정들은 다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끝까지 다 듣고 나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것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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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립교향악단의 이번 공연을 보고 난 후 모차르트의 삶과 그의 또다른 멋진 작품, 클라리넷 협주곡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말러의 곡이 단조풍이 짙다고만 생각해왔던 작품에 대한 나의 좁은 시야는 교향곡 5번과 함께 확장돼 더욱 넓은 작품세계를 여행할 준비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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