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쓸모를 위한 쓸모없는 시간을 견디며 -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도서]

오늘도 비생산적인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9.04.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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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책을 좋아해서 막연히 시작했던 작은 취미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글을 쓰는 건 내게 생산적인 시간은 아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지 않으니까. 글쓰기는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가끔 우울한 생각이 든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이 시간에 알바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고. 알바를 해서 돈을 벌었을 때는 돈을 번다는 생각에 자신이 가치 있게 느껴지면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하지만, 글을 쓰면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과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맞물려 부정적 감정이 올라온다. 물론 글을 쓰는 성취감도 있지만, 글을 쓰면서 자기혐오와 돈을 벌지 못하기에 느끼는 가치 상실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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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제목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비생산적’과 ‘생산’이라는 이질적인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이 단어는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지만 창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을 뜻하거나, 감독이라는 직업으로 결과물을 내기 이전 단계인 지망생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비생산적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지망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결과로만 평가하는 성과주의 사회에서 비생산적인 시간을 견디는 건 자기혐오, 모멸감 따위의 부정적 감정과 사회의 냉담한 시선을 온몸으로 받겠다는 것과 같다.

 

영화감독 지망생은 통상 10년 동안의 지망생 기간을 거쳐야 한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채로 각자도생하는 삶을 사는 영화감독 지망생들.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게 불안한 삶을 의미하는 걸 알지만, 기꺼이 이 길을 걷는다. 이 상황은 영화감독 지망생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창의 노동 지망생들뿐 아니라, 모든 지망생이 겪고 있는 현실을 영화감독 지망생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저는 영화감독 지망생인데요?



‘지망생’이란 단어는 현재 사회에서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된다. 그저 백수를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는 단어라고 여기기도 하고, 경제적·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매일 고군분투하는, 또는 미래가 불투명해 결국 포기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무의식적으로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환산하려 하는 사회에서 ‘지망생’은 그저 백수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는 많은 사람이 창의 산업에 뛰어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창의 노동의 장은 불안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중에서 영화감독은 가장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정한 창의 노동 직업이다. 책에서 나열된 영화감독의 불안정성은 암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감독이 되는 시작부터 답을 찾기 어렵고, 작품별 프로젝트형으로 고용이 되는 산업이기에 고용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정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젊은 나이에 일을 못 할 수도 있다. 작품이 성공하더라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외부인의 시선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기괴함을 넘어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감독 지망생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영화감독이 되려고 하는 걸까?

 

그 질문에 답을 하자면 단순하게 ‘그냥 하고 싶어서’다. 영화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있을 수도 있지만). 지망생은 그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한 선택이다. 그냥 영화를 만들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게 그들의 이유다.

 

 

 

터널의 끝을 기다리며



앞에서 언급했지만 대체로 지망생들을 보는 시선은 대게 부정적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망하는 이미지를 상상하지만 그들의 삶은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절망적이지 않다. 불안하냐는 질문에는 ‘불안하지 않다’는 대답이 되돌아왔고, 오히려 편안하다 대답하는 지망생도 있었다. 조금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사실 그들의 대답에서 불안하다는 고백을 예상했다. 내가 생각하는 지망생은 어둡고 불안함에 늘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황하면서 ‘왜 불안하지 않으냐’며 되물었을 것이다.

 

지망생들은 계속된 불안에 적응되었기 때문에 불안은 기본값이 되어있었다. 오랜 지망생 시간을 거쳐서 오히려 불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또한, 그들은 영화판의 불규칙한 유동성과 불안함을 각오하고 뛰어들었기에 불안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영화판의 불규칙한 유동성의 불안성과 보통의 삶의 불안성의 차이는 크지 않다. 다른 어떤 직업을 가진다고 해도 어차피 불안한 건 마찬가진데 차라리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다른 직업도 불안하기 마련인데, 왜 하고 싶은 걸 하지 않냐’며 반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안함을 느끼는 요소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경제적인 문제는 그들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가장 불안한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감독이 되기 위한 역량(글쓰기, 사업 수완, 연출력 등)을 갖추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아 불안함을 느낀다. 자기가 잘하고 있는 건지 수치로는 알 수 없고 그저 자기가 어느 수준인지 짐작만이 가능하다. 오직 수치로 잴 수 있는 건 자신이 창작에 공들인 시간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짐작으로만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과 막막한 현실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가는 지망생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또 불안하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해서 그것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모든 게 불확실로 가득 차 있을 때 가장 확실한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요약하자면 경제적인 문제는 그들에게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지망생의 삶,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



한국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선 양분을 쌓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인문학을 공부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덕질을 하거나 소설을 읽는다. 이 기간은 정해진 게 아닌 ‘시나리오를 쓸 때까지, 또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까지, 영화감독이 된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쓸데없는 짓,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창작을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다. 이 과정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성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지망생들은 비생산적인 시간에 불안을 느끼고 딜레마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것대로 불안을 자극하기 때문에 계속할 수밖에 없다.

 

지망생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 강제가 없는 자유로운 삶이 창작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나태한 자신을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고 의지로만 버티는 게 힘들다. 강제가 없어 나태해지기 쉽고,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해주길 바란다. 강제가 없는 자기 자기와의 싸움은 언제가 힘겹고 외롭다. 아무도 자신을 관리해주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철저한 계획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건



지망생 인터뷰 중에서 ‘자신은 열정적인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열정과는 다른 의지를 갖췄다고 그들은 말했다. 막 달려드는 열정이 아닌 자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열정. 그들에게는 열정이 차게 식은 형태인 ‘의지’가 있다고 한다. 차게 식었다고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분별 있는 열정’이라고 해야 의미가 알맞겠다. 너무 이상에 빠져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열정. 그 열정이 지망생들을 움직이게 하지만, 현실은 열정을 계속해서 압박한다.

 


“인간의 생존과 결부된 가장 기본적인 문제 앞에서 이들은 누구의 보호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위험에 노출된 채로 견디고 있는 중이다. 이 영화들의 엔딩은 거의 언제나 무력하게, 어떤 답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멈춘다. 어쩌면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 상황이, (과하게 말해) 미래의 잠재적 노숙자들의 빈곤한 현실이, 달리 말해 인간의 기본권 앞에서조차 발버둥 쳐야 하는 상황으로의 끔찍한 후퇴가, 과감하고 독창적인 영화적 상상력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갈수록 냉혹해진 현실이 가하는 압력은 그들이 만드는 영화에서 드러난다. 독립 영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은 ‘집과 생존’의 문제였다. 심사 위원 남다은의 심사평은 영화감독 지망생이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열정과 의지라는 힘이 지망생들이 버티게 하지만, 지망생들을 둘러싼 현실은 계속해서 그들의 의지를 위협한다. 그렇기에 의지를 잃지 않는 의지가 필요한 다소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현실의 압력에 색을 잃어버린 지망생들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직업 이전의 시기 지망생. 그들의 모습은 조명되지 않는다. 모든 게 불확실한 세계에서 오직 자기 몸을 믿고 항해하는 지망생들의 이야기. 그들은 계속 그 자리에서 묵묵히 생산을 위한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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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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